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호라는 건 첫경험이 무엇이었냐에 깊히 영향을 받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첫경험이 형의 손에 이끌려 간 동네 아케이드의 알록달록 셀로판지를 붙인 흑백 스페이스 인베이더인 저에게 이미 그때부터 게임이란건 그런 거라고 결정지어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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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7살 터울의 형은 동네 아케이드의 스타였습니다. 

일찌기 동네 딱지를 다 따버린후 아이들 사이에 '어딘가에 파묻었다', '불태웠다'는 루머가 나게 하는 등 오징어 게임에 나올법한 각종 아날로그 놀이를 이미 석권한 형이 새로운 세상인 전자오락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100판이 마지막일거라고 루머가 돌던 갤러그를 50판짜리 V자 휘장을 3개 따고선 휑 하니 뒤도 안보고 나가버리는 모습이라든지, 극악한 난이도의 마계촌을 동네 최초 원코인 엔딩을 하고 주변의 갤러리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때의 형님의 모습에선 잠시나마 진짜 후광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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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집에 들인 가정용 게임기 또한 중학교 시절 전기회로에 빠져들었던 형님이 전기상가 으슥한 어디쯤에서 입수한 DIY 퐁 게임 전기회로 세트였습니다. 

땜질과 실패를 반복하며 며칠 밤을 세운 뒤의 어느날 밤 자던 저를 굳이 깨워서 그 자글거리는 검은 화면에 2개의 흰색 바만 덩그러니 있는 게임을 보여주던 형의 광기어린 얼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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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휴대용 게임기는 형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게임&워치 류의 듀얼화면의 스페이스 코브라 게임이었습니다. 반다이에서 만들어서인지 은색의 슬릭한 외형에 열리면 푸른 색의 게임기가 나오는 기믹은 너무나 멋졌어요. 그후로 수년간 형제, 자매끼리 부모님 심부름이나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용도로 잘 이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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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형은 성인이 되어 게임을 졸업하고 저는 그렇게 혼자 남았습니다.

새천년이 열리고 블리자드, pc방,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었지만 그건 저의 길이 아니었죠. 아케이드 게임, 비디오 게임, 미니 게임기로 컸던 저에게 컴퓨터로 하는 게임이란 개념 자체가 괴리감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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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20년, 이종교배된듯 스위치 게임으로 마침내 접하는 디아블로2는 뭔가 복잡한 심경이 듭니다. 

이 게임은 얼마나 대단한 게임 경험을 안겨주려고 20년전 게임 환경마저 복각하듯 시작하기도 전에 수차례 튕기고 캐릭터가 삭제되기까지 하는 경험까지 굳이 안겨주는걸까? 투덜투덜 욕하면서 꾸역꾸역 액트5까지 왔는데 아마도 최종보스일 바알 바로 앞에서 자꾸 튕깁니다. 이게 뭐라고 미칠것 같습니다. 안되는걸 알면서도 며칠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불꺼진 집앞에서 서성이듯 접속하고 튕기고를 반복합니다.

누가 좀 말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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