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8 11:04
"Either I am mad and all this isn't happening to me, or else I'm sane and it is."
데이빗 헤밍스가 연기한 팀 브랫은 영국인 작가입니다. 몇 년 전에 마약에 빠졌다가 죽을 고생을 해서 빠져나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한 권 썼지요. 이제 그는 이탈리아에서 룰루랄라 휴식을 취하는 중인데, 그만 일이 터집니다. 그의 친척 아줌마가 폼페이의 폐허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죠.
익숙해요, 익숙해. 데이빗 헤밍스가 이런 사건에 이런 식으로 말려든 건 처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관객들은 대부분 그의 75년 작 [딥 레드]를 먼저 보았을 테니, 혹시 이게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오래 끌지 않습니다. 컬러풀한 살인 장면도 없고 동시 녹음이며 이탈리아인들은 진짜 이탈리아어를 하거든요. 게다가 영화는 곧 무대를 영국으로 옮깁니다.
당연히 브랫은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노력합니다. 그는 살인사건이 스테핑 스톤즈라는 수상쩍은 단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그 증거로 그가 진상에 접근할수록 불길한 일이 일어납니다. 수상쩍은 인물들이 주변을 맴돌며 수상쩍은 소리를 늘어놓고, 협박전화가 걸려오고, 결정적인 증인은 죽고... 그러나 더 나쁜 일은 아무도 이 사실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죠. 모두들 이것이 마약중독자의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여러분은 브랫을 믿을 겁니다. 그는 주인공이고 살인사건은 풀려야 하니까요. 하지만 영화 중반, 특히 그가 받은 수상쩍은 협박편지가 바로 그 자신의 타이프라이터로 작성되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가사 크리스티보다 [리펄션]에 훨씬 가깝습니다. 현실 세계는 무게를 잃고 편집증과 광기가 지배합니다.
이후부터는 완전히 난장판입니다. [공포의 파편]은 이성적인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마약 경험에 가깝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 사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리 온전하다고 할 수 없는 브랫의 필터를 통해 보여지지요. 조니 해리스의 웽웽거리는 음악을 배경으로 오스왈드 모리스의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이 세계는 얼핏 보면 멀쩡해보이지만 지극히 영국식으로 미쳤습니다. 그 광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광기에 이유가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존 빙엄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최근에 복간되었고, 소문을 들어보니 영화보다 낫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작을 무시하고 별다른 생각없이 본다면, 영상매체라는 도구에 특화된 각색물의 천박한 난장판도 즐길만 합니다. 여러분이 헤밍스의 팬이라면 특히. (11/01/08)
★★★
기타등등
얼마 전에 소니의 “Screen Classics by Request” 시리즈 DVD로 나왔습니다.
감독: Richard C. Sarafian, 출연: David Hemmings, Gayle Hunnicutt, Wilfrid Hyde-White, Flora Robson, Adolfo Celi, Roland Culver, Daniel Massey, Mona Washbourne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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