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7 00:02
저는 이 치즈를 냉장고 안에서 발견했어요.
노르웨이어? 로 쓰여 있어서 무슨 음식인지 알지도 못하고...
생긴 것으로 보아서 '버터' 이겠거니 하고, 냉장고청소를 할 때마다 내버려두었던 건데요.
그러던 어느날 냉장고 청소를 하게 됐어요.
이 '음식'의 정체가 무엇인가 , 궁금해져서 사람들에게 여쭤보게 되었구요.
'노르웨이의 브라운 치즈'라는 걸 알아냈어요.
그래서 " '치즈'니까, 스파게티에 넣으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스파게티에 넣었는데,...
치즈의 강한 단맛에 놀랐죠.
'이건 한국에서 먹는 일반적인 치즈가 아니구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너무 행복해하더군요. 맛있다고 춤을 추듯 좋아했어요.
본래 와인과 먹기도 하고, 빵에 얹어먹기도 하는 치즈더라고요.
그래서 이 치즈를 시중에 파나 알아 보았는데
국내에 파는 곳이 없더라고요. 제조했다는 글은 발견했는데, '국립축산과학원'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는 내용이어서 레시피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았어요.
수입도 안되고 있었고요. 브라운 치즈는 노르웨이에 갔던 관광객들이 소량으로 들고 오는 것밖에 공급이 되지 않고 있었어요.
제 냉장고의 브라운 치즈도 그런 과정을 거쳐 온 거겠죠.
그러고 나서... 최근, 친구들에게 이 '브라운 치즈'를 선물해주고 싶어졌어요. 상세히 검색을 해보니..
네이버 지식인에 노르웨이 브라운 치즈 구하는 방법 묻는 글이나..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5&dirId=50502&docId=245486179
올해 2017년 6월에는 노르웨이 브라운 치즈를 수입하겠다는 글이 있고 댓글에 애타게 구한다는 네티즌들이 있었어요.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4&dirId=40502&docId=278637424
을 보고 국립축산과학원에 전화했어요.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만드셨다니까 거기 레시피가 있겠거니 하고요.
그때가 하필 추석이었어요. 추석인걸 까먹고 전화했는데 받으시더라고요.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으니 메모를 남겨 연락드린다고 했어요.
그리고 11일의 휴일이 지나고...
모 농업연구사님과 통화를 했어요. 브라운치즈의 제조 레시피를 알고 싶은데 알려주실 수 없냐고요. 그분이 흔쾌히 메일로 보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레시피>
간단한 레시피지요? 제가 자세히 여쭤보고, 불은 약불로 끓이고, 생크림은 마트에서 파는 유크림 성분으로 된 것을 사서 거품기로 모양내지 않고 그대로 넣어도 된다는 부가설명을 받았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죠.
'유청'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목장이 없었습니다...국립축산과학원 농업연구사님이 알려주셨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유청이 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물인 지라, 다른 치즈를 먼저 만들고 그 유청으로 브라운치즈를 만들면 되겠더라고요. 번거로운 방법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유청분말'을 파는 곳들은 많았습니다. 제가 물었어요.
"그럼 유청분말로 브라운치즈를 제조할 수는 없을까요?"
농업연구사님은 유청분말에 붙어있는 권장섭취방법의 비율로 물을 타서, 유청액상을 만들어서 브라운치즈를 제조하면 성공할 거라 예측한다고는 했어요.
하지만 장담하는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농업연구사님은 여태까지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유청분말'로 브라운치즈를 제조한 전례가 없었다고 했어요...!
지인분이 알아봐주신 결과, 브라운치즈는 유청을 계속 저어주는 과정에서 양에 따라 제조시간이 4시간-6시간 가량의 필요합니다.. 만약에 그 시간을 들였다가 치즈가 완성되지 않는다면...ㅜㅜ
농업연구사님 왈.
"괜찮으시면 저희가 유청분말을 구입해, 소량으로 실험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희 스케줄 조정 때문에 일주일 정도 시간이 소요되실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갈등하다.. 부탁을 드렸습니다.
급하시면 주말에라도 연락하시겠다기에 말렸어요. 저 때문에 주말에 출근하실 필요는 없다고요. 그래서 당초 예상시간인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6일만인 오늘, 연락이 왔어요.
'유청분말'을 이용한 브라운 치즈 제조에 성공했다고요! 게다가 무려 시간도 단축되었습니다!
유청분말 500g에 물 2리터를 섞은 유청액상으로 제조를 시도, 제조시간에 1시간 반이 걸리셨다고 합니다.
결과물은 600g 나왔고 430g을 연구용으로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소유, 나머지 170g을 저에게 택배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조심스럽게... 택배비는...? 어찌 되냐고 여쭤보았는데 그쪽에서 부담하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동감동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브라운치즈를 드시고 싶은 분들이 손쉽게 제조하기 힘들었던 게, 4-6시간 걸리는 제조 시간 때문이라면
유청분말을 사용한 시간단축된 제조방법이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애초에 유청액상을 끓여서 졸이는 조리법이기 때문에 가루라서 빨리 조리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조만간 유청가루를 사서 브라운치즈를 제조할 거에요. 그리고 이 생소한 치즈가 궁금한 제 주변 분들에게 나눠드릴까 합니다.
