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해체에 관한 탁상공론.

2013.05.16 12:37

잔인한오후 조회 수:3696

 저는 불가능한 일에 대해 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고 나서 제가 논했던 것들을 떠올려보면, 꽤 바보같거나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는 제 자신은 독선적으로나마 그 논제에 대해서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의견 개진이 가능했었던 거겠죠. 어쨌거나, 일베의 해체는 현 시점에 있어서 그렇게 가능해보이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들은 현실성 없는 공상적인 이야기들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개념이 제게 있는데, 국수주의나 애국주의와 같은 사이트 집단의식이라는 개념입니다. 도무지 인터넷이나 웹을 한자로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안 잡히기 때문에, 웹수주의나 애넷주의 등으로 부르기엔 두드러기가 돋아서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아직 겉핥기조차 해보지 못한 문화인류학의 뼈대를 빌려다 붙이자면, 국가주의 등의 같은 문화를 향유하기 때문에 동일 집단으로 서로를 인식하는 어떠한 감각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일한 사이트 내의 소속감과 그 내부의 문화 향유, 그를 통한 응집 등이 현대 인터넷 문화에서 꽤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듀게의 소속감과 애듀주의(?)의 시원을 생각하면, 전부가 (각각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동질한 통과의례를 거쳤으며 내적으로 동일한 문화를 전제/함의되거나 눈에 보이는 법칙에 의해 서로에게 최소의 공통점을 가지게 되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듀나님이 강제하거나, 사람들 각각이 강제하는건 아닙니다. 일정한 틀을 유지하며 그 틀에서 삐져나오는 것을 잘라내는 형태로 변화해가며 그 내부 요소를 유지하는 거죠. 어쨌거나, 이러한 각 사이트 내부의 문화는, 클릭 한 번이면 다른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이성을 강하게 가지고 유지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활동해왔던 사이트를 헤아려보면 적어도 열 개 이상은 될텐데, 그 각각에서 분명 제 정체성을 드러낸 부분도 있었지만 사이트 내 문화를 받아들인 부분도 있었단 겁니다. 간단히 정리해서, 한국 웹은 각각의 웹이 민족성과 흡사한 무언가를 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듀게와 디시인사이드와 루리웹, 그리고 클리앙과 일베를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전 어디 사람일까요? 애초에 이 질문에서 '어디 사람'이라는 정의에 대답을 해 달라는 것 자체가 애매한 것이지만, 이미 위에서 이야기했던 전제와 함의 등의 틀을 통해 -인이라는 속성을 어느 정도나마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이게 무슨 뜻이냐면 국가에 소속된 국민이 된다는 것은 그 국가에 완전히 얽매인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이트에서 활동하면 그 사이트에 얽매이게 된다는 거죠.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입니다. 그런고로 전 듀게 외부에서는 아마도 듀게인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며, 디시와 루리에서는 자주가는 -갤러라던가 -게이라던가 그런 호칭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이트에서 이중국적자나 삼중국적자는 없는 것일까요? 이는 외준과 내준이라는 두 개의 관점으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여기가 본진이고 거기는 멀티다'라거나, '제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XX죠..'라거나, 어쨌던간 자기 자신이 원하는  한 사이트를 정해놓고 거기 소속을 밝히는 경우. 그리고 외준이라고 하면, 자기 자신은 자유로운 영혼이라 주장하더라도 그 사이트들 중 가장 속인주의가 강력한 사이트로 타자들이 결정하는 경우일 겁니다. '난 여시인데?' '너 듀게에서 더 많이 활동하잖아' 등의 형태로 말입니다. 사적 서버가 존재하고 그 서버에 정보들이 저장된다면, 블로그나 트위터와는 다르게 거대한 집단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가능성,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하나를 골라서 불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미있게도, 몇몇 게임 팬사이트 들은 같은 게임을 두고 이루어진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아 이중 국적자를 잡아 첩자라고 배척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습니다.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 실수가 개인에게 귀속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이제 일베로 넘어가봅시다. 일베는 다종다양한 여러 원인과 욕구들이 엇갈려서 유지되고 있는 사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한국의 대부분의 사적인 의지로 발전한 모든 사이트에 걸맞긴 하죠. 먼저 토지가 있고, 그 안정된 토지 위에 여러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해 나갑니다. 그리고 몇 가지 금기와 문화를 생산해냅니다. 