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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명인물들의 상징적인 순간들이 있다. 일단 한국의 3040 이상의 세대에게 익숙할 서태지를 예로 들어보자. 컴백홈을 부르는 서태지를 떠올리면 검은색 비니 모자와 선글라스부터 바로 떠오른다. 조금 더 국제적인 인물의 예로 넘어가보자. 에이드 라이브 무대 위에 선 프레디 머큐리를 떠올릴 때 흰색 나시 티셔츠와 청바지를 빼놓을 수 없다. Smooth Criminal을 부르는 마이클 잭슨을 이야기할 땐 반드시 중절모를 포함한 흰색 정장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이처럼 어떤 인물들의 고유한 순간은 그 순간을 가리키는 특정 아이템으로 완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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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호초를 부르던 마츠다 세이코에게도 그런 시각적 상징이 있다. 그 시절 마츠다 세이코가 유행시킨 "세이코 컷"이라고 불리는 헤어스타일이다. 이것은 앞머리는 이마를 덮고 옆머리와 뒷머리는 조금 풍성하게 컬과 볼륨을 줘서 목까지 덮는 펌을 한 스타일이다. 이 머리는 당시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유행을 했을만큼 히트를 했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쳐에서도 확인이 될 만큼 굉장히 유명한 헤어스타일이다. 만일 이 인물의 상징적인 순간을 따라한다면, 이 머리를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하니는 푸른 산호초를 부르면서 이 머리 스타일을 하지 않았다. 이건 곰곰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컴백홈을 부르는 서태지를 따라하는데 비니와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이상한 것은, 하니의 푸른 산호초 무대에 감동한 사람들이 이 차이점을 아예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무대에 대한 감동을 잠시 젖혀두고 가만히 곱씹어보면 푸른 산호초 무대는 그렇게 '싱크로율'이 높지는 않다. 일단 마츠다 세이코의 헤어스타일과 하니의 헤어스타일이 다른 지점이 그렇고, 하니의 창법이 마츠다 세이코의 더 시원스러운 창법과도 다르다는 지점이 그렇다. 그런데 아무도 이걸 문제삼거나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하니는 마츠다 세이코라는 원본에서 파생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하니의 이 이미지에 순순히 납득하고 감동할까.

사람들이 하니의 푸른 산호초를 아무 저항없이 수용하는 이 지점에서 재현과 인용의 차이를 상기하게 된다. 재현은 따라하는 것이다. 재현은 원본이 있고, 자기 자신을 도구로 써서 최대한 원본과 유사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흉내내는 것은 어떤 감흥을 줄 수는 있으나 결국 원본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방은 원본보다 늘 열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원본은 재현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 원본과 복사본이라는,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웃길 목적으로 패러디를 할 때 원본의 이미지를 늘 재현하려고 한다. 재현하려고 하면 할 수록 결국 원본과 좁혀질 수 없는 차이점이 두드러지며 완전한 재현을 실패하기 때문이다.

인용은 원본의 이미지를 빌려오되 또 다른 독립적 맥락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때 원본의 이미지는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를 수 밖에 없는 지점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핵심적인 다른 요소들만을 차용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원본과 더 닮아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이 인용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원본과 인용본의 차이를 사람들이 굳이 인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본의 이미지와 인용되어 만들어진 이미지를 동시에 감상한다. 닮은 것이 목표가 아닌 수단일 때, 역으로 사람들은 그 차이를 무시하고 닮은 점에 더더욱 몰두하면서도 개성을 확인한다.

이런 점에서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맥락의 역설을 확인하게 된다. 어떤 아름다움, 어떤 오리지널에는 영원히 근접할 수 없다. 그것은 재현율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렇다면 그 좁힐 수 없는 거리를 인정하고 그 바깥에서 결국 원본을 일부분 빌려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빌려온 이미지로도 원본과 인용의 거리는 계속해서 벌려놓아야한다. 이것이 재현과 인용의 결정적인 차이일지도 모른다. 계속 원본을 따라하려 할 수록 원본과 사본으로서의 거리만 벌려지며 그 아름다움은 이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인용은 현실에서도 관측되곤 한다. 종종 일반인이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원 가수가 부른 버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일도 생긴다. 그 노래실력이 원본에 분명히 못미치는데도 사람들은 원본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낀다. '아름답다'는 별도의 맥락을 만들 수만 있다면 어떤 아름다움에 완벽하게 도달하거나 구현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물론 이것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나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다시 곱씹게 된다. 재현이 원본과의 대결이라면 인용은 원본과의 공존이다. 결국 재해석된 아름다움이 원본의 아름다움도 더 강하게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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