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2 13:16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거야'가 끝났네요. 80억 손해봤다는 기사도 봤는데 저는 즐겨 봤던 드라마라서 아쉽습니다.
김수현의 가족극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번 드라마는 초반 보기가 사실 쉽지 않더군요. 밥 먹고 치우고 사는 일상사야 어느 집이 안 그렇냐만은
삼대가 복작거리며 사는 것도 그렇고. 홀시아버지 모시고 사는 남편 잃은 젊은 며느리도 그랬고.
김수현 드라마의 단점이 초반에 너무 부각되는 면이 있었어요. 중반부터 나아져서 마지막이 좋았다고 생각되는데
아무래도 작가 나이가 있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연애하는 걸 보면 뭔가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놀랍게도 그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 안 어색해요.
결혼하고 나면 사는 풍경이 비슷해져서 그런건지.
김수현 드라마의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인 것을 은연 중에 보여줍니다. 그 드라마에서 결혼으로 손해본 커플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자존심 내세우는 의사 아들도 결국 부잣집 딸과 결혼, 막내 아들도 부잣집 딸과 결혼, 간호사 일 하는 둘째네의 외동딸도 부잣집 아들과 결혼........
물론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김수현 드라마에는 가부장적인 질서가 잘 잡힌 집안의 아들딸들이 유산 많은 딸아들과 결혼하는걸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같은 김수현 놀음이라고.
그래도 그 질서 안에서는 안전하고 보호받고 날마다 소소한 재미가 있거든요. 늘 일이 터지고 대체로 며느리들이 동동거리지만
사람 사는 소란스러움이 있죠. 심심할 일이 없는 풍경이에요. 마지막 회에서 같은 날 죽고 싶다며 노년의 부부가 대화하다가
할머니가 자기가 6년 손해 보는 거라고 하니, 할아버지가 당신하고 나 사이에 뭘 그런 걸 따지냐고 하던데. 진심으로 웃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김수현의 가족극을 볼 때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어떤 향수, 그러면서도 똑똑한 여자로서 쉽게 타협하거나
본인 성향을 죽이고 양보할 수 없었던 사람의 모순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정말 좋은 것은 나이 들어 나란한 인생의 동반자에게서 받는 위로와 위안이라서 똑똑하고 냉정한 딸들이 어리석게도 사랑에 빠져
지는 게임을 시작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셋째네 딸이 연애결혼했다 사기결혼이 된 것을 용서하고 가는 것도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리 납득이 안되더라고요. 첫째네의 나이차 많이 나는 부부의 결혼과정도 불편하기는 했습니다.
다 큰 자식과 부인을 한꺼번에 잃은 불행을 겪은 사람의 인생에 어떤 여자가 해줄 수 있는게 무엇인지
보여주기도 했지만요. 김수현 드라마의 여자들은 겉으로만 세지 속으로는 무르기만 해요ㅠㅠ
끝나서 서운하네요.
2016.08.22 13:28
2016.08.22 13:35
듀게에선 보는 분들이 적을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냥 김수현은 계속 그럴 거 같습니다. 현실에서 그런 풍경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죠.
2016.08.22 14:27
저 세대 사람들의 머릿속이 배우나 안배우나 원래 저렇나 봐요.
어제 일어난 살인사건입니다.
"밥 안해준다" 80대 고모 살해한 50대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638247
2016.08.22 13:51
매우 정상적인 인물이 하나 등장해-예컨대 의사 아들 친구 같은 인물이 놀러왔다가 니집 식구들은 다 왜 저렇게 말해? 이러거나 사윗감이 왔다가 식구들 다 모여 떠드는 거 보고 예라이 다들 지옥으로나 가라 소리지르고 도망가는 그런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2016.08.22 14:22
그러면 김수현 월드에 흠집이.......ㅠㅠ
2016.08.22 13:57
김수현 드라마를 좋아해서 무자식상팔자까지는 참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드라마는 꽤 많이 거슬리더라구요 그 시간대에 딱히 볼게 없어서 빠짐없이 본방사수하긴 했지만 내내 욕하면서(?) 봤던 거 같아요 그 집에는 스스로 밥을 차려먹는 남자는 없어요 새파랗게 어린 손자도 할머니가 차려주어야 밥을 먹죠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다같이 밥을 먹을 때도 부엌에서 일하는 건 온통 여자들뿐. 그 드라마 보면서 제일 많이 한 말이 '저 집 며느리는 식모야?'였던 거 같아요 그 드라마속 인물들은 둘 중 하나에요 자신이 꼰대인 줄 모르는 꼰대거나 비현실적으로 개념이 없거나. 김수현작가가 대가라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렇게 오랜 세월 인정 받는 사이 아집만 키워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세상이 바뀌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공부하는 것이 방송작가일텐데 나이가 드니 그마저도 귀찮아진 것일까요
2016.08.22 14:22
네 저도 그게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대인 형제 사이에서 보이던 지나친 서열의식도 불편했어요. 자존심 강한 남자들의 뻣뻣함도 보기 힘들었어요. 소리 빽빽 질러대면서 원래 하던 것보다 더 잘못한 거 없다던 둘째는 그 나이대 그런 분들이 없지 않아서 차라리 그러려니 했습니다만. 이런저런 불편함이 많고 지겨운 면도 많은데도 그래도 김수현 월드의 재미가 있었어요. 아집도 있겠죠. 나이 드신 분이니 남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드라마에 종종 섞지만 그건 마치 이혼이 드물던 시절 이혼했던 본인처럼 소수이고요. 그 소수마저 공고한 현실 질서에 무사히 편입되어서 살아갑니다. 그만큼 작가 눈에 보인 세상이 그런 걸까 싶은 면도 있습니다.
저번에 채널 돌리다 우연히 봤는데, 조카 역할의 송승환이 이모인지 고모 역할의 양희경한테 밥 달라 하면서 신문 뒤적거리고 있는 장면 보고 아직도 김수현은 이러고 있구나 하고 채널 돌린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