중요한 점은, 글과 그림을 꾸준히 만들거나 퍼와서 올리는 그 모든 일들이 집단의 문화를 창조해낸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퍼온 자료라도 상관 없습니다. 그 자료들은 어떤 식으로 배열되든, 올리는 이들이 선택하고 검열하는 것이니까요. 일베의 보편성은 여기까지이고, 특수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체 집단의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 시스템에 의해 절대적 총량이 부여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한국에서 5만명 정도는 인터넷에서 찌질하게 노는 사람들이다, 뭐 이런 식입니다. 그 숫자는 마치 컵을 채우고 있는 물분자와 비슷해서 어느 쪽에서는 튀어나가도 다른 쪽에서 다시 들어가기 때문에 그 총량이 유지됩니다.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재된 시스템이 그들을 유지합니다. 말하자면, 제게는 그들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뭔가 다른 모양으로 눈에 띄게 되었다는 겁니다. 결국에 그들의 절대값을 없에려면 국가 규모의 시스템 전체를 번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일이며, 제 머리로는 그 내부 짜임새까지 하나하나 짜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그리고 흔히 개신교인은 천주교인이 천국에 가지 못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슬람인도 천국에 가지 못 한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천주교인은 마리아상을 숭배한다고 착각합니다. 이러한 상대에 대한 무지는 상대를 이단시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단에 대해서는 보지도,듣지도, 말하지도 말하야 할 것이며, 그 의례를 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저는 천주교나 불교 행사에 참여해본 적이 없으며 아렷하게 불교에 찬불가라는 찬송가와 흡사한 노래책이 있다는 정도만 압니다. 과연 그게 그 종교의 의례적인 측면의 전부일까요? 그럴리는 없겠지요. 저는 자칭, 진보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보수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노는 사이트들을 대부분 고려할 때, 제가 듣고 보고 읽는 것들은 거의 (보수 쪽에서도 좌파라고 불리우는) 진보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살짝, 한국의 웹에서 보수라고 주장하는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그렇게 규정하는 사이트들을 찾아봤었습니다. 변희재인가 그 누구인가, 등의 자칭, 우파들은 연구소나 학회 등을 만들어서 내부에 자유게시판 등지에서 활동하더군요. 제가 본 곳은 다섯 곳 정도였는데 다시 찾아보려니까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 애매하지만, 말만 안 험하지 그다지 일베의 정치적 주장과 별 차이가 없는 내용들을 보았습니다.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 경험했듯이, 듀게적 사고관은 한국에서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하고, 마치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대목처럼 내가 자주 보던 것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소수이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일베에 대해 시계열적인 분석이라면,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간을 개인당 하루에 3시간(스마트폰이 생겼으니 6시간으로 늘었을지도), 한 달에 60시간, 1년에 720시간이라고 대략적으로 잡고 그 내에서 어떤 사이트에 상주하는지를 비중으로 따지고 그 변화를 생각해보면, 일베는 밑에 글에서도 나왔다시피 디시의 후손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틀과 초기 컨텐츠들이 디시에서 나왔던 것이라면, 중기와 후기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하면 힌국의 10대와 20대 인터넷 집단의 대규모 이동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떠오르는 것은 네이버 붐과 웃긴대학이 있는데, 저는 사이트 각각에 대해서 사이트에 상주하게 만드는 어떠한 힘을 생명력이라고 생각하는데,  2개 등지의 사이트가 급속도로 생명력을 잃어갔다고 봅니다. 한국의 10대와 20대들이 상주할 수 있는 토지가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에 더욱더 자극적이거나 자신이 발언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생명력을 잃었느냐고 하면 너무 같은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물려서 질렸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어, 듀게의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어느 순간 더 이상 다음날 듀게에 들어와도 전날 예측했던 글과 같은 글들을 볼 수 있다는 성찰이 든다면 전 더이상 듀게에 오지 않을 겁니다. 제게 있어, 듀게와 비슷하지만 다른 사이트를 묻는다는 건 대체재가 존재하는 순간 순식간에 빠져나갈 인원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일베는 10대에게 지겹지 않은 적절한 인터넷 대체재로 적절한 시기에 떠올랐으며, 그 생명력은 꺼질 기미를 보지 않고 끊임없이 불타오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길고긴 쓰고나니 쓸떼 없다고 느껴지는 이야기 끝에, 그래서 이제 일베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토지를 없에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나라잃은 이스라엘 민족처럼 세계를 떠돌며 시오니즘을 만들어 다른 곳으로 가서 기생하며 새롭게 나라를 세우... 