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포) [탈주]의 구교환을 보고

2024.07.11 17:04

Sonny 조회 수:310

common-10.jpg



구교환의 군인 역할은 벌써 몇번째일까. 그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건 [반도]의 서대위 역할이었다. 서대위에게는 부대를 호령하는 카리스마 대신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이 더 도드라졌고 뭘 할 지 모르는 예측불가성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모가디슈]에서는 북한쪽 태준기 참사관을 연기했다. 태준기는 남한사람인 우리가 상상할법한 북한사람의 꼬장꼬장함과 울분이 있었고 그래도 제 식구를 챙기는 인정과 마지막을 향해 돌진하는 패기가 있었다. 이제 남한의 청년들이 모두 열광하는 드라마 [디피]의 호랑이 열정 한호열이 있다. 그의 뺀질거림과 적당한 타협이 얼마나 근사했는지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네번째, 구교환은 [탈주]에서 북한국 부위부 소좌 리현상을 맡았다.

구교환이 군인 역할을 많이 맡았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가 군인 역할을 반복해서 맡는데 그것이 늘 신선하다는 것이 훨씬 더 핵심이다. 한명은 우울증 환자, 또 한명은 성실한 공무원, 또 한명은 도리를 아는 뺀질이, 또 한명은 고뇌하는 사냥개다. 그 어떤 캐릭터에서도 그의 능글맞음과 예민함은 늘 발견되지만 그것이 결코 동어반복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군인을 추적한다는 같은 업을 맡고 있음에도 한호열에게서 타의적 근면함이 있다면 리현상에게서는 계급적인 응징욕구가 느껴진다. 다른 캐릭터들이 그렇듯 구교환의 군인 캐릭터도 계속 "변주"된다.

그가 맡은 캐릭터들에는 왜 이렇게 군인이 많을까. 그것은 그 캐릭터들과 뜻하지 않게 인연이 닿은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군인이라는 캐릭터가 구교환의 연기를 더 빛나게 하는 역설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군인은 본래 규율에 종속되어있고 다른 직업보다 부자유가 훨씬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군인이란 직업이 본질적으로 폭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배우 구교환의 무언가를 계속 자극하는 설정은 아닐까. 자유롭고 싶고, 때로는 일탈도 하고 싶은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억눌려있는 상황에서 그는 종종 캐릭터를 통해 폭력을 터트리곤 한다. 그래서 구교환의 군인은 늘 보는 사람을 긴장시키곤 한다.

군인에 종사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자유를 담보로 곧 규율에 종속되는 과정이다. 동시에 그 결과물인 권력으로 타인을 복속시키려하는 게 군인이다. 모두가 얽매여있어야한다는 이 부조리를 자해하듯이 그려내면서, 거기서 탈출하려는 과정의 스트레스를 이렇게 표현하는 다른 배우가 또 있을까. 군복을 입은 채 웃고 있는 얼굴, 굳은 얼굴 뒤로 문득 스쳐지나가는 그 억압의 스트레스가 가끔씩 예리하게 빛난다. 아마 [탈주]는 군복을 입은 구교환에게 가장 온전한 권력과 제일 강한 부자유를 동시에 쥐어주고, 자해하기 직전의 그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그런 영화일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37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42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742
126860 [영화바낭] 좀 특이한 아포칼립스물, '빈센트: 살인유발자' 잡담입니다 new 로이배티 2024.07.30 80
126859 파묘 (2024) [5] update catgotmy 2024.07.30 173
126858 인기감독 데이비드 린치…? [7] update ally 2024.07.30 202
126857 프레임드 #872 [3] update Lunagazer 2024.07.30 51
126856 용쟁호투에 나온 모영 [1] update 돌도끼 2024.07.30 72
126855 홍금보라는 싸나이 [3] update 돌도끼 2024.07.30 95
126854 포스터로만 보던 그 시절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고 [3] update Sonny 2024.07.30 139
126853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두 편 짧은 잡담입니다. [5] update thoma 2024.07.30 223
126852 양궁 남자 단체전 금메달 후 나온 드립 [4] update daviddain 2024.07.30 228
126851 한화 야구의 약점 catgotmy 2024.07.30 86
126850 잡담 여러가지 ND 2024.07.30 134
126849 [영화바낭] 드디어 엔터 더 드래곤! '용쟁호투' 차례입니다. [15] update 로이배티 2024.07.29 206
126848 8월 8일 서울공항 도착하니까 새 라인 ID daviddain 2024.07.29 105
126847 에피소드 #100 [4] Lunagazer 2024.07.29 35
126846 프레임드 #871 [4] Lunagazer 2024.07.29 36
126845 소원이라고는 책 속에서 조용히 나이드는 것 뿐 [8] ally 2024.07.29 220
126844 요시모토 바나나가 일본에서 어떤 이미지인가요? [2] 한동안익명 2024.07.29 278
126843 할인쿠폰으로 예매할 때의 송구한 기분... [4] Sonny 2024.07.29 177
126842 잡담 - 천지는 못보셨지만(Feat. 금강산 관광, 대동강맥주, 후지산을 두 번 오르면 바보) [4] 상수 2024.07.29 119
126841 코로나 백신 거부에 대해 [2] catgotmy 2024.07.29 23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