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전쟁 그리고 월드컵

2010.06.17 17:23

알리바이 조회 수:3661



1.


장기, 바둑 등 많은 유사 전쟁 게임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전쟁과 유사한 종목은 바로 축구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축구를 이야기하면서 평화를 위한 스포츠 운운 하는 것은 사실 좀 아니라고 봐요.




 2.


중세시대, 전투를 위해 넓은 평지에서 적과 대치하는 상황을 머릿 속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수천명 혹은 몇 만명의 군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맨 뒤의 고지에 왕 또는 대장군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대열을 어떻게 세우시겠습니까?


여러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만약 저라면 인원을 세부분 혹은 네부분으로 나누어 겹겹으로 배치하고,

각 군의 성향에 따라 그 비율은 4:4:2 혹은 4:4:3 또는 4:2:3:1 등등으로 구분하여 세울 것 같습니다.


제일 맨 아래 라인 중앙에는 발이 좀 느리더라도 방어에 적합한 덩치크고 튼튼한 창과 방패를 가진 보병, 사거리 정확한 궁수 등을 두고,

중간에는 말그대로 파이터 기질의 부대, 혼전에서도 밀리지 않고 공격과 방어에 핵심이 되는 전차부대 중심으로 주둔 시킬거구요.

후미와 전방 양사이드에는 속전 속결이 가능한 날쌘 기마병을 배치할 겁니다.

맨 앞은 말그대로 일격필살, 동귀어진 스타일의 전투부대를 배치.


게임 미디블 토탈워. 이미지 검색 구글



자, 전쟁을 진행합니다.


중원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동안, 후미 중앙은 궁수를 통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 본연의 임무인 방어에 힘을 쓰겠지요.

후미와 전방의 양사이드는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일진 일퇴를 거듭하며 정신없이 본진과 적진을 왔다갔다 할 것이고,

맨 앞 침투부대는 상대가 가진 최종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자기 위치를 벗어나 보병도 전방으로 나가 싸우고 기마병도 중앙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전차부대가 외곽으로 빠지기도 하고 공격에 최적화된 침투부대도 적을 막느라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렇게 혼란스러운 전투 중이라도 각 대열은 무너지지 않도록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유지해 나가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적에 의해 처절하게 유린 당할 테니..


 파일:4-4-2.svg

  4-4-2 포메이션



3.


그러고 보면, 축구용어에 전투용어가 쓰이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 봅니다.

입성, 전차부대, 무적함대, 대포알 슛, 태극전사, 폭격기, 침몰, 잘하는 감독을 명장이라고 부르는 것,

나라별 축구협회, 축구클럽 등은 중세 왕가와 비슷한 엠블럼을 가지고 있고.. 등등..

뭐, 하나하나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군요.

스포츠 정신 당연히 중요합니다만, 축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유난히 승부에 집착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요.




4.


축구열기가 높은 많은 나라들이 지역주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것도 그렇습니다.

각 축구스타일이 그 나라의 성향과 비슷한 것도 그렇구요.

영국과 독일이 맞붙을 때나 또는 우리나라의 한일전은  왜 다른 나라와 경기보다 보다 더 격렬한 걸까요?

한, 중,일, 축구.. 자존심 대단하기도하지만 실력에는 분명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잘 인정하지 않습디다. ㅎㅎ

서구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딸리아 세리에A, 스페인 프리메라리그 등등은 각자의 리그가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고 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질투와 경쟁을 통해 더욱 발전해 나가는 거고..


 

 한일전




5.


이렇게 접근해 보자면, 결과적으로 축구는....

인류가 전쟁을 무기없이 피흘리지 않고 사망자 없이 치룰 대리전의 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수천, 수만명의 전투병력을 가장 최적화 할수 있는 비율로 축소시켜 11명의 인원을 산출합니다.

그 활동 장소는 약 100  x 70 m 로 규격화 시키고, 잔디를 깔아서, 어느 지역의 경기장에서나 비슷한 여건에서 겨루도록 평준화 합니다.

몇 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관람하도록 시설을 세우고, 수십억의 인구가 미디어를 통해 이 전투(?)를 생생하게 지켜볼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전투인 경기를 보며, 우리는 감정을 이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울고 웃곤하지요.


현대판 콜롯세움.



 6.


어? 글을 쓰다보니 앞서 말한 것과 다르게 역설적으로 축구는 평화의 스포츠가 되는군요.


위기상황에 긴장해서 스트레스로 인해 분비되는 것이 아드레날린인데,

환경이 안정성이 보장된다면 쾌감과 흥분의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나요?

그래서 놀이기구나 번지 점프가 재미있는 거고...


축구는 전쟁과 달리 지더라도 영토를 빼앗기는 것도 아니고.. 싸움 중에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으며..

무엇보다 생존을 위협하지 않아요.

치열한 경기 후, 결과가 나오면 만약에 졌으면 패배를 밑천삼아 노력해서 후일을 도모하면 되는거고,

승리하였다면 그 영광 만을 취하면 됩니다.


picture/2009/j3/20090608/20090608085555875j3_102927_0.jpg

영광... 영광.. 김영광(응?)



7.


뭐.. 결론은 버킹검(?) (아악.. 나이 드러나는 이런 고릿적 유머를...)은 아니고..


여튼, 인간은 참 재미있는 동물입니다.

생존을 위해 치루던 전쟁조차도 그 양식을 모방하여 하나의 유흥거리로 만들어 버리니...


우리는 거칠고 열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안전한 이 행사를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즐기면 되는 겁니다.




끝.




--


제가 뭐 전문가도 아니고, 전술이나 축구 테크닉 그런 것은 잘 모릅니다만..

축구경기를 이러한 시각으로 보다보면 그 재미가 나름 더하더라구요.

이런 생각, 저런생각 나눠 볼까해서 졸필에 썰 좀 풀어봤습니당.




덧. 아르헨전 우리나라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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