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9 12:57
이 곳에서는 공립학교안에 유치원 과정이 2년 포함된 형태로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아이 유치원 입학을 준비하면서 그야말로 대입을 방불케 하는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좌절을 경험했던 저로서는 이사오면 그 동네에 있는 학교 부설 유치원으로 당연히 배정이 되는 시스템이 너무나 고마왔습니다.
졸업식은 긴 여름 방학을 앞둔 6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체육관에 유치원 아이들이 무대에 관객석을 바라보고 앉고, 관객석엔 다른 학년의 언니 오빠들이 빼곡히 앉고, 제일 뒤에 부모님들이 세줄로 앉았습니다. 세 클래스의 졸업반 아이들이 각각 한 곡씩 준비한 노래를 발표하고, 다 같이 유치원 노래를 부르고, 언니오빠들이 한 선생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답가를 불렀는데 노래가 하나같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농구부 아이들에 대한 시상이 있었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하고 졸업식을 마쳤습니다. 거창한 사각모에 가운도, 대단한 표창장도, 꽃 한 송이도 없이 그야말로 조촐한 분위기에서 치뤄진 행사였지만 충분히 그 의미는 살리고 있었어요. 교장 선생님 말씀은 또 어찌나 짧은지 "졸업은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모두 화이팅!" 정도의 간결한 메시지가 한국에서 몸을 배배 꼬게 만들었던 교장선생님 말씀과 비교되어 짜릿하더라고요.
졸업식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의 청소를 맡아주었던 Mr.프라이드(가명)의 은퇴식이었습니다. 다른 소박한 순서와는 달리 정말 거창하게 이 분을 소개하길래 누군가 했더니 학교에 들어설 때마다 문을 열어 주고,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아주 작은 키의 스패니쉬 할아버지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이 분이 얼마나 학교를 위해 헌신하고 아이들을 아껴주었는지, 학교에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지, 그의 빗자루와 걸레가 얼마나 스페셜한 힘을 갖고 학교를 아름답게 해주었는지에 대해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교생과 학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를 불러 인사하고 선물을 증정했지요. 큰 박수를 받은 Mr. 프라이드는 매우 감격에 겨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 이런 장면, 한국 학교에서도 보고 자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이 학교는 전교생이 몇백명 안되는 작은 학교입니다. 올해 2월까지 학교를 맡았던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름을 전부 외울 정도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저는 잠깐 오피스에서 그 분을 뵐 때마다 환한 미소와 다정한 인사에 마음을 뺐기곤 했었죠. 아이 학교 주변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많아서 등하교 시간에는 교통정리를 도와주는 봉사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아침 학교 앞 길 모퉁이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이들이 다칠세라 어깨를 안고 길을 건네주던 봉사 아주머니가 바로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분이 다른 학교로 가실 때 진심으로 눈물이 날뻔했더랬죠. 비록 지금 우리 주(province) 교사들의 파업으로 아이들의 성적표도 못 받고 학년을 마치고는 있고, 시설이나 프로그램의 열악함, 교사의 마인드에 대해 놀랄 때도 많지만, 어떤 면으로는 이 나라에서 학교라는 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유치원생에게 학습이 웬말이냐며, 무조건 그림그리고 만들고 노래하고 자연속에서 뛰어 놀게하는 이곳 교육 목표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어찌됐건 아이가 무사히 유치원을 졸업하고 일학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다행히, 2년 동안 한국 유치원, 불어 유치원, 영어 유치원을 오가는 정신없는 생활을 잘 버티고 적응해 주어 어디서나 사랑받고 친구들과도 제법 어울리고, 교실 게시판을 자기 그림으로 빼곡히 채우는 아이로 자라주었습니다. 아직은 또래 중에 키도 작고 여기 아이들처럼 고무공같은 체력으로 뛰어놀려면 분발이 필요하지만요. 일가친척 하나 없는 머나먼 땅에서 그야말로 오로지 혼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2년간 키웠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에게도 고생했다고 격려를 해주고 싶습니다. 짧은 일주일간의 방학 동안 아이랑 좀 놀아주려고 해요. 그동안 두어번 밖에 못가본 토론토 읍내에도 좀 나가보려고요. ㅎ
2015.06.29 13:07
2015.06.29 13:23
아, 알것 같아요. 저도 한인 전혀 없는 동네의 유학생 신분이라 ㅎ 별거 아닌데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나눈 한 두 마디가 하루 종일 기분좋고.. 그렇게 살거든요. 그런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여유란 역시, 안정적인 정규직 신분 하에서 쌓아온 직장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가능한 것이겠지요.. (칭찬 감사해요, 저는 loving_rabbit님 팬이지요 ㅎ )
2015.06.29 13:08
우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람 대접 제대로 하는 분위기라는 게 부럽습니다.여기서는 사람 막 대하는 장면을 너무 많이 접하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 같아서요. 인격도야 이런 거 다 떠나서 그게 결국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가겠죠.
그곳의 아동교육 철학도 부럽고요. 그 동네 교육은 북미권이라고 묶는 게 맞는지 영국권(?)이라고 묶는 게 옳은지 모르겠어요. 오바마가 한국 교육 어쩌고 하던 것이 갑자기 떠올라서요.
