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2010.11.1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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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 동네에 있는 우리 외갓집은 전형적인 한옥이었다. 사랑채 옆 변소에는 똥장군이 뒹굴고, 기와를 얹은 안채는 문풍지 바른 장지문 두 짝이 달려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외갓집에 놀러 갈 때마다 장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셨다. 삐이그더억. "찬-이 왔나? 이리 와 봐라. 좋은 거주마." 부뚜막의 가마솥이 그르렁 하며 울었다. 그 날 외할아버지가 내 손에 쥐어 주신 건 닥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였다. 솥단지 안에는 쇠죽 대신 낫이나 호미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외갓집에서 송아지가 사라진 뒤에는 더 이상 가마솥에 불을 때지 않았다. 외갓집 부뚜막의 가마솥은 그렇게 내가 놀러 온 날에만 잠깐 햇빛을 봤다.

 외가 마을을 떠나 도회지에 정착한 후에는 몇 년간 그 풍경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 불현듯 연락을 받았다. 나는 교무실의 새까만 전화통을 내려놓자마자 선생님께 조퇴를 여쭈고 역으로 달려갔다. 그 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비둘기호 완행열차는 나를 기다리듯 M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K역까지는 화물열차와 한 번 교행하느라 꼭 사십사 분 걸렸다.

 새까만 교복 차림 그대로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시오 리 황토길을 걸어 외갓집에 닿았다. 풍광은 그대로였다. 아니, 한 가지가 달랐다. 외할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찬-이 왔나. '왔나'보다는 '옷나'에 가깝게 말씀하시던 게 귀에 들리는 것만 같은데, 없다. 낯선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쳐다보니 외할아버지는 사진 속에 무뚝뚝하게 앉아 계셨다. 그 때 그르렁, 하고 가마솥이 슬피 울었다.

 외삼촌들은 벌써 조문객 맞을 준비를 끝내고 계셨다. 한동안 쓸 일 없었던 가마솥이 그 날 따라 자주 울었다. 시뻘건 쇠고기 육개장을 수도 없이 찾아오는 문상객들에게 모두 한 그릇씩 대접하려면 그 큰 쇠가마에 불을 때야 했다. 무쇠 솥뚜껑을 열 때마다 그르르릉, 하고우는 솥단지를 보며 너도 참 슬픈갑다 하고 나직이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르렁 하고 버얼건 뱃속만 여닫을 뿐이었다.

 밤이 깊었다. 작은외삼촌이 부뚜막 불 좀 보고 있으라고 말씀하셔서 가마솥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유림(儒林)의 어디어디에서 온 망건 쓴 이름 모를 할아버지들이 가마솥 걸린 사랑채에서 자고 가신다 했다. 솥단지는 그 날만큼은 오랫만에 제 할 일을 했다. 속에서는 육개장 장국이 펄펄 끓고 사랑채 구들장은 근 이십년만에 쩔쩔 끓었다. 저물어 가는 동짓달 초나흗날의 밤, 삼경이 넘자 찾아오는 사람들은 뜸해졌지만 가마솥은 때때로 그르렁 하고 울었다. 

 외숙모, 고마 들어가 주무이소. 아이다, 초상집에서 누가 메느리가 쉰다드노. 니나 드가라. 학교서 바로 와갖고 지금까지 경황도 없음시로 앉아 안 있었나. 예 그러면 이거 마저 때 놓고요. 그래라 그럼. 욕본다.  나는 부뚜막 앞에 다시 홀로 쭈그리고 앉았다. 낮에 누군가 패 놓은 마지막 장작개비를 아궁이 안에 던져넣었다. 축축하게 젖은 관솔가지 때문인지 연기가 매캐하게 솟았다. 눈이 매웠다. 나는 그걸 핑계삼아 참고 있던 어깨를 비로소 내려놓았다. 그제사. 눈가가 축축해졌다. 부뚜막 아궁이 위에서 가마솥만 저 혼자 끓었다. 국그릇 찾는 사람도 없어서 더 이상 그르렁 하며 같이 울어주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마솥은 그 뒤로 다시는 울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이상 외할매도 외할매도 살고 계시지 않는 그 집 부엌 깊은 곳에 아궁이 하나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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