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왔어요

 

어제 답답함을 못이겨 오늘 휴가를 내고
새벽같이 일어나 동서울에서 버스타고 진부로 왔어요.

 

진부에 무엇이 있냐면...
한국자생식물원과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 방아다리 약수
그리고 앵무새 학교가 있지요.

 

저는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관계로 자생식물원과 월정사,상원사를
갔다 왔어요.

 

예전에 사둔 아쿠아색상 우비를 입고 도감을 들고 식물원을 혼자
누비니 우와~다시 살아나는거 같았어요. 비오는 금요일 오전엔
사람이 저밖에 없더군요.

 

자생식물원은 제가 가본 수목원 중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곳이예요.
무심한듯 시크하게 특산종들이 잘 자라고 있어요. 마치 흔하다는 듯
널려있는 섬백리향(울릉도 특산종)이랄까요.

 

그리고 저는 오늘 기린초, 애기기린초, 섬기린초, 태백기린초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요. 기린초의 날.

 

월정사 가려 버스를 타니, 아까 오전에 절 식물원에 내려준 기사분이시더군요.
먼저 반겨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니 재미 있었어요. 설마 아저씨가 하루 종일
왔다갔다 하시는거냐고ㅎㅎ 하니 상원사는 안 가신대요.

 

월정사는 절보다 전나무길을 걸으러 갔어요. 2006년 10월 23일 쓰러진
거대한 죽은 나무 밑둥에 들어가니 아늑하더군요. 죽은 거대한 나무는
속이 텅 비고 이끼에 덮혀 마치 공룡의 뼈처럼 멋졌어요.

 

상원사는 히치를 하고 올라갔어요. 코앞에서 멍 때리다 버스를 놓쳤거든요.
이 동네 인심 신기하더군요. 엄지 손가락을 들고 팔을 붕붕 흔든 제 앞에
굳이 차를 세워서 상원사까지 안 간다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가신 보살님ㅎㅎ


한참을 기다려도 차가 아예 안 와서 포기하기 직전에 바로 다음 차가
왔지요. 부모님 또래의 부부셨어요. 아주머니는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뵙고 어떻게 된 연유인지 케익을 받아 나오셔서
절에서 케익도 먹어봤어요. 감사의 의미로 두 분의 사진을 찍어드렸지요.

 

상원사에는 조선 세조 때 만든 고양이석상을 보러 갔는데 맨질맨질해져
귀는 없어도 동그랗게 말린 아지랑이같은 꼬리는 아직 남아 있더군요.


그리고 어린 시절 국사시간에 귀에 박히게 들은 듯한 양대 종 중 하나인
상원사 동종을 드디어 봤는데, 에밀레종에 비해 많이 작았어요.
종보다 종루의 의자에 앉아 겹겹히 겹쳐진 능성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비워지는거 같더군요. 역시 여행은 멍 때려야 해요...

 

상원사 버스 막차를 탔는데 같이 탄 지역주민같은 아저씨가 기사님께
음료수를 건네더군요. 아는 사이인가 보다했는데, 저 아래 월정사에서
탄 아가씨도 기사님께 음료수를 드리네요. 이 동네 인심인가 봐요ㅎㅎ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부일식당에 내렸는데 1인분도 팔더군요.
방에서 양반다리하고 편하게 먹었네요. 나물가지수는 제법 되지만
남도에선 된장국과 두부에 나물만 내놓고 팔천원 받으면 욕먹을텐데
이런 생각도 잠시 했지요ㅎㅎ 하지만 하루종일 과일과 김밥으로 연명했던
저는 정말 깨끗히 모든 그릇을 비웠어요. 퍼펙트

 

그리하여 지금 게스트하우스.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의 편함에 반했는데

서울,전주,제주를 제외하고는 없더군요. 어제 무턱대고 '강원도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해서 나온 이 곳. 알록달록한 색에 아기자기하네요.

목수인 아저씨가 지었다는데 핸드메이드 느낌이 물씬 나요.

주인장의 6살짜리 둘째딸이 "여기 왜 왔어요?" 묻네요.

손님이라고 호들갑 떨지 않고 순수하게 왜 왔는지 궁금해하는 순수함에
웃으며 솔직하게 나무보러 왔다고 했지요.


여기 여자건물 첫 손님이래요. 제가^^ 그래서 지금 혼자 게스트하우스의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빗소리가 듣기 좋아요. 아름다운 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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