2015.06.29 13:31
맞아요. 이 나라는 참 사람을 귀하게 소중히 여기는구나.. 싶을 때가 많은데 그게 이 나라가 특별하거나 잘나서가 아니고, 여긴 땅덩이가 넓은데 인구는 적고, 한국은 땅덩이는 좁은데 인구는 많다 -> 이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 이 정도의 인간 존중을 내 생애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고 제 맘대로 결론을 내렸죠; 북미권이 맞긴 한데 (스쿨버스 모양부터 학교 운영 시스템이 비슷한 것 같고요), 미국은 개인의 능력 개발에 초점을 둔다면 캐나다는 건강한 시민 교육에 초점을 둔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아요.. 캐나다 교사들은 공부 잘하는 것보다 규칙 잘 지키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아요..
2015.06.29 13:50
2015.06.29 13:26
2015.06.29 13:34
아하하.. 안그래도 저에게 내리는 특별 포상(?)으로 맥주 한병에 새우깡, 듀게를 할 귀한 시간을 주었지요. 감사해요~ :)
2015.06.29 13:33
2015.06.29 13:36
감사합니다~ 아빠간호사님 아기는 아직 JK 가려면 좀 남았지요? 데이케어가 비싸다던데.. 빨리 무료 공교육의 혜택을 받으시길~
2015.06.29 13:45
2015.06.29 14:03
앗 그 힘든 CSQ까지 받으셨군요! 퀘벡이 데이케어나 렌트가 저렴해서 같은 월급이면 좀 더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마 퀘벡으로 가셨다면 PR은 받으셔도 불어 문제 때문에 지금처럼 좋은 조건의 잡 구하시기에는 조금 더 힘드셨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니 따뜻한 뱅쿠버에 계신 것이 좋은 선택이셨을 것이라고.. 참고로 저도 역시 불어 문제로 온주로 넘어왔답니다. 온주는 퀘벡 렌트비의 130%가 넘는 것 같네요. 데이케어 2천불 되는 곳도 많다면서요. 연 24000불이면 사립 보낸다는 말 농담 아닌 것 같아요. 데이케어 만큼은 한국이 선진국인가요. 그나저나 언제 아빠간호사님의 영어 비법을 전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스피킹 너무 안 늘어요 흑 기분 탓일까요? 나이 탓이겠죠..
2015.06.29 13:49
축하드려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살짝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차이라떼님이 소박한 것에도 감사하시고 생활하셔서 아이도 새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프라이드씨의 은퇴식은 감동적이네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 많이 어려울까요.
2015.06.30 03:39
august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것.. 조금씩 바꾸어갈 수 있겠지요? 요즘은 며칠 전에 검색하다 일베라는 곳에 들어가보고 절망모드 중이어서 좀 더 냉소적으로 되었나봐요. august님 같은 분이 많아지면 분명 가능하겠지요..
2015.06.29 14:12
축하드려요, 아 차이라떼님 아이는 선물이 보다 한살 정도 많은 가봐요, 선물이도 여기 유치원은 졸업입니다 (여긴 졸업식같은 건 없어요) 뭐 끝낸 아이가 겨우 두명인데요. 그리고 학교를 가는데 빵학년이에요. 정식 1학년을 하기전에 학교라는 걸 다니는 것에 대한 1년간의 예습입니다.
정말 아이들 크는 거 신기하지요? 언제 이렇게 자랐지? 하고 있습니다. 일가 친척없이 혼자하는 엄마한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는 아이만큼 감사할 존재는 없는 거 같아요.
2015.06.30 03:46
네 맞아요. 선물이보다 한살 쯤 많은가봐요. 선물이도 졸업이군요. 빵학년 귀엽네요~ 졸업과 입학 축하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귀여운 선물아~! 저도 아이가 건강하고 씩씩한 것, 지금으로선 그 이상은 바라지 않고 있답니다. (그러려면 제가 늘 씩씩해야 하는게 가끔은 버거운 것도 맞고요- )
2015.06.29 14:26
수고 많이 하셨어요.그리고 축하드립니다.
2015.06.30 03:47
보리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ㅎ
2015.06.29 14:39
고생 많으셨어요. 축하드립니다.
글자로 전해들어도 찡한 졸업식이었네요.
2015.06.30 03:48
모시송편님 감사합니다~
이 동네에선 뭔가 되게 건성인데 진심이 담긴 이상한 진정성을 느껴요 가끔 :)
2015.06.29 15:39
저도 아이가 생긴다면 Mr.프라이드 같은 주변 분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네요. 한국에서 정말 그리 요원한 일일까요..? ㅜㅜ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아이 졸업도 너무 축하드려요.
2015.06.30 03:49
산보님 감사합니다. 제가 넘 비관적으로 썼나봐요. 한국에서도 물론 가능한 일이겠죠 :) (정권이 바뀌면 혹시? ㅎ)
2015.06.29 17:51
2015.06.30 03:50
우와~ 러브귤님 캐나다에 여행오시나요?
신기하네요. 토론토 오신다니~ 만나뵐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기도 하고요 ㅎ
좋은 시간 보내다 가시길 바래요~ 안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답 허그 ^^*
2015.06.30 12:31
저도 괜히 꼬옥 안아주고 싶어요. 아이야. 졸업 축하해!!!!
2015.07.01 10:35
고마워요, shanti님~ ^^ 건강 잘 챙기셔요~
글을 좀 맛나게 (?) 쓰시는 것 같아요. 저도 유학할 때 기숙사 건물 직원분들(모두 몇십 년씩 근무한 학교직원)이 오갈 때 따뜻한 말 건네줘서 참 고마웠는데 (기말시험 공부에 지쳐서 귀가할 때, 시험공부에 고생이 많지, 다 잘될거다 이런 뻔한 말에 힘을 얻었더랬어요) 그래서 그런가 프라이드 아저씨 은퇴에 막 감정이입이 되어버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