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8 20:33
1. 2편 심판의 날
제가 터미네이터 2를 처음 본 건 영화광이던 아부지께서 비디오를 빌려 오셨던 날이었습니다.
잔인한 장면은 엄마가 손으로 가려 주셨고...ㅎㅎ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관람했었어요. 제 기억으론 빌려오셨던 비디오가 2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러닝타임이 그렇게 긴 영화가 아닌데도 왜 그렇게 출시되었을까요?
하여튼 그 영화는 압도적으로 국딩이던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몇년 후 추석 특선으로, KBS에서 T-800의 목소리는 이정구가 더빙하고 사라 코너는 손정아가 더빙한 버전을 방영해 주었을 때, 뭉텅뭉텅 가위질 당하긴 했으나 저와 동생은 공테잎으로 그 버전을 녹화해서 말 그대로 테잎이 늘어지도록 보고 또 봤었어요.
2. 1편
이것도 국민학교 때 비디오로 봤었어요. 나중에 중학교 때 로드쇼를 즐겨 읽던 방송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말마다 방송실에서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건전한 영화 모임을 조직했었는데, 그때 다시 봤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그때를 마지막으로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기억만으로 소환되는 영화네요.
중학교 때 1편을 다시 보면서(그 즈음 트루 라이즈가 개봉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성기 때였어요) 아놀드 진짜 못생..-_- 연기도 못하네 언제까지 액션배우 할텐가 늙으면 뭐할라고? 막 이랬었는데 몇년 후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었다가 70 가까운 나이까지 액션 배우를 하게 됩니다...
3.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부제도 기억이 안 나서 검색해보고 왔네요)
제가 클레어 데인즈 팬이었던데다가 간만에 부활한 시리즈여서 극장에 쫒아가서 봤었습니다.
다른 시리즈 팬들 처럼 경악 까지는 아니었지만 저도 존 코너의 역변에 실망했던 1인이었죠...
T-X 역을 맡았던 크리스티나 로켄이 말끔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빨간 가죽 수트를 입고 나와서 상당히 인상깊었는데, 그냥 잊혀진 배우가 되어버렸네요.
개인적으로는 (다른 팬들처럼)시리즈 중에서 제일 안 좋아합니다.
4. 4편 Salvation
미래전쟁의 시작 보다는 구원 쪽이 당연히 더 어울리죠. 2009년에는 저와 비슷하게 만화, 로봇, 히어로, 픽사 애니메이션 덕후인 남자(이런 남자들 되게 많긴 합니다만 네...;;)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같이 당연하게 개봉날 가서 봤었습니다.
크리스찬 베일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진짜 적응 안 되네...를 시작으로, 저는 그럭저럭 그 영화를 재미있게 봤었어요. 카일 리스의 등장도 좋았구요. 자기 아버지를 만난 아들의 심정이랄까 그런 것도 덕후의 심정을 자극했었지요. 액션도 그럭저럭 괜찮았고요. 다만 4편에서 저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이제 모래알처럼 흩어지는구나. 분위기가 너무 다름' 이런건 느꼈었어요. 일단 1편부터 4편까지, 이야기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존 코너를 연기한 배우가 다 달랐던데다가, 4편에서는 존 코너와 T-800은 조연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었으니까요.
하여튼 좋아하는 배우가 많이 나와서 지금도 가끔 디비디 돌리곤 합니다.
5. 제니시스
그리고 이번 편에 이르러 진짜로 존 코너를 연기한 배우는 5편 통틀어 5명이 되고 맙니다...
지금은 저와 비슷하게 만화, 로봇, 히어로, 픽사 애니메이션 덕후인 남자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함께 개봉날 가서 봤었습니다.
남편은 관람 후 분통을 터트리며 '임성한이 각본을 써서 나온 영화'라고 혹평했습니다. 진짜로 화를 내면서 막 집에 오자마자 2편을 다시 꺼내 보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더군요..
저는 뭐 그정도까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원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2편이 나온 순간, 전편을 비틀어서 이야기를 짜낸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3편 4편 모두 전편을 비틀고 쥐어 짜서 나온 영화들이죠.
남편은 4편까지는 1984년-1997년의 세계관이 공통적이었는데, 이번 편에서 갑자기 2017년으로 확 튀었던 게 거부감이 들었나 봐요.
시리즈를 계속 끌어가기 위해서는 올드한 연도를 조정하는 방법이 불가피했겠지만요. 그리고 모 캐릭터의 흑화도 임성한 운운하는데 한몫했겠죠.
그래도, 삼룡애미가 제 머리색으로 나와서 오동통한 팔뚝으로 레밍턴을 쏴대는데 어째서 이 영화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거죠 남편형...
총평: 2>>>>>>4>5>>3 (1편은 잘 생각 안나서 제외)
그리고 2편의 마지막에, T-800이 용광로에 서서히 잠기며 사라 코너와 존 코너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일 때, 어렸을 때는 '우리가 해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보니 '아임 오케이. 슬퍼하지 마라'로 다가오더군요. 감정의 차이랄까요.
하여튼 다시 봐도 T-1000의 경악스러운 모습과 핵폭발 장면 등 정말 대단히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한창때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다시 보니 멀끔하게 잘 생겼더라구요. 변성기가 온 에드워드 펄롱과 기억보다 엄청 마른 린다 해밀턴,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 짱
2015.07.08 20:46
2015.07.08 20:49
당연한 이유를 생각못했네요ㅎㅎ
2015.07.08 21:14
재탕 느낌이 심한 3편이 오히려 가장 이질적인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2박 2일 구성을 따르지 않아서라고 생각해요.
