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6 16: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작품들 중 [마법사의 제자]라는 명랑깜찍한 시가 하나 있지요. 그걸 원작으로 삼아 폴 뒤카가 동명의 교향시를 썼는데, 거의 영화 없는 영화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곡은 미키 마우스가 주연인 동명의 섹션으로 만들어져 [판타지아]에 수록되었습니다. 이 제목과 설정이 또 맘에 들었는지, 디즈니사에서는 [내셔널 트래져] 시리즈의 존 터틀바웁을 고용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또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오늘 소개할 [마법사의 제자]죠. 그렇다고 이 영화가 괴테의 원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건 아니에요. 제목과 그 제목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기본 설정, 그리고 물청소 장면만 살짝 빌렸지요.
영화는 요새 유행하는 판타지 영화의 기본 재료들을 그대로 끌어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데이빗은 뉴욕에 사는 평범한 대학생인데, 알고 봤더니 마법사 멀린이 예언한 위대한 예언자가 될 운명이었던 겁니다. 그걸 알려주고 마법을 가르쳐주는 건 멀린의 수제자인 발타자르. 그들 뒤를 쫓는 건 역시 멀린의 수제자였지만 악의 세력에 빠진 마법사 호르바스. 물청소 장면은 언제 나오냐고요? 중간에 데이빗이 데이트 준비를 하느라 마법을 쓰는데, 그게 바로 물청소 장면입니다. 본 스토리와 별 연관성은 없어요. 마법은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늘 나오는 교훈이 언급되는 것만 빼면.
기술적으로 영화는 준수하고 특수효과를 쓴 볼 거리도 많습니다. 전 크라이슬러 빌딩의 독수리 장식물이 진짜 독수리가 되는 장면도 좋았고, 차이타 타운의 용 소동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악당 역의 알프레드 몰리나는 모두 프로페셔널한 좋은 배우들이고, 이 말도 안 되는 설정 속에서 노련하기 짝이 없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가진 것이 부족해서 일을 못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영화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흥이 안 납니다. 영화 시작부터 전력질주를 하는 이 영화의 속도를 고려해보면 신이 안 나는 것 자체가 이상할 텐데 말이죠. 그러나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마법사의 제자]는 리듬감이 거의 없는 영화예요. 변속기어 없이 그냥 일정한 속도로 전진하기만 하는 영화죠. 그러니 아무리 전개가 빨라도 전혀 빠르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어쩔 수 없죠. [내셔널 트래져]에서는 그래도 헐렁헐렁한 매력이라도 있었는데, 다들 세계 종말을 일으키거나 막으려고 이를 꽉 물고 있어서 그런지, 이 영화에서는 아무리 농담들을 퍼부어도 그런 여유를 느낄 수가 없더군요.
더 흥이 떨어지는 건 이야기 자체입니다. 이들이 다루는 이야기는 흔해 빠졌지만 충분히 매력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죠. 하지만 영화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기성품화된 판타지 액션, 특수효과, 코미디를 넣기 위한 도구로만 이용합니다. 이야기의 힘이 전혀 없어요. 이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꼴은 카페테리아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의 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 아무래도 전 이런 영화들을 리뷰하기 위해 비슷비슷한 비유들을 모아 저장해두어야 할까봐요. 그렇지 않으면 리뷰 역시 반복이 될 테니. 아니, 이미 반복이 되고 있나요.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기대를 했고 또 실망했던 부분은 주인공의 전공입니다. 이 친구는 전형적인 너드로, 물리학도예요. 그게 영화에서 악당을 무찌르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부족해요. 여러분이 물리학자인데, 갑자기 세상의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남자가 나타나 자기에게 그 능력을 전수하겠다고 합니다. 그럼 당연히 붕괴되는 세계관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도 하고 갈등도 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주인공 데이빗은 눈 한 번 깜빡하고 그냥 그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만답니다. 싱거워도 이렇게 싱거울 수가. (10/07/16)
★★
기타등등
뉴욕시내에서 마법사들이 지구의 운명을 건 결투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다 구경하는 뉴요커 한 명 없더군요.
감독: Jon Turteltaub, 출연: Nicolas Cage, Jay Baruchel, Alfred Molina, Teresa Palmer, Toby Kebbell, Omar Benson Miller, Jake Cherry, Monica Bellucci, Alice Krige
IMDb http://www.imdb.com/title/tt09639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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