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퓨리오사를 봤어요. 토가시가 말했듯이 작가를 하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는 힘들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니가 나보다 잘 만들었나 보자'라는 마인드로 보게 되거든요.


 

 2.특히 퓨리오사같은, 문제지 같은 프리퀄 영화는 더욱 그렇죠. '퓨리오사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퓨리오사가 되었는지 답안지를 작성하시오'라는 문제지를 받아든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에게나 이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나, 그 문제지는 동일하게 주어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시험을 보는 사람인 동시에 채점하는 사람인 거예요. 저렇게 살벌한 동네에서 어떻게 한 여자아이가 사령관으로 승격하는지, 그 과정에 억지는 없는지 자신도 문제를 푸는 동시에, 감독이 제출한 답안지에 채점까지 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까요. 



 3.그리고 나도 퓨리오사를 보러가기 전에 이미 나만의 퓨리오사 스토리를 마음속으로 한편 써 두고 퓨리오사를 보러 갔죠. 당연히 감독이나 스탭들은 이 영화를 각잡고 만들었을 테니 내가 쓴 것보다는 재밌길 바라면서요. 


 사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면 늘 기분이 좋아요. 내가 생각한 스토리보다 재밌으면 내가 낸 돈값을 하니까 기분이 좋고, 내가 생각한 스토리보다 재미가 없으면 내가 이겼으니까 기분이 좋죠.



 4.휴.



 5.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퓨리오사를 위해 이런저런 조정이 가해진, 너무 상냥한 웨이스트랜드예요. 퓨리오사가 사령관이 될 수 있도록...잘 뜯어보면 상당히 상냥하고 편리하게 환경이 돌아가고 있죠.


 물론 그건 어쩔 수 없어요. 퓨리오사가 사령관이 되는 데 수저빨은 처음부터 없는 스토리였고, 저런 세상에서 납치된 여자아이가 사령관이 되는 건 운빨이 없으면 안되니까요. 러닝타임 2시간 반 안에 납치된 여자아이가 사령관이 되는 결말로 끝나려면 그럴 수밖에 없죠.


 너무 비판적으로 말한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좋아요.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실화가 아니라 신화의 영역이니까요. 퓨리오사같은 여자아이가 사령관이 되는 건 현실이 아니니까. 그리고 감독에겐 다행스럽게도, 각본에 설득력은 그리 필요 없었어요.


 

 6.왜냐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한 건 독기가 줄줄 흐르는 안야의 눈빛이거든요. '어? 이 스토리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안야가 눈에 힘 빡 주고 스크린 밖을 한번씩 노려봐주면 '아 이거 말이 될 수도 있겠다.'라고 납득되는 눈빛이니까요. '어? 퓨리오사치곤 떡대가 너무 좁은 것 같은데?'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안야가 안광을 한번씩 쏴 주면 '떡대는 중요하지 않지...'라고 납득되고요. 


 테론의 퓨리오사가 삶에 쩌든 베테랑의 눈빛이라면 안야의 퓨리오사는 이제 막 라이징중인 소녀의 독기가 줄줄 흐르는 눈빛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사실 기본 덩치나, 만들어온 피지컬이나 테론의 퓨리오사가 더 말이 되지만...위에 썼듯이 누가 연기했든 어차피 말이 안 되는 캐릭터인건 도찐개찐이거든요. 그래서 표정과 눈빛으로 먹어주는 안야의 퓨리오사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7.이번 글은 스포 없이 쓰려니 힘드네요. 이쯤 쓰고 스포 있는 감상평은 다음에 써야겠어요.


 일단 퓨리오사는 꼭 보길 추천해요. 퓨리오사는 페미니스트를 위한 영화거든요. 인터넷에 난립하는 어중이 떠중이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아닌, 나 같은 진짜 페미니스트를 위한 영화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013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913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9446
126340 [공지] 듀나의 [면세구역]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4] DJUNA 2013.08.20 11771
126339 [펌] 영드 '셜록' OCN 게이예고편 해외반응 [22] 빠삐용 2011.02.04 11767
126338 [연애상담] 종교문제에 대한 글,,,, 남자친구의 입장입니다. [120] 랄랄라 2012.07.23 11761
126337 혼돈의 카오스, 기독당 12대 정책 [21] chobo 2012.04.04 11758
126336 내용 지울께요 [49] 차이라떼 2014.01.30 11748
126335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건 어떤 심리 인가요? [33] 잠익77 2013.01.30 11748
126334 틸다 스윈튼이 남자 같다고 대체 누가 그럽니까. 너무 예쁘잖아요. (올란도) [7] 비밀의 청춘 2011.12.02 11748
126333 TED, 대니얼 데닛 위험한 밈(meme)에 관하여/수잔 블랙모어의 밈과 "팀" [3] philtrum 2010.09.21 11729
126332 아이유와 엘렌 페이지 [10] magnolia 2011.01.07 11726
126331 일못하고 개념없고 싸가지 없는 부하직원 대하는 법좀 알려주세요 --; [27] no way 2011.03.14 11712
126330 미국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 대회 [6] 도돌이 2010.06.14 11712
126329 김어준 애인이 이 사람이었군요. [31] poem II 2011.10.28 11703
126328 남자는 정말 어린 여자를 좋아할까? [73] 세멜레 2013.04.07 11675
126327 오늘 무한도전은.. [44] 보이즈런 2010.09.11 11668
126326 나탈리 포트만을 아내로 둔 남편의 표정 [22] 사과식초 2012.10.24 11653
126325 국제전화로 오는 보이싱 피싱, 받으면 전화요금이 나가는 경우도 있나요? [5] chobo 2010.10.04 11635
126324 혹시 술드시고 나면 팔이 아픈분 계십니까? [13] 불별 2011.02.05 11634
126323 내 생애 최악의 소개팅남에게 [85] 겨울매화 2012.11.17 11630
126322 사과 같은 수지 [8] lab 2011.09.17 11624
126321 일주일에 하루 단식하면 살좀 빠질까요? [23] 무비스타 2011.01.07 1162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