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4 15:07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게 가장 좋은 작품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리뷰 같은 거 챙기 읽지 말고 그냥 가세요.)
쥘리아 뒤코르노의 [티탄]은 교통사고로 시작됩니다. 두개골에 심한 손상을 입은 어린
주인공 알렉샤는 뇌의 일부를 티타늄으로 교체합니다. 어른이 된 알렉샤는 자동차 행사장에서 댄서로 일하는데,
알고 봤더니 지중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의 범인입니다. 그리고 우린 살인장면 사이사이에 자동차와
섹스를 하는 알렉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 크로넨버그의 영향을 받았구나. (인터뷰를 봤더니 정말 그랬대요.) 그리고 초반 전개를 조금 더 보면 우린
이 영화의 결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짐작은 맞아요. 크로넨버그로만 이야기하자면 [크래시]에서
시작해서 [플라이]로 끝나는 영화라고 할까요.
그런데 초반에서 영화는 기대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달아난 목격자 때문에 정체를 들킨
알렉샤는 도망 중 당황스러운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10년 전 실종된 남자아이 아드리앙의 뉴스를 보고
그 아들로 변장해 아버지인 소방서장 뱅상을 찾아간 거죠. 여기서부터 알렉샤와 뱅상의 정말 기괴한
관계가 시작됩니다.
보는 동안에는 이게 정체가 뭔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 왜 이 방향으로 가는 거지? 같은
소리가 계속 나오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다 보고 나면 이 영화의 플롯, 재료 기타등등 모두 거의
고전적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당황스럽고 난처하고 종종 고통스럽지만 '어려운' 영화는 아니에요.
심지어 영화는 아주 안전해보이는 표현들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티탄]을
'대안가족을 다룬 따뜻한 가족영화'로 소개하는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하긴 감독의 전작 [로우]도 따뜻한
가족영화이긴 했지요.
이 영화를 장르물의 틀 안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티타늄 두개골,
자동차와의 섹스는 주인공의 행동과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고 예정된 결말도
그 때문이겠죠. 하지만 적어도 전 보는 동안엔 그 논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알렉샤의
몸에서 지금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원인이나 논리보다 더 중요해요.
그리고 그건 아드리앙으로 변장한 알렉샤에게 바치는 뱅상의 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과 남성,
생물학적 육체와 기계, 단백질과 금속이 뒤섞이는 이 혼란 속에서 "왜?"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현재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의 진실성이 더 중요하지요. 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괴상해지고 자극적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야 이 주제가 더 잘 먹히니까요.
올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입니다. 쥘리아 뒤코르노는 이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를
감독한 두 번째 여성감독이 되었어요. 이 영화가 과연 그 해 최고의 작품이었느냐에 대한
질문에 여러 이견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해 영화 중 [티탄]만큼 머리에 오래
남는 작품은 드물었을 거예요.
(21/12/14)
★★★☆
기타등등
[로우]의 주연이었던 가랑스 마릴리에가 이 영화에도 나옵니다. 캐릭터 이름도 같아요. 쥐스틴.
감독:
Julia Ducournau,
배우:
Agathe Rousselle,
Vincent Lindon,
Garance Marillier,
Laïs Salameh,
Myriem Akheddiou,
Bertrand Bonello,
Dominique Frot,
Adèle Guigue,
Céline Carrère,
Thibault Cathalifaud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94476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6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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