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바낭] 버리고 싶은 것.

2011.02.06 06:07

산체 조회 수:1117

벌써 밤이 늦었네요.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손을 대기 두려워 며칠 째 딴청만 부리고 있어요.

그러면서 달리 할 일이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지요. 시간을 때우며 무언가를 써보고 싶은데 듀게가 좋을거 같아요.

바낭바낭한 밤입니다. 하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게 무언지.

하루하루를 외로움, 쓸쓸함, 허전함 등으로 채워가다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데 전문가가 되어가는거죠.

그래서 말인데 저는 참 가지고 있는게 없는거 같아요. 남들 사는걸 이리저리 훔쳐보고 내린 결론이에요.

 

저는 그, 남들은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의 대부분을 부러워 한답니다.

예를 들면 그런거죠. 재산, 재능, 근성, 애인, 추억, 애착, 반려 고양이, 타인에 대한 애정, 타인으로부터 받는 애정, 자신감, 통찰력, 왠만하면 4강에 진출하는 응원팀 등등....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건 그가 가진 어떤 것을 통해 가능하다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내 삶을 지탱하지는 못하겠죠. 하다못해, 그것이 내 삶에 짐이 된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있으니까 살아지는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남들이 가지고 사는걸 가지지 못하면 참 밍숭맹숭한, 술에 물탄 듯 물에 술 탄 듯, 니 맛 내 맛도 없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거죠.

 

곰곰이 생각을 해봤더니 그나마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크게 3가지 정도가 있는거 같아요.

미련과 희망. 그리고 몇년 째 4강에 진출하지 못한 응원팀.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워요. 이제 사실상 20대가 다 저물었는데, 제 20대를 돌아보니 기억할만한, 뭔가 뚜렷하고 선명한 순간이 남지 않은거죠.

그래서, 그때 이렇게 할껄, 저렇게 할껄, 하는 미련만 남았어요. 크게 좋은 기억도 없지만 나쁜 기억도 없는, 그저그렇게 희미한 형태로만 남아있는 지난 세월이 아쉬운거죠.

그리고 내 앞에 남아 있는 날들에 대한 희망도 아직 가지고 있어요. 뭐 앞날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거니까. 벼락처럼 좋은 일을 마주할 수도 있는거라고.

여자친구가 생길 수도 있는거니까. 내가 하는 일이 잘풀려서 이름을 날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운이 좋아서 일 적고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래저래 지내다보니, 결국 그러한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지요.

 

아, 내가 힘들고 짜증나는 이유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이었구나.

 

그 중에서도 말썽을 일으키는 놈이 바로 그 '희망'이라는 녀석이에요.

잘 생각을 해봤더니 내가 힘든 이유는 그 희망 때문이었어요. 희망만 버리면 훨씬 나아질 수 있을거 같은데. 자유로워질텐데.

그런거에요. 난 여자친구가 없지만 내가 힘들고 짜증나는 이유는 그 없는 여자친구가 아니었어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저를 괴롭힌거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럴리 없잖아요. 우리 모두 알잖아요. 안생기는거.

다른 일도 마찬가지죠. 저는 제가 하는 일을 뛰어나게 잘하지 못할거에요. 재능도 없고, 솔직히 재능이 없는건 별 문제도 안되는데 내가 원하는걸 이룰만큼 노력도 안하니까.

하지만 잘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쓸데없는걸 보고 내가 나를 괴롭히는거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는 그래요. 이젠 가진 것도 없지만, 이것만은 버리고 싶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희망. 이루어지지 않을걸 바라는 마음.

그것만 버리면 나를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을거 같아요.

 

언젠가 제가 바란대로, 그 무엇도 희망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체념만을 가진 삶을 살 게 된다면, 그 인생도 참 쓸모없고 가치없는 것이겠죠.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아요. 그런 것도.

 

그래서 희망이라고 할만한 것을 거의 다 버렸지만, 그래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 버리지 않은 것이 하나 있는데,

올해는 4강에 갈거라는 희망만은 가지고 있어요.. 아 진짜 올해는 할 수 있을거 같아요. 알트리지만 터져주면, 정호 부상만 안당하면 4강 충분히 가능해요.

영민이랑 성현이 군대가기 전에 4강 가야되요. 걔네 군대 가면 또 암울해져요. 장석이가 딴짓 안하고 있을 때 가야해요.

 

 

 

 

....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도 알아요. 저는 결코 어떤 희망도 버리지 못할거에요.

그게 이 망할놈의 삶이라는거겠죠. 어쩌면 결코 버리지 못할걸 아니까 그 무엇보다 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거에요. 다른건 다 버려도 그건 버리지 못하실거에요. 분명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느새 내 품안에 자리잡고 있는 녀석을 발견하겠죠.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희망은 물을 주지 않아도 어느샌가 내 안에 무럭무럭 자라나 있어요. 언젠가는 잘될거야. 나아지겠지. 좋아질거야.

커져버린 그 녀석들 때문에 또다시 상처받겠지만, 다시금 잘라버리려 하겠지만 그것들만큼 확실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걸요.

 

 

 

비록 얼마전 발표된 순위에서는 21위에 머물렀지만, 내맘대로 순위에서는 2000년대를 빛낸 앨범 1등을 차지한 할로우잰의 앨범 맨 마지막 트랙 맨 마지막 가사가 그래요.

울고 불고 지랄 발광을 하지만 내용은 그런거죠. 돌고 도는 인생.

저는 그 가사를 들을 때면, 들으면서 따라할 때면, 이상하게 눈물이 날거 같아요. 내 얘기라서. 그런 돌고 도는 인생이라는게.

 

"시간을 잃고 쓰러져가도 언젠간 다시 되돌아 온다. 똑같은 삶. 똑같은 꿈. 언젠간 다시 되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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