2014.01.24 19:29
2013년에 제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그래버스]입니다. 2012년 피판에서 소개되었지만 놓쳤던 영화였는데 얼마 전에 파일이 풀려 볼 수 있었습니다.
괴물 영화입니다. 50년대 할리우드 B급 괴물 영화의 영향을 받은 90년대 할리우드 괴물 영화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외계에서 운석과 함께 바다에 떨어진 식인 괴물이 인근 외딴 섬에 상륙하고 사람들을 한 명씩 잡아먹어요. 다행히도 마을 사람들은 공연을 보러 다 육지로 갔으니 지원군이 올 때까지 얼마 안 되는 몇몇 사람들만 모여 버티면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튀는 것은 국적입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에요. 아일랜드 영화입니다. 영화 속 경찰들 유니폼에 Police 대신 Garda라고 적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당연히 할리우드 영화와 차별화되는 토착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봉준호가 <괴물>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그래버스]는 봉준호보다 훨씬 가벼운 태도를 취합니다. 진지하게 아일랜드의 사회문제를 장르 공식에 대입하는 대신 아일랜드 사람들의 가장 뻔한 스테레오 타입을 가져와 뻔뻔스러운 농담감으로 삼는 거죠.
한 마디로 주정뱅이 헛소리 같은 이야기입니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인 주인공 오셔 경관을 포함한 섬 사람 대부분이 술꾼입니다. 그런데 외계에서 온 촉수 달린 괴물은 알코올에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낸 주인공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탕 취해야 한다고 결론내립니다. 물론 사태를 통제하기 위해 한 명은 멀쩡한 정신으로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은 오셔에게 떨어집니다. 비교적 논리적인 판단의 결과인데, 그는 술에 취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주정뱅이 코미디와 괴물 영화 패러디의 결합입니다. 술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들이 할리우드 소품실에서 탈출한 것 같은 익숙한 외모의 괴물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는 거죠. 보고 있으면 저렇게 취해있는 대신 그냥 알코올을 무기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그들도 몰라서 그런 영화를 안 만든 건 아니죠.
조금 더 작정하고 코미디로 나갔다면, 괴물에 조금 더 개성을 부여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버스]는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장르물입니다. 저 같은 외국인 관객들이 놓칠 수밖에 없는 농담들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거라는 의심이 조금 들기도 하더군요.
(13/12/31)
★★☆
기타등등
각본가 케빈 르헤인은 모기에 물렸다가 이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마마이트를 먹는 나라에서는 모기를 쫓으려면 마마이트를 먹으면 된다는 도시 전설이 있다나봐요. 르헤인은 만약 모기가 주정뱅이의 피를 마시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감독: Jon Wright, 배우: Richard Coyle, Ruth Bradley, Russell Tovey, Lalor Roddy, David Pearse, Bronagh Gallagher, Pascal Scott
IMDb http://www.imdb.com/title/tt15253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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