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9 00:43
[고질라]의 두 번째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죠.
하지만 [몬스터즈]의 가렛 에드워즈가 감독직을 맡았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궁금해졌습니다.
평범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갑자기 신데렐라 스토리가 된 것이죠. 걱정도 되었습니다. 극저예산으로
만든 전작에서 재능처럼 보이는 걸 보여 준 감독이 제대로 된 실력을 과시할 무대로 [고질라]
리메이크가 과연 어울릴까. 의외로 괜찮은 예고편들이 연달아 나오는 동안에도 그 걱정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며칠 전에 영화를 보았는데, 오묘했습니다. 심지어 과연 제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는지,
재미없게 보았는지 확신이 안 설 정도. 분명한 단점처럼 보이는 것들이 역시 마찬가지로 분명한
장점처럼 보이는 것들과 섞여 있는데, 과연 그것들이 분명하긴 한 건지도 확신이 안 설 정도였죠.
하지만 가렛 에드워즈가 이 영화에서 기가 죽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간 건 확실했습니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만든 이전 리메이크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는 영화입니다. 에머리히의
[고질라]는 전형적인 괴물 때려 잡는 영화였죠. 바다에서 올라온 거대한 파충류라는 기본 개념만
남겨놓고 완전히 할리우드식으로 만든 영화였고요. 하지만 에드워즈의 [고질라]는 아무리 비과학적이고
유치해보여도 에머리히가 버렸던 원작 시리즈의 개념과 디자인을 버리지 않습니다. 종종 재해석을 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원본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적을 남겨놓죠. 이게 에드워즈가 들어와서 이렇게 된 것인지,
원래부터 방향이 이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과 고질라의 관계입니다. 보통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괴물과 인간은 따로 놉니다. 고질라와 무토라는 두 괴물 때문에 인간들이 굉장히 많이 죽고
다치긴 하는데, 정작 이 괴물들은 인간에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들은 괴물들을 죽이는
것보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바쁘고 괴물들은 밑에서 신경을 쓰거나 말거나 교미하고 번식하고
사냥을 합니다. 그래도 연관성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어서 작가들이나 관객들은 이 두 괴물의
편을 가르고 자신의 소망을 투영하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영화는 인간들을 아주 가볍게 다룹니다. 캐스팅된 배우들은 쟁쟁하지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거의 소모품입니다. 오히려 유명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일수록
더 그렇지요. 한참 시간이 흐르다가 주인공 자리를 물려받는 아론 테일러-존슨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존재감이 약하고요. 그 때문에 관객들은 이들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영화를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스필버그의 작품들과 비교하고 감독 자신도 인정합니다. 괴물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감질나게 뜸을 들이는 테크닉은 거의 [죠스]를 교과서 삼고 있지요.
하지만 스필버그 영화들과 이 영화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스필버그는 언제나
인간을 중심에 놓고 그를 중심으로 서스펜스를 전개시키죠. 주인공이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고요. 하지만 가렛 에드워즈의 영화에서 인간 캐릭터들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숨어 있던 괴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영화적 리듬이
더 중요하지요. 여기엔 꼭 괴물이 나올 필요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따라 서서히
떨어지는 낙하산을 구경하도록 관객들을 유도하면서 그 낙하산을 떨어뜨린 전투기의
추락 장면도 같은 테크닉을 쓰고 있지요. 영화 전체가 리드미컬한 스트립티즈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공했는지에
대해 확신을 못합니다. 그럭저럭 확신할 수 있는 건 실패한 것처럼 보여질 수 있는
상당 부분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고 오히려 관객들이 실망한 부분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는 거죠. 말이 괴상하게 꼬이긴 하는데, 그래도 무슨 뜻인지는 아실 거라 믿습니다.
물론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처럼 그렇게 꼬지 않고 그냥 좋은 부분도 많죠.
(14/05/19)
★★★
기타등등
중간에 주인공이 고래 관광 회사 보트를 타고 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회사 이름이
'Go Whales Tours'인 건 일본어를 모르는 저도 알아차릴 수 있는 말장난이죠.
감독: Gareth Edwards, 출연: Aaron Taylor-Johnson, Ken Watanabe, Bryan Cranston, Elizabeth Olsen, Sally Hawkins, Juliette Binoche, David Strathairn
IMDb http://www.imdb.com/title/tt083138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987
2014.05.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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