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 best & worst

2010.06.03 08:00

로이배티 조회 수:5779

대학생 시절, 총선이 있으면 아침에 투표하고 저녁에 학교 친구, 선배들과 만나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며 개표 방송을 보곤 했습니다.

지지하는 쪽이 앞서면 신난다고 원 샷, 뒤지면 열 받아서 원 샷, 추격하면 또 힘 내라고 원 샷, 결국 어떤 지역에서 이기면 기쁘다고 한 잔 더 하고 지면 우울하다고 한 잔 더 하고...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짓인데, 어제 갑자기 생각나서 집에서 와이프와 막걸리 마시면서 두시 반쯤까지 중계를 보다가 잤습니다.

덕택에 출근한 지금 컨디션이 영 메롱메롱하군요. 잠든 사이에 뒤집힌 지역이 있어서 더 피곤하기도 하고... -_-;;

어쨌거나.


가장 맘에 드는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3. 강원도지사 & 교육감 : 한나라당에 대한 강원도의 오랜 짝사랑이 드디어 끝이 났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호구 노릇도 하루 이틀이죠. 뭐 사실 민주당 뽑아준다고 해서 갑자기 강원도에 콩고물이 막 떨어지고 그럴 일은 절대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그 동안 그렇게 희롱당했으면 따귀 한 대 정도는 날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결과가 그렇게 기쁜 건 물론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계에 투신한 이계진씨에 대한 얄미움 때문이 크긴 합니다만(...) 당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 뭐 하고 계실지. 흐;


2. 경상남도지사 : 다른 것 다 무시하더라도, 경상도잖아요. 경상도란 말입니다. ;ㅁ; 한나라당 싫은 사람들은 경상도에서 한나라당이 패해서 좋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앞으로 몇 십년간 이 결과를 들먹이며 '우린 전라도 놈들처럼 공산당 선거하진 않는다규!!!' 라면서 잘난 척 할 수 있어서 좋고. 윈-윈이라고 생각합니다. 으하하.


1. 경기도 교육감 : 그게 누구 탓이든 간에 사실상 지난 임기 동안 눈에 띄는 결과를 내놓으신 게 거의 없어서, 게다가 어차피 도지사는 김문수가 될 테니까(그냥 분위기가 그래요. 누가 뭐래도 김문수는 꽤 인기가 많습니다;) 당선이 그리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역시 '공짜'의 힘은 위대하더군요(?) 뭐 기분 같아서는 '경기도민들의 의식이 변하고 어쩌고 저쩌고' 라는 식의 얘길 하고 싶지만, 문수씨가 그토록 무난하게 당선되도록 만든 사람들도 경기도민이니만큼 역시 무상 급식 공약의 힘이라고 생각해야겠죠. 딱 한 가지 흠집이 있다면... 도지사님하의 얼굴과 비례 대표 정당별 득표수를 보면 이번 임기 동안에도 도대체 뭘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 orz


싫은 결과는... 두 개만 얘기하겠습니다. 싫으니까;


2. 아아 김문수. ㅠㅜ

원인들이야 찾아보면 많겠지만 일단은 뭣보다도 이 동네 유권자들에게 이 사람의 이미지가 워낙 좋아요. 적어도 어르신들에겐 거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이 사람입니다. '황우석 연구소' 같은 거대 삽질이라든가 뭐 흠도 많긴 하지만 사실 사람들에게 딱 와 닿는 수준에서는 크게 삽질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거기에다 여당이라는 어드밴티지까지 업고 있으니 비호감 아이돌(...) 유시민에게는 애초부터 벅찬 상대였다고 봅니다. 애초에 투표할 때 부터 이 사람은 당선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네요. 아싸리 유시민과의 표 차이도 커서 심상정씨도 괜한 욕은 좀 덜 먹어도 될 것 같고 말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뻔한 얘기지만, 티비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빨이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인 것 같습니다. 폼이 중요한 거지 승패(?)는 별 의미가 없어요.


그나저나 이제 유시민씨는 어디에서 놀아야 하나요. 이쪽 저쪽 모두에게 밉보여 버려서리;


1. 훈이 어린이.

두시 반쯤 자러 갈 때까지 한명숙 후보가 리드는 하면서도 차이를 거의 벌리지 못 해 질 것 같단 생각이 들긴 했었지만, 밤을 세워(...) 결과를 끝까지 보고 출근한 와이프님하와 아침에 의사 소통이 잘 못 되어서 한명숙씨가 이긴 걸로 알고 출근했어요. 그래서 기분 좋게 출근해놓고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오 마이 갓... orz 그래서 더더더더더더욱 우울합니다. 어흑.

공정택 당선 때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것도 너무너무 짜증이 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 부자 동네 삼총사에게 농락을 당해야 하는지. 그나마 그 쪽이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편이었다길래 조금은 희망을 가졌었는데, 성실한 사람들은 죄다 훈이를 찍었나 보죠. -_-+

그리고 쫌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득표 차. 이건 뭐 노회찬씨와 진보신당더러 두 번 죽으라는 결과로군요. 이런 꼴 보기 싫어서 한명숙씨가 이기든가, 질 거면 아예 큰 차이로 져 버렸으면 했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이 결과 때문에 노회찬씨나 진보신당을 비난하는 건 (심정적으론 쬐끔 이해할 수 있긴 합니다만;)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당연히 민주당의 책임이죠. 이 사람들이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비전 같은 게 제대로 잡혀 있기라도 했다면, 지난 몇 년간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모습만 보였다면 노회찬씨가 나왔든 말든 이번에 당선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명색이 전통의 제 1야당이면서 이 사람들이 그 동안 한 게 뭐 있습니까? '한나라당 공식 안티 모임' 이면서 다른 안티들에 비해 세력이 커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외에 이 당의 존재 의의가 뭐가 있을까요. 사실 저도 이번 선거에서 이 쪽 사람을 한 명 뽑긴 했습니다만, 그 사람이 당선되어서 뭔가 잘 하리란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한나라당 당선되는 게 싫었던 거죠. 지들이 당선되고 싶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당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게 하란 말입니다. 기본적인 노선도, 생각도 다른 후보들 갈취하면서 비난 돌리지 말구요.


암튼.

슬퍼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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