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월 9일에 제가 글을 하나 올렸는데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남자들보고 살림하라고 악다구니 쓴 것도 아니고, 가전제품 쓰고 사람 사서 쓰면 더 경제적이라는 온건한 글에, '위험한 발상'이라며 긴 댓글이 달린 걸 목격했죠. 한국 사람들은 진짜 여자들이 살림을 쉽게 쉽게 처리하는 모습을 그냥 보질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옥짓는 목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분 하시는 말이 요즘 양식 집은 여자들에게 너무 편하다면서, 한옥은 불편하기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하게 되고 따라서 여자들에게 좋다고 하더군요. 환기가 되지 않는 부엌에서 장작으로 요리를 하면 폐암 확률이 높아지고, 한겨울에 우물물 길어서 살림하면 손이 부르틉니다.  우리가 과학을 배우고 혁신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환경을 바꿔서 더 편하게 살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혁신과 생산성 향상의 흐름에서 여자들은 소외가 되어야하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예전에 조선일보 이규태 칼럼을 책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 보면 이규태 기자는 일제시대 한국 여자들이 콩나물을 빨리, 쉽게 다듬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 것은 일이 없을 때의 무료함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일이 줄면 얼마나 좋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할까요. 기술과 경제학 원리는 위험한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남자들만 사용해야 옳은 것일까요? 하긴 어느 오소독스한 종교집단에서는 핸드폰도 못쓰게 하는데, 그것도 남자들에게는 허용되더군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근까지 여자들이 운전하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구요. 


2. 이진주씨가 만든 걸스로봇이란 단체가 있는데, 여성들이 이공계에 진출하는 걸 돕는다 하더군요. 뭘로 돈을 버는지 비즈니스 모델 (혹은 정확히 정체가 뭔지)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여성들이 이공계 전공한 다음 해외취업하는 건 괜찮은 루트인 것 같아요. 

http://girlsrobot.co.kr/


3.  저번에 제가 올린 글에 달린 모스리님의 댓글을 읽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밥을 챙겨주는 경험을 해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죠. 무럭무럭 잘 자라길 바라는 생각도 있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느끼기도 하겠죠. 


어렸을적 어머님이 우리들에게 항상 따뜻한 밥을 주셨죠

자신이 드시는 밥이 묵은밥이였을지라도

그건 내 새끼가 무럭무럭 잘 자라길 바라는 바램으로 인한 행동이지 

가족내 지위가 낮아서가 아닙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신 어머님들 

그러한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랑에 대한  경험을 해보지도 않은 님이

인생을 길게 보지 못하며 눈앞에 내 떡조각만 보는 좁은 식견의 님이

주제 넘게 함부로 평가할 "가치"가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엄마들에게 연필과 지면이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자기가 지은 새 밥을 자기 입에 먼저 넣지 못하고 자식에게 남편에게 주었을 때, 그 머릿속에는 모성애만이 가득했을까요? 만화가 순두부 님은 엄마로서 자식이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57123


밥에 티끌만한 고춧가루라도 묻으면 밥 안먹는 아이. 찬 밥에 물말아주면 밥 안먹는 아이. 굳은 밥 있으면 던지는 아이. 햇반이면 끈적하다고 안먹는 아이.  


자식에게 밥을 지어서 먹여본 부모라면 새 밥이었을 때와 헌 밥이었을 때 아이가 밥먹는 속도, 정도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머릿속에는 "야. 이번만 대강 먹어"란 말이 맴돌아도, 일단 배를 불려놔야 내가 다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참고 해달라는 대로 지지고 볶고 끓여서 내놓기도 하죠. 인생을 살아보면 알게 되죠. 자식들은 깊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로, 짜증, 분노, 인내, 계산, 그리고 어른된 입장도 있다는 걸요. 제 생각에 인생에 대한 식견이란 건, 어머니 머릿속에도 모성애 말고도 다른 게 있다는 걸 이해할 때, 어머니라는 타인의 입장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할 때 생길 수 있을 겁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352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277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3185
126960 [왓챠바낭] 원제가 궁금해지는 제목,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잡담입니다 new 로이배티 2024.08.13 53
126959 08 베이징 올림픽 폐회식 지미 페이지, 베컴 [2] new daviddain 2024.08.12 59
126958 에피소드 #102 [1] update Lunagazer 2024.08.12 30
126957 프레임드 #885 [2] update Lunagazer 2024.08.12 32
126956 피네간의 경야 13페이지 [2] catgotmy 2024.08.12 78
126955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전곡 감상 moviedick 2024.08.12 70
126954 이삼각 위진 지옥문 [1] update 돌도끼 2024.08.12 83
126953 파리 올림픽 폐막식 하이라이트 영상 - 응답하라, 이단 헌트 [1] update 상수 2024.08.12 198
126952 [영화바낭] 제목이 훼이크인 듯, 아닌 듯.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잡담입니다 [10] update 로이배티 2024.08.11 302
126951 피네간의 경야 12페이지 catgotmy 2024.08.11 112
126950 프레임드 #884 [4] Lunagazer 2024.08.11 44
126949 자식에 대해 [1] catgotmy 2024.08.11 117
126948 PSG 방문한 케빈 듀란트 [1] daviddain 2024.08.11 114
126947 [넷플릭스바낭] 녹용 소년의 엄마 찾아 삼만리 최종장, '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가진 소년' 시즌 3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4.08.10 237
126946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불 났다고 지금 난리났다가.... [1] 수영 2024.08.10 310
126945 수다에 대해 [2] catgotmy 2024.08.10 113
126944 [일상] 두번째 멍멍이와의 이별 [20] 쏘맥 2024.08.10 268
126943 이런저런 주식 잡담...(이상한 유튜버들, 하락장) 여은성 2024.08.10 195
126942 프레임드 #883 [4] Lunagazer 2024.08.10 42
126941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아날로그의 잔재 [3] 돌도끼 2024.08.10 28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