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자는 나무 (2010)

2010.12.01 23:53

DJUNA 조회 수:10658


[서서 자는 나무]를 만든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힘든 목표를 세워놓고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특별히 튀지는 않지만 무난하고 착한 신파 영화. 이게 얼마나 만들기 힘든지 정말 몰랐던 건가요? 의심나신다면 그런 영화들 중 괜찮은 게 뭐가 있나 한 번 찾아보시죠. 예상 외로 기억나는 작품들이 별로 없고, 걸리는 영화들도 은근히 노련한 수작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무난한 영화를 잘 만드는 건 쉽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이미 이런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도구에 대해 다 알고 있어서,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그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서 자는 나무]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이 영화는 시한부 신파입니다. 남자주인공은 뇌종양 때문에 몇 개월밖에 못 삽니다. 아내와 딸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요. 남자는 남기고 갈 가족을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압니까? 그는 소방관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애꿎은 폐교에 불이 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필 폐교인 건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죠. 아시겠지만. 


영화가 소재나 주제에 대해 진지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독심술사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진지함이 영화에 반영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서서 자는 나무]에는 그 진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를 쓰는 이상한 캐릭터들만 있는 겁니다. 이들에게 가공된 결말을 안겨주기 위해 그만큼이나 인위적인 화재 사고를 동원하는 각본은 어떻습니까. 전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컨베이어 벨트에 누워 암석파쇄기를 향해 흘러가는 액션 영화 주인공이 떠올랐습니다. 밧줄을 끊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탈출하지 않는다면, 이야기건 캐릭터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한 [배달의 기수]를 만든다는 2차 목적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이런 영화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관객들에게 소방관이 얼마나 힘겨운 직업이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필수가 아닙니까? 하지만 영화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일종의 암석파쇄기처럼 사용합니다. 순전히 영화를 끝내기 위한 소도구지요. 홍보물로서 거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각본이 통과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배우들은 매우 힘겨워합니다. 송창의는 어떻게든 진부한 각본을 이겨내고 드라마의 비극성에 도달하려 노력하는데, 그 동안 그의 연기는 거의 레슬링처럼 변합니다. 서지혜는 (아무래도 감독은 공황장애환자를 묘사하려 했던 것 같은데) 눈만 껌뻑거리면서 아역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딸로 나온 주혜린은 최대 희생자입니다. 영화는 이 아이에게 오로지 귀여운 연기만 시킵니다.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연기인 것입니다. (10/12/01)



기타등등

영화의 무대인 삼척시가 소방방재산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알았습니다. 아니,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몰랐고 그 뒤에 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알았지요.


감독: 송인선, 출연: 송창의, 서지혜, 여현수, 주혜린, 다른 제목: Standing Sleeping Tre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Standing_Sleeping_Tre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998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40 리미트 (2022) DJUNA 2022.09.01 1425
439 서울괴담 (2022) DJUNA 2022.04.28 3001
438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2022) [2] DJUNA 2022.04.27 3953
437 더 하우스 (2019) [3] DJUNA 2022.04.23 2111
436 복지식당 (2021) DJUNA 2022.04.20 1859
435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2020) DJUNA 2022.04.09 2640
434 바이 바이 바이 (2016) DJUNA 2021.12.31 2362
433 소피의 세계 (2021) DJUNA 2021.12.31 2869
432 장르만 로맨스 (2021) DJUNA 2021.12.31 2860
431 희수 (2021) DJUNA 2021.12.31 1205
430 해피 뉴 이어 (2021) [1] DJUNA 2021.12.29 1349
429 십개월의 미래 (2020) [1] DJUNA 2021.10.31 2191
428 F20 (2021) DJUNA 2021.10.29 1570
427 종착역 (2020) DJUNA 2021.09.30 1757
426 기적 (2021) [2] DJUNA 2021.09.17 3060
425 방법: 재차의 (2021) [1] DJUNA 2021.08.03 2845
424 모가디슈 (2021) DJUNA 2021.08.03 558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