형식상 다른 4,5편까지도 그럭저럭 따르는 기본 구성인데 말입니다.
DVD 시대 초기에 삼성에서 발매한 더빙판 터미네이터2는 저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5.07.08 21:34
오... 그러고보니 정말 다 2박 2일이네요. 타이트하게 몰고가는 구성이 3편에서 마구 늘어진다 생각했었는데.
2015.07.08 21:18
2015.07.09 01:22
2015.07.09 01:42
마침 오늘 케이블 방송에서 2편을 봤어요 :) 그런데 보다 보니까.. 이게 이츠키 나츠미의 오즈란 만화랑 얼개가 비슷한 겁니다??? 주인공과 보호자의 성장 여행, 그들을 죽이려고 쫓는 살인 로봇, 주인공들과의 접촉으로 점점 인간적으로 변화하는 로봇, 그리고 마지막에 자살하는 로봇. 너무 돌출된 과학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므로 인위적으로라도 제거되어야 한다는 세계관 등등등요. 오즈가 1988년 작이고 T2가 1991년 작이니까... 하여간 1편에 기반한 T2의 오리지널리티가 더 우세할지 몰라도... 제가 본 헐리우드 영화계는 일본 문화에서 자주 소스를 찾곤 하는 듯 해서 무의식 중에 늘 의심을 하곤 합니다. 일단 하기오 모토의 포의 일족과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시리즈는 너무 너무 비슷하고요, 대놓고 아키라나 공각기동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영화도 적잖고요. 물론 일본 문화도 헐리우드나 서양권에 빚진 게 적잖지만요. 오즈란 만화 역시 T1과 에일리언 1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은 듯 했거든요. 신일숙의 아르미안이 일본 만화 크리스탈 드래곤에서 아이디어 차용을 많이 했다거나 그리하여 아르미안이 다른 일본 만화에 영향을 줬다거나.. 하는 거랑 비슷하달까요... 표절이니 차용이니 하는 거 빼고 그런 식으로 비슷한 걸 찾아내다 보면, 이 감독님이 이 만화를 보셨음???? 하는 은밀한 재미가 있긴 해요. 오즈랑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레디에이터 내용이 또 완전 비슷하거든요? 내가 재미있게 본 만화를 엄숙해 뵈고 나이 지긋한 감독님이 보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하여간 묘해요~ 내가 하듯 배깔고 무방비하게 보셨을라나? 싶어서요.
그나저나 그 시절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퍼런색을 좋아했나봐요? T2나 에일리언2의 영화 톤이 퍼런색 일색이라서요. 세련되고 안정적인 색감이긴 했습니다..
2015.07.09 05:56
제임스 카메론이 일본 애니메이션 광인건 유명한 사실이니까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액체금속의 T-1000이 바벨2세의 시종 로뎀에서 착안한 것이나 핵폭발 장면이 아키라의 그것에서 따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블루스틸'을 감독한 캐서린 비글로우와 결혼한 때였으니 푸른 색감에 꽂힌 시기인건 사실인거 같아요. ㅋ
2015.07.09 06:09
[터미네이터] 의 경우 할란 엘리슨이라는 저명한 SF 작가가 자신의 [아우터리미츠] TV 시리즈의 각본을 카메론이 베꼈다고 소송을 걸어서 본인이 거의 인정을 하고 합의를 본 상태이죠. 이 시리즈는 6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들입니다.
저도 SF 나 판타지에서 일본 만화와 헐리웃 영화에 비슷한 전개를 볼 때가 종종 있는데 이건 대부분의 경우 둘 다 같은 소스 (SF 의 고전) 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기오 모토의 단편중에 등대지기와 공룡에 관한 시적인 한편이 있습니다만 이건 레이 브래드베리의 [Foghorn] 의 번안입니다. 근데 같은 소스가 헐리웃에서는 [The Beast from 20,000 Fathoms] 라는 괴수영화로 둔갑했죠. 후자에서 등대를 뚜드려부시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면 아, 하기오 모토가 이걸 보고 베꼈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원래는 이 아이디어는 고전 SF 에 존재하는 것인 겁니다. 결론은 근사한 아이디어는 여러분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부모님들이 태어나시기 전에 (제임스 카메론이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 ^) 이미 누군가가 냈다 입니다 ^ ^
2015.07.09 08:38
2015.07.09 11:24
아하! 유익한 거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 왜.. 내가 한 생각이나 발견은 이미 고대에 있었던 일이야.. 라는 식의 얘기를 들으면 안정감을 얻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야.. 라는 확인을 받을 때마다 외려 평범해서 다행이야, 선구자가 아니라 다행이야.. 라는 안정감이 들어요 ^^
2015.07.09 08:24
당시 기준으로 두 시간이 넘으면 긴 거죠. 당시 웬만한 영화는 비디오 출시를 위해 90분으로 잘랐고
120분이 넘어가면 두 편으로 나왔죠. 제 기억으로 당시 터미네이터2 국내 비디오 출시판은 130 몇 분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판은 150분이 넘죠.
2015.07.09 11:17
저는 1>2>>>>>>>>>>>>>>>>5>>>4>>>>>>>>>>>3
5편은 팬픽 보는 기분으로 그냥 봤어요. 3,4편이 워낙 별로였어서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봤더니 그런대로 재밌더라구요.
다만 아놀드옹을 제외하고는 배우들이 다들 별로였어요. 그래도 3편 존 코너보다는 쫌 낫긴하더군요..3편의 그는..아....ㅜㅜ
인기 비디오는 돈 벌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