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6 22:42
리처드 스탠리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H.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을 각색한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요. [닥터 모로의 DNA]를
찍다가 감독자리에서 쫓겨난 게 1996년. 그 뒤로는 극영화를 연출한 적이 없습니다. 주로 다큐멘터리를 찍었지요. 정말 오래간만에
나온 장편 극영화 신작이에요. [닥터 모로의 DNA] 촬영 당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오래 유배당할
일이었는지. 더 큰 사고를 치고도 멀쩡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죠. 하여간 스탠리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 러브크래프트 3부작을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 영화는 [던위치 호러]가 될 거라고 하고요.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원작인 [우주에서 온 색채]는 1920년대의 현대의 화자가 1880년대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부분 러브크래프트 영화들이 그렇듯, 이번 영화의 시대배경은 현대입니다. 영화 속 러브크래프트
화자는 워드라는 흑인 과학자고 (요새 재미있는 러브크래프트 영화를 만들려면 원작자가 질색할 요소는 하나씩
넣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농장주의 세 아들 중 한 명이 딸로 바뀌었습니다. 농장에서는 알파카를 기르고요.
단지 기본 이야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컴의 외딴 농장에 정체불명의 운석이 떨어져요. 운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지만
농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많이들 죽습니다. 이 이상한 일들을 현대 영화쟁이의 상상력과 기술로 채워야
하는 것이죠. 그게 대부분 러브크래프트 영화가 받아들이는 도전이고요.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대부분
언어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원작에 충실한 재현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스탠리가 만든 결과물은 무지 8,90년대스럽습니다. 컴퓨터 그래픽도 당연하지만 많이 썼어요. 하지만 많은 장면에서
롭 보틴이 [괴물]에서 했던 작업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특수효과가 사용됩니다. 그리고 우주에서 온 색체는
보라색이에요. 놀릴 생각은 없습니다. 소설에서와는 달리 우리가 모르는 색을 영화에서 쓸 수는 없잖아요.
보라색은 자연에서 그리 흔한 색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색을 써야 한다면 괜찮은 선택이고 시각적
효과도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효과적인 호러입니다. 발동은 좀 늦게 걸리지만 그렇다고 초반이
재미없다는 건 아니고요. 초중반을 넘기면 장르팬들을 만족시킬만한 클래식한 구경거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도 역시 만족스럽고요.
원작에서는 공포에 질리는 도구에 불과했던 인물들이 조금 더 입체적이 되었습니다. 단지 이들은 스탠리보다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향이 더 느껴집니다. 모든 인물들이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하는 약간 맛이 간 가부장에게
시달리는 가족'이라는 설정을 위해 가져온 것처럼 보여요. 단지 케이지가 연기한 다른 아빠만큼 막 나가지는
않습니다. 이해가 가요. 그 상황에서 다들 정신이 멀쩡하면 오히려 이상하잖아요. 좀 상황 파악이 빨리 안 되는
갑갑한 사람이긴 한데 극단적인 감정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 모두 이 영화의 이야기에 어울린다고 봤어요.
엄청난 걸작!을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소재의 가능성을 알차게 뽑은, 재미있는 러브크래프트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딱 리처드 스탠리 같은 사람이 만들었을 법한 영화고요. 3부작으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든다면 그것도 기대해볼만 하겠어요.
(20/06/26)
★★★
기타등등
구글플레이에서 봤는데 양옆이 잘린 풀스크린이에요. 블루레이를 사라는 말인지.
감독: Richard Stanley,
배우:
Nicolas Cage,
Joely Richardson,
Madeleine Arthur,
Elliot Knight,
Tommy Chong,
Brendan Meyer,
Julian Hilliard,
Josh C. Waller,
Q'orianka Kilcher
IMDb https://www.imdb.com/title/tt507364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8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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