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2011)

2011.02.12 15:15

DJUNA 조회 수:18802


얼마 전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마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보다 잘 알고 있을 법한 친구들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어지는 회상 장면을 통해, 입에 걸죽한 욕을 달고 다니면서 가장 약해보이는 애를 집단으로 구타하고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보게 돼요. 이 때부터 전 공포에 떱니다. 앞으로 두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하지만 [파수꾼]의 진행 방향은 예상과 조금 다릅니다. 도입부는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기만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어요. 이 영화는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죽은 아들의 복수를 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증거로 도입부에서 구타당하던 아이는 멀쩡하게 살아 있어요. 그렇다면 죽은 아이는 누구이고 왜 죽은 걸까요.


영화는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사실 분명한 건 하나도 없죠. 우린 그 아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릅니다. 우린 그 죽음을 촉발한 사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우린 단지 짐작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짐작이 영화 감상의 절반인 영화입니다.


이 혼란은 의도적입니다. [파수꾼]의 일차목적은 영화의 대상이 되는 십대 소년들의 권력관계가 겉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온전한 그림을 볼 수 없으며 모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입니다. 이 배배 꼬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꼭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지극히 한국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보편적이기도 하죠.


한없이 어둡고 황량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파수꾼]은 제가 처음에 상상했던 영화보다는 감상하기 수월합니다. 영화가 그리는 어두움은 적어도 깊이가 있으며 캐릭터들은 몰입과 감정이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단순해보였던 역학관계의 복잡성과 통제불능성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견고해보였던 권력구조가 훨씬 허술하며 파괴되기 쉽다고 말하죠. 


개인적으로 전 [파수꾼]이 낙천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세계는 훨씬 졸렬하고 단순하며, 영화가 극복하고 파괴하려 했던 단순무식한 신문기사에 더 가까울 거예요. [파수꾼]은 예술작품, 그것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감상의 가치가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어둡고 우울해보여도 이것은 세상을 이루는 저열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 더 나은 꿈이에요. (11/02/12)


★★★☆


기타등등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걸레 씹은 것처럼 입이 지저분한 애들입니다. 일상어의 3분의 1이 욕이에요. 근데 그러면서도 '가르치다/가리키다', '다르다/틀리다'는 다들 정확하게 구별하더군요.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다른 제목: Bleak Night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Bleak_Night.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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