면 안되겠죠. 일베 서버의 폭파는 일베를 이루는 집단 중에 습관이나 재미를 위한 계층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일베 내의 통과의례 및 문화 향유가 상당히 뿌리 깊기에 (나쁜 짓을 같이한 아이들 사이에서의 유대감이 훨씬 강한 것처럼) 잠깐 농담처럼 언급했던 시오니즘이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이텔과 나우누리 등을 생각해볼 때 엄청나게 오래 지속된 인터넷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그 토지가 없으면 뿌리마져 뽑혀버린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는 자들은 민족주의(?)를 가장 강하게 갖고 있는 이들 뿐이겠죠. 하지만 소라넷마냥 그 집단을 유지하는 생명력이 집단의 형식 자체를 뛰어 넘어 계속 유지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일베의 생명력이 그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탁상공론 1 입니다. 유해사이트로 지정하던가, 민사소송을 하던가, 그 무엇이든 사이트 영업을 금지시킬만한 어떤 문제를 지적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게 되지 않는 이유는 반-일베는 일베와는 달리 특정한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며 통과의례도 없고, 의지마져 없다는 것에 있겠죠. 일베가 왜 오유만을 괴롭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유는 일베에 대해 효과적인 무언가를 할만큼의 집단이 아니라는 거죠. 예를들어 T24로 유명한 SLR 클럽(통칭 스르륵)은 그 축제를 결성해나가는 과정에서 그런 것이 가능한 사이트라는 것을 결과적으로 증명해냈지만, 제가 기억하는 오유의 거의 대부분의 사이트 단위의 축제는 유야무야로 끝나거나 뒷소문이 안 좋게 끝났습니다. 어쨌거나 토지를 날리면 확실합니다. 제 찌질 총량 불변의 법칙에 의해 다른 곳에 다른 사이트가 만들어지겠지만, 또다시 이 정도의 안정성 있는 운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운 좋게 만나리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해체의 방법. 현재 일베의 활동 인원보다 많은 사람이 일베에 가입해서 일베와 다른 문화로 활동하면 됩니다. 희석이라고 해야할 지, 어째야 할 지 모르겠지만 사이트 내부의 문화는 사이트 내부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며, 여러 문화 선택의 갈래에서 다수자 우위로  변동하니까 말이죠. 저는 딱히 일베를 통계적으로 분석할 마음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그런 추천 형태의 사이트에서는 노출량이 많은 게시판으로 가기 위한 일정량의 추천 숫자가 정해져 있고, 그 수 이상으로 특정 집단이 늘어나게 된다면 사이트 자체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전 일베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일간 베스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하루의 베스트에 들어오는 담론들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예를 들어 존댓말로 이루어진 좌파적 관점의 글등이 지속적으로 노출이 된다고 하면, 그리고 그 것이 그 사이트 내에서 다수가 된다고 하면 일베는 해체될 것입니다. 이게 탁상공론 2 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거의 국가간 문화 융합 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겁니다. 세계의 문화 교류를 떠올렸을 때, 타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를 빌어 들어간 경우가 많았고 그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했죠. 너무나 많은 힘을 들여야 하며, 여기에 가입한 사람들의 글들이 실제로 향유 할 만해야 할 것이며 복제하고픈 마음이 들어야 할 겁니다. (생명력이 있어야한단 말이죠) 괴롭히지 말아야 할 약자를 괴롭히는 사티즘과,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탄압받을 수 밖에 없는 마조히즘 욕구 양측면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다른 자극적인 컨텐츠가 있을리 만무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또... 내적 논리를 파괴 시킬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할 수 있으면 일베 해체 따위 하지 않고 대선 레이스에나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견고한 내적 논리를 갖추고 있으며, 그것이 별로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앞 뒤가 맞으면 인생은 살아나갈 수 있는거죠. 일베의 위악은 사회적으로 위태롭기 때문에 더욱더 확고한 내적 논리로 짜여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이런 짓까지 뻔뻔스럽게 말하다니 보통 미친 놈이 아니야' 가 아니라 '이거,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니 보통 합리화시킨게 아니군'이 맞을 겁니다. 내부로부터 파괴하려면 가슴 깊이 일베주의자(국수주의자를 읽듯이 읽으시면 됩니다)가 되었다가 거기서 자신을 깨트리고 나오면서, 그 깨트린 틈새를 이들에게 웅변해야 할터인데 누가 일베인이 되고 싶겠습니까. 