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31 00:09
2년 전, 표절 혐의로 곤욕을 치른 베스트셀러 작가 백희수는 새 소설을 쓰기 위해 어린 딸 연희와 함께 경상북도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별장으로 갑니다. 그 별장은 한국전쟁 이후 베이츠라는 선교사가 고아들을 모아 키웠다는 곳이죠. 네, 베이츠입니다. 이정호 감독이 이 이름을 저택에 붙여놓고 얼마나 즐거워했을지 상상이 가는군요.
베이츠 모텔...이 아니라 저택에 도착하면 관객들은 강한 기시감에 사로잡힙니다. 분명 어디서 이와 같은 장면을 봤어요. [싸이코]에서요? 아뇨. [장화, 홍련]에서요. 저수지 앞에 서 있는 이국적인 저택부터 [장화, 홍련] 풍인데, 유사성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중간에 보면 '설마 이런 것도 따라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있는데, 나중에 보면 정말 따라하고 있단 말이죠.
백희수는 이 저택에서 새 소설을 완성합니다. 모니터 앞에 앉기만 해도 머리가 하얗게 된다면서 어떻게? 딸 연희가 이 저택에서 여자귀신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 귀신이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야기를 들려준 거죠. 백희수는 그 이야기를 받아써서 새 베스트셀러 소설을 완성했는데... 이를 어쩌나. 이미 22년 전에 다른 작가가 똑같은 내용의 소설을 썼던 거예요.
여기서 영화는 방향 전환을 합니다. [장화, 홍련] 이야기를 (반전과 함께) 떨구고 조금 다른 형식의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렇다고 감독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영화가 엄청난 혼합장르의 실험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여전히 '귀신들린 집' 영화예요. 긴 머리 여자 귀신이 안 나온다고 귀신들린 집 영화가 귀신들린 집 영화가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건 아니죠. 하여간 여기서부터 백희수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베이츠 저택의 비밀을 벗기기 위해 다시 마을로 내려가고 거기서 정말 심각하게 고생합니다.
이 부분은 재미있습니다. 감독이 당연히 긴 머리 여자귀신이 나와야 할 법한 이야기를 긴 머리 여자귀신 없이 끌어가기 위해 노력했고 거기서 기존 긴 머리 여자귀신 이야기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 부분에서 정체가 드러나는 악당들은 상당히 좋습니다. 과장된 괴물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그런 일을 생각없이 저질렀을 법한, 적당히 재수없고 적당히 불쾌한 남자들이죠. 더 좋은 건 이들이 겪는 고통이 아주 길고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감독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후반부의 난장판은 거의 축제처럼 흥겹습니다.
[베스트셀러]는 그렇게 정교하게 말이 되는 영화는 아닙니다. 특히 백희수의 직업에 관한 묘사는 그냥 건성이죠. 두 번째 표절과 관련된 스캔들 역시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들 표절에 대해 떠들면서 정작 첫 번째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은 백희수밖에 없어요.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의도했던 장르혼합의 실험도 그렇게 창의적인 결과를 내지는 못했어요. 감독이 소재를 과대평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비교적 능숙하게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고 페이스도 좋아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종종 지나치게 신경질적으로 보여도, 엄정화를 비롯한 배우들은 모범적인 충무로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요. 이 정도면 관객들을 인질로 잡지 않는 괜찮은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10/03/30)
★★☆
기타등등
마지막에 나오는 살인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죠. 물 때문에.
감독: 이정호 출연: 엄정화, 류승룡, 박사랑, 이도경, 조진웅, 최무성, 조희봉, 오정세, 이성민 다른 제목: Bests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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