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0 21:05
고등학교 선생 경훈은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지독한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인 상우에게 게이바에 간 걸 들켜버린 거죠. 그걸 사진으로 찍은 상우는 경훈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협박합니다. 경훈은 어떻게든 상우를 떨어버리려 하지만 그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일단 이 상황에서 키를 쥐고 있는 것이 상우이고, 상우에 대한 경훈의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네, [지난여름, 갑자기]는 사제간 로맨스입니다. 하지만 어제 다룬 [블루밍턴]에서와는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제간의 연애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똑바로 인식하고 있지요.
특히 경훈은 그 때문에 무서워 죽을 지경이라 필사적으로 '너는 제자고,
나는 선생이야' 방어막을 부지런하게 치고 있습니다. 단지 상우는 그런 위험 따위엔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하긴 이런 관계에서 다치는 건 늘 선생이죠. 얄미워.
보도자료를 잃어버려 제대로 인용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는데, 이송희일은
'동성애자 성인이 순진무구한 아이를 꼬셔서 같은 무리로 만든다'는 편견을 뒤집고
조롱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모두
시작부터 작정하고 동성애자이니 이게 정확한 공격인지는 모르겠군요. 물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력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이 상황에는 심술궂은 재미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공식과 그 밑의 감정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요. 드라이브, 한강 유람선, 경훈의 아파트로 이어지는 여정은
섬세하게 아름다우며 두 주인공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성적 끌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채우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공포, 불쾌함, 분노, 갑갑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입니다. 그 때문에 한 폭의 그림처럼 완벽해보이는
형식적인 '해피엔딩'도 그냥 그렇게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전 그냥 '너네들
이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12/11/20)
★★★
기타등등
개인적으로 전 이송희일의 이번 3부작 중 [지난여름, 갑자기]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단지 좋아하기는 힘들더군요. 이런 종류의 관계가 가지는 폭력성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기 때문에.
감독: 이송희일, 배우: 김영재, 한주완,
다른 제목: Suddenly Last Summer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Suddenly_Last_Summer.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9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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