제가 겉핡기 식으로 소설이나마 쓰자면, 다층적인 일베 사용자 가운데서 가장 내밀하게 일베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 자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 척 하는 사람과 - 한 사람의 차이를 찔러 들어가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이트간의 인터넷 문화라는 것이, 제가 디시에 가면 반말과 욕지거리를 섞어 댓글을 달다가도 듀게에 오면 존댓말과 학식있는 단어를 골라 적는 것처럼, 일베에 가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골라하는 겁니다. 그 연극적 행위와 자신을 분절시키고 그 갭에서 즐거움을 느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사를 읽는 연기를 간단히 해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연기를 하다보면 어떤 면에 있어서는 연기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말들을 할 수 있게 되며 그로서 즐거움을 느끼며 동질감까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이트에 처음 접하고 행했던 것들이 자기의 외적인 정체성을 구성하여 자신을 구속한다면, 즉, 아 내가 이 사이트에서 이렇게 행동해왔으니 계속 이렇게 행동해가야 할 것이다는 것을 느껴가면서도 그 연기를 지속하는 것처럼, 일베에서도 일베에서만 줄 수 있는 문화를 향유하면서도 그것이 일베 자체의 문화라는 것으로 자신을 분절시키면서도 거기서의 발언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명이 덜 되었다 생각하여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제가 남자이며 대학생활을 느저분하게 하는 늦깍이 아웃사이더라고 할 때, 연극반에 들어가 여자이며 창녀촌에서 일하는 마담의 역할을 맞게 되어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대본에 쓰인 욕설을 맘껏 하며 여성적 아우라를 퍼트리는 연기를 마음껏 하는 것에 만족감과 쾌락을 느끼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그러한 내적 논리를 파괴시키려면, 마담의 논리를 대응하기보다 마담의 연기와 대학생의 현실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둘 다 같은 현실이며, 어느 쪽도 연기가 아닌 자기 자신을 이루는 일면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 때 있을 것입니다. 이게 탁상공론 3 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멀리 돌아가는 방법은, 위에서 잠깐 나온 마담의 논리를 타파하는 것입니다. 일베는 가장 낮은 수위의 예절과, 가장 낮은 수위의 정치적 공정성을 바탕으로 온갖 부분에 있어 논리적인 지적을 합니다. 이건 매우 불공정한 싸움으로, 그들은 그들의 문화권에서 아무런 지적도 받지 않으면서도 외부자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히 약삭빠르게도 약자만을, 오직 약자만을 향한 온갖 꼰대짓을 털어 놓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배설(카타르시스)해놓고서도 쾌락을 느끼지 못하면 그거야 말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예절과 공정성을 가장 낮은 수위로 낮춰야 하지만 말이죠. 담론 권력의 우위에서 서서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정신나간 글이지만) 모두에게 인정받아 통과의례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안착한다는 그 즐거움을 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잠깐 떠오르는 것은 중세의 바보 축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끝나지 않는 바보 축제 정도일까요. 어쨌거나 분명히 그들의 지적의 일면은 타당합니다. 뭐, 그들이 지적의 행태가 지적받지 않는다는 것 하에서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들이 입을 열지 못할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지닌 담론을 만들어 찌르고, 권력 우위에서 내려앉게 만드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진중권과 일베 모군과의 토론에서 알 수 있었다시피, 그들은 집단이 아니라 개개인입니다. 자신을 일베라는 집단의 소속감으로 유지하는게 아니라는거죠. 마치 쓰인 역사를 바탕으로 자신을 사고하는게 아닌, 현재에 있는 자신에 맞춰 역사를 지속적으로 새로 쓰는 집단을 보는 기분입니다) 이게 탁상공론 4 입니다. 그런 글을 쓰려면 그들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던가, 아니면 그들을 지적하지 않고 모든 지적을 피한 거의 인류급의 논리를 만들어 내던가 하는 식으로 논파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도 일어날 리 없죠.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집단에서 소속감을 강하게 가지고, 다른 온라인 집단과의 적대감을 느끼면서 사회의 규범 이상을 행하는 것들 말이죠. 뭐, 이미 디시 막장 갤러리에서 많이 보던 일이긴 하지만, 사이트 세부 집단이 아닌 사이트 전체가 그런 일관성으로 점철되었다는게 놀랍긴 하죠. 저는 이를 한국 사회에 대체재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구나, 란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아, 정말 애들이 놀 게 없구나, 할 게 없구나, 정말 잉여이고 정말 찌질하다 하더라도 뭐라도 할 게 있어야 할 텐데, 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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