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샤인 온 리스 Sunshine on Leith (2013)

2014.09.07 13:29

DJUNA 조회 수:4170


[선샤인 온 리스]의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고향인 에든버러로 돌아온 두 군인, 데이비와 알리입니다. 알리는 데이비의 동생인 간호사 리즈와 사귀는 중이고, 데이비는 리즈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이본과 데이트를 시작하죠. 한편 데이비와 리즈의 부모인 진과 랩은 결혼 25주년 기념식을 준비 중인데, 알고 봤더니 랩에게는 결혼 후에 떠난 옛 여자친구가 낳은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흔한 이야기입니다.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공감하기도 어렵지 않지만 줄거리만 읽고 '와, 재미있겠다!'라고 외칠 정도는 아니지요. 펼쳐놓은 이야기와 주제를 정리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무난하기 짝이 없고요.

이런 안전함과 편안함은 의도적입니다. [선샤인 온 리스]는 뮤지컬입니다. 프로클레이머스의 노래들을 묶어 만든 동명의 주크박스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죠. 당연히 노래가 중심이 되고 이야기는 노래를 보완하는 도구입니다. 이야기가 좋으면 좋지만 너무 낯설거나 새로우면 곤란하죠. 전형적인 '뮤지컬' 이야기인 겁니다.

보고 있으면 자크 드미의 영화들이 생각납니다. [셰르부르의 우산], [로슈포르의 숙녀들] 같은 작품들요. 특히 [로슈포르의 숙녀들]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냥 네 젊은이가 연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네 젊은이가 에든버러라는 구체적인 도시 안에서 연애를 하고, 로케이션 촬영의 의미가 큰 영화라는 말이죠. 도시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이 스코틀랜드인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갈등 중 하나도 이본이 영국인이고 데이비가 스코틀랜드를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에도 질겁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어떻게 다녀왔는지 모르겠지만.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주목할만합니다. [로슈포르의 숙녀들]에서 로슈포르는 극단적으로 낭만화된 공간이었죠. 하지만 [선샤인 온 리스]의 에든버러는 훨씬 현실에 기울어 있습니다. 아무리 잡생각 없이 연애에 집중하려 해도 아프가니스탄의 기억이 사람들 머리 위를 맴돌고, 사랑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요. 비교적 로맨틱하게 끝나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에든버러 로케이션 역시 별다른 미화나 탈색없이 사용되고 뮤지컬 장면도 거의 플래시 몹 같아요. 그런 거친 표현은 종종 드미 영화나 [맘마미아]와 같은 다른 뮤지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처음 본 구경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뇨, 처음 본 구경거리 맞아요. 전 웨이벌리 역 앞을 지나가던 현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재회한 연인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건 처음 봤어요. (14/09/07)

★★★

기타등등
이본 역의 안토니아 토머스는 흑백 혼혈입니다. 검색해보니 아버지는 웨일즈인이고 어머니가 카리브해 쪽 흑인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이본의 인종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겐 이본이 영국인이라는 게 더 중요하죠. 원작 무대 뮤지컬의 오리지널 캐스팅의 배우를 보니, 안토니아 토머스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된 모양이에요.


감독: Dexter Fletcher, 배우: George MacKay, Antonia Thomas, Jane Horrocks, Peter Mullan, Freya Mavor, Kevin Guthrie, Jason Flemyng

IMDb http://www.imdb.com/title/tt248119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6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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