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1 21:14
남궁선의 [십개월의 미래]를 보고 SNS로 몰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코미디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호러라고 하고요. 저는 재난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재난경보로 시작되고요.
이들은 모순되는 주장이 아닙니다. 한 영화가 코미디이고 호러이고 재난영화인 건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이 영화는
위의 모든 것들을 다 담고 있습니다. 단지 사람들에 따라 어느 쪽이 더 가깝게 느껴지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에도 이름이 나오는 미래입니다. 29살의 프로그램 개발자인데, 어느 날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그 뒤로 미래에겐 20대 후반의 중산층 전문직 비혼 여성이 임신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제목이 은근히 욕처럼 들리는데 의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영화 끝까지 내 편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욕이 절로 나와요. 감독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선악으로 갈리는 건 아니라고 하고
그건 맞는 말인데, 그렇다고 그들이 미래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전 그들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게 미래에겐 나을 거라 생각해요.
이 영화에는 거의 교과서적인 충실함이 있습니다. 출산율과 임신에 대한 토론이 벌어질 때 영화 전체를 근거로 가져올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감독은 자서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임신 경험이 이 영화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요. 이럴 때는 우린 시비를 걸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일단 들어야 합니다.
최근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효과적인 코미디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게 누가 봐도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가차없고 냉정한데, 이런 소재와 태도는 코미디의 가장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보았을 때 코미디는 이런 주제를 다룰 때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감상주의가 섞이지 않은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아마 우리는 끔찍하고
답없는 상황 속에서 대부분 우스꽝스러울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고통과 공포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미래 역 배우 최성은에게 영화 무게 대부분이 얹혀 있습니다. 최성은의 미래는 우리에게 어설픈
동정 따위를 구걸하지 않습니다. 캐릭터의 어리석음과 실수를 감출 생각도 없고요. 하지만 이 답없는
상황 속에서도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는 정직함과 힘을 갖고 있습니다. 좀 적진에 떨어진 전쟁영화 속
캐릭터 같기도 해요. 위에 언급된 장르에 전쟁물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1/10/31)
★★★☆
기타등등
전 이런 영화 속 부모들을 보면 심난해요. 전 분명 저 나잇대 사람들이 교복입은 학생들일 때를
기억한단 말이죠.
감독:
남궁선,
배우:
최성은, 백현진, 서영주, 유이든, 권아름, 손성찬, 김근영, 오태은,
다른 제목: Ten Months
IMDb https://www.imdb.com/title/tt1510879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94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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