단, 농업연구사님이 말하기를 "저희 쪽 화력이 세기 때문에 그건 감안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중불로 해서 제조를 했구요, 농축이 덜 되서 그런지 약간 무른 질감으로 된 거 같기에, 받아보시고 직접 만드실 땐 조금 더 끓여서 농축하시면 됩니다." 라고 하셨기에, 1시간 반에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요.
2017.10.17 01:04
2017.10.17 01:17
멋집니다. 추천 버튼이 없어 슬플 지경입니다.
2017.10.17 01:19
2017.10.17 01:22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무슨 큰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드라마틱 하고 사이다 느낌이지 싶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일련의 과정들 안에서 한국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불쾌한 일이 하나도 안 일어나서 그런 듯 합니다. 저장해 두고 우울할 때 마다 읽고 싶어지는 글 입니다. 그리고 좋은 레시피 감사합니다. 저도 언젠가 한번 도전해 봐야겠네요.
2017.10.17 15:37
2017.10.17 01:30
2017.10.17 09:35
좋은 레서피 감사합니다. 대단하시네요.
2017.10.17 10:55
2017.10.17 11:56
2017.10.17 12:24
국립축산과학원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는군요.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민원인의 질문에 이렇게나 친절하고 세심하게 응대해주신 농업연구사님께 제가 다 감사하네요.
2017.10.17 13:06
이렇게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자체 기술로 브라운 치즈를 양산하게 되고, 치즈의 패키지엔 말하는작은개님이 직접 그린 캐릭터가 쓰이게 되는데!
2017.10.17 15:18
2017.10.17 15:33
2017.10.17 17:50
2017.10.17 18:33
2017.10.17 22:03
오늘 오후에 치즈가 왔어요, 자그마한 보냉용 스티로폼 상자에, 아이스팩을 넣어서 진공포장(!)까지 해주셔서 보내주셧습니다!
질감은 농업연구사님이 말씀 주신대로 노르웨이 시판 브라운 치즈보다 많이 무른 질감이라 캐러멜 스럽네요. 노르웨이 시판 치즈는, 냉장고에
오래 있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안잘려서 무자르는 칼로도 애먹었었는데..
과학원치즈는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나니 레시피에 대해 보충해야 할 의문점들이나 제조 뒤 섭취기한 같은 것이 신경쓰여 농업연구사님께 메일을 하나 더 보넀어요.
제가 위 글에는 안썼지만.. 조리시 '약불'로 반드시 제조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과학원에서 화력얘기를 하며 중불로 조리하셨다고 해서 약간 헷갈리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유청분말 같은 경우 다이어트 식품 같은 건 쓰면 안되고요.. 그냥 유청분말을 써야 하구요.
궁금한점도 여쭤봤는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데 너무 이것저것 여쭤봤나.. ^^; 싶은 생각도 드네요.
답변이 오면 댓글에 같이 올릴랬는데 바쁘신지 아직 회신이 없으시네요.
ㅇㄱㅌ님은 아닙니다. 국립축산연구원 직원분들이 친절하신 분들이 많은가 보아요.
이 치즈를 알아보시는 분이 있군요.^0^ 개인판매는.. 이게 다른 것도 아니고 식품인지라- 판매는 어려울 거 같아요 ㅠ.ㅠ 저도 증말 팔아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어서.. 당장 만들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떨지 모르기도 하구요. 제가 많이 만들 수 있다면 증여는 가능하겠는데, 아직은 실제 제조를 들어갔을 때 양이 얼마나 만들 수 있을지 몰라서요 ㅠㅠ 후기는 올리겠습니다~ 농업연구사님과 레시피에 대해 좀 더 대화해보고 치즈도 만들어본 뒤 더 자세한 레시피?설명?과 함께 인증 올릴게요. 내일 유청분말을 구입하러 방산시장에 갑니다. 그리고 브라운 치즈를 처음 드셔보는 친구분과 시식을 해볼 거에요~!! 댓글들 감사합니다~
2017.10.18 13:28
아마 가정에서는 계속 저어줘야 하기 때문에 약불로 할 수밖에 없지만 연구소에서는 자동으로 저어주는 설비 같은 게 있어서 중불로 휘리릭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글로 써진 것만 보면 간단해보이지만 막상 하려면 꽤 집중력과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후기도 기대할게요!! 저도 올려주신 레서피 참고해서 만들어봐야겠네요.
2017.10.17 22:42
고마운 분들 덕에 아주 해볼만한 일이 생긴 것 같아요.
2017.10.18 15:15
노르웨이에 갔다가 일키로짜리 브라운 치즈 덩어리를 사왔는데 반가운 글이네요. 거기서는 감자칼 늘려놓은 것 처럼 생긴 치즈 슬라이서(이것도 노르웨이 발명품이라고 합니다)로 얇게 벗겨서 먹더라구요. 야금야금 먹고 있는데 달고 진해서 다 먹으면 생각날 것 같아요.
2017.10.19 09:08
2017.10.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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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런 대단한 성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