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4 20:18
1.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재앙이 튀어나옵니다. 놀란 판도라는 상자를 닫았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 희망이었죠.
그리하여 온갖 고난 속에서도 인간들은 희망으로 버틸 수 있었대더라.. 이게 어릴적 봤던 버전.
어른이 되서 읽으니 그와중에 희망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재앙의 완성’이라는 해석이 더 와 닿더라구요. 봉준호도 여기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더 내려갈 곳은 없을거라 생각했던 가족이 판도라가 들고온 상자 속의 희망(수석)을 갖게 되면서 지옥과 마주하는 이야기.
케르베로스 같은 개 세마리를 끌고 다니는 지옥 문지기.. 모든 일이 끝난 후에도 아들의 나래이션 속 희망으로 계속되는 지옥.
(그 물난리 속에서도 떠올라 "찰싹 붙어" 놔주지 않던걸 생각하면 꽤나 섬뜩한...)
2.
같은 인간인 척 사는 송강호는 냄새라는 단어 앞의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코를 막는 행위가 트리거가 되고), 역시 같은 인간인 척 하는 이선균은 사랑이란 단어 앞에 표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내가 진짜 너랑 똑같은 인간인 것 처럼 말하네?’하는 표정은 이선균이 갑인 것 같아요. 짜증내는 표정만 수십년 연구한 배테랑의 위엄.
송강호 배우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압력밥솥처럼 걸어 다니는데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에서 유독 피부톤이 붉게 느껴졌어요.
굳이?스럽긴 하지만 혹시 압력밥솥을 의도해서 메이크업을 한건가(그럴 리 없잖아)궁금.
3.
예전 봉감독의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잘 만들고 어떤 상황안에 풀어놓기만 하면, 이야기는 알아서 굴러가게 되어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던게 기억나요.
근데 언제부터인가 봉준호 영화에서 그런 느낌을 거의 받을 수가 없더군요. 흔히 이야기하는 ‘장기말’처럼 인물을 쓰는 느낌.
봉준호 최고의 영화냐라고 물으면 아니오. 재미있었냐라고 하면 글쎄요 인데 좀처럼 게시물을 안쓰는 저같은 회원이 듀게에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희한한 영화인건 확실한 듯 합니다.
2019.06.04 20:29
2019.06.04 21:10
국스님은 아래 연등님과 비슷한 의견이신듯 합니다. 제가 처음에 말하고자 했던건 봉준호가 이야기를 움직이는 방법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였지 그게 나쁘다는 아니었어서..;
2019.06.04 20:38
봉감독의 영화 중 정말 저절로 굴러가는 캐릭터의 영화가 있었나요...?
2019.06.04 21:00
저절로 굴러가는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가 이야기를 굴린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예전 작품들에선 그런 느낌을 더 받았었습니다.
2019.06.04 20:43
2019.06.04 21:17
도구적인 캐릭터도 그렇고 저는 그냥 영화 전체가 작위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박찬욱보다 봉준호를 좋아하는건 겉멋 없이 좀 더 보편성에 발을 딛고 있어서인데.. 이번 영화는 다른 것 같더라고요.
감독은 한국적인 영화라고 했지만 몇몇 설정이 그럴 뿐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서구 영화 느낌이 많이 나고, 연극 대본 같은 이야기 진행 등. 초반 몇 분은 다소 허술한 TV 서프라이즈 류의 연출같다는 생각도 했어요.ㅎㅎ;
2019.06.05 00:22
2019.06.05 12:39
2019.06.05 12:59
이선균 더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인데 씬이 적더라고요. 원래 이런 류 영화(샤브롤 '의식'처럼)는 상류층 캐릭이 주가 아니긴 하지만요.
2019.06.08 02:13
캐릭터들을 이번엔 정도가 심하게 장기말로 쓰더군요. 저도 영화는 좋았지만, 생각해볼수록 다혜의 캐릭터는 대체 왜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캐릭터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아무 의미가 없는 인물이에요. 사실 박소담의 캐릭터 또한 인상깊긴 하지만, 별다른 캐릭터성이란 게 없는 장기말로 보였어요. 송강호 전혜진의 캐릭터도 마찬가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