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쿠아님 글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어요.

형제 자매 혹은 남매 간에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경우 저도 주위에서 참 많이 봐왔거든요.

어쩌면 저희집 역시 다르지 않구요.

두살 차이 남동생과 저도 근본적인 성격이랄까 성향이랄까 그런게 반대에 가까워요.

동생은 신중하면서 내성적인 성격. 그러면서 속내는 따뜻하고. 

저는 그에 비해 좀 적극적이고 밝아보이는 성격. 그러나 알고보면 냉정한 편인 인간이지요.

둘다 예민하다는 면에서는 또 비슷하기 때문에 자라면서 아무래도 많이 충돌했지요.

유년시절보다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특히 그랬어요.

스무살 무렵엔 정점을 찍어 일년 가까이 한집에서 말없이 지낸 적도 있어요.

서로 한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투명인간 취급..;

(저는 이게 아주 특이하고 부끄러운 경험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중에 친구들과 얘기해보니 저처럼 형제 간에 이런 시기를 보낸 경우가 꽤 되더라구요.)


부모님은 남녀차별을 한다거나 하는 분들은 아니었고

비교적 합리적이고 공정한 역할을 하신 편이었어요.

그렇지만 엄마는 저에겐 언제나 동생이 가진 신중함과 사려깊음에 대해 훌륭한 가치라고 마구 강조하셨고,

아마도 동생에겐 반대로 제가 가진 성격의 장점에 대해 또 그렇게 좋은 점이라고 주장하셨겠죠.

세상 단둘뿐인 남매가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으면 좋겠다는 의도였을 거예요.

또 애들 각자가 가진 단점을 상대의 장점을 배움으로써 상쇄시켜보려했던 의도도 컸겠죠.

그런 마음은 잘 알겠으나 

그게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사실 약보다는 독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 나도 동생처럼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가 아니라

'아 엄마는 근본적으론 쟤를 나보다 훨씬 사랑하는구나. 동생처럼 사려깊지 못하고 무심한 내 성격은 나쁜거구나' 라고

자학하게 되었거든요.

그 자학의 화살은 결국 동생에게로....


저는 지금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고, 뱃속에 또하나의 아이가 있어요.

제가 아이 하나를 키울때, 얼른 둘째를 낳아라, 애가 둘은 있어야 한다, 동생이야말로 얘한테 가장 큰 선물이다, 라는 말들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어요.

가장 열정적으로 둘째 론을 설파한 사람은, 정작 본인은 사춘기 딸하나만 키우는 친척언니인데

자기 인생의 가장 큰 후회가 애 하나 낳은 거라면서 

혼자 자라서 자기 딸이 저렇게 못되고 이기적인 거라고 노냥 한탄을 하곤 했죠.

바로 그 딸 앞에서 말이에요 ㅠㅠ

그러면 그 딸내미는 '흥, 난 동생 싫다니까. 난 혼자가 얼마나 좋은데. 아 엄마 짜증나'

뭐 이런 반응을......

그걸 지켜보면서 정작 혼자 크는 애는 괜찮은데 

어른들이 그 아이의 이상한 (즉, 어른 맘에 안드는) 성격의 원인을 '혼자 크기 때문' 이라고 단정내리는게

더 문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막상 혼자 노는 우리아이를 볼때면 '우리 부부 다 죽고 얘 혼자 남으면 진짜 외로울려나' 하기도 했구요.


그러다 지금은 어찌저찌하여 둘째를 기다리는 중.

주위 사람들은 벌써 아이의 성별에 귀추를 주목하며

딸딸은 어떻다느니, 딸아들은 또 어떻다느니 입방아를 찧어요.

전 잘 모르겠어요.

자매가 없기 때문에 딸딸인 집이 부럽기도 했지만

엄청나게 싸우고 평생 날카로운 경쟁관계로 서로에게 상처를 내기도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거든요.

또한, 딸아들인 집은 저와 남동생처럼 데면데면하게 자랄지도 모른다 싶구요.

그럼 어른들이 둘째를 낳으라며 말하던 '큰애가 외로우니 하나 더' 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거잖아요;;


둘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

남동생과 제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입니다.

일단 둘다 각기 가정을 꾸렸고, 자주 만날 일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아무리 자주 봐도 한달에 두번 보기 어렵고

두달에 한번쯤 볼 때도 적잖아요.

그렇게 가끔, 각자의 식솔들과 부모님과 여럿이 같이 보는데 사이가 나쁜게 더 이상하겠죠.

통화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에요.

엄마를 통해 감기가 아주 심하다는 얘길 전해들었을 때라거나

부모님 생신에 어디서 외식할까, 같은 문제를 의논하는 등 용건이 있을 때만 통화를 하게 되네요. 


뭐랄까..그냥 조금 멀리서 바라보며, 아 저녀석 잘 살고있구나, 나름 사회생활 잘 하네,

그렇게 묵묵히 응원하는 사이랄까요.

좋은 일 생기면 (집을 산다던가, 좋은데 이직했다던가)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기특해하고 이런건 있지요.

동생도 저에게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데 늘 가족끼리 우르르 만나서인지, 우리만 단둘이서 밖에서 만나서 밥먹고 커피마시고 한다면

어쩐지 꽤나 어색할 것 같아요 ㅎㅎ

그러고보니 성인이 된 이후로 우리 남매 둘이서만 밖에서 따로 만나 뭘 해본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직은 부모님 다 건강하시지만 혹시 편찮으시게 되면

지금보다 더 든든하게 의지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혹자는, 그러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부딪치는 거라고 주장..

수면 아래 있던 돈문제, 부양문제 등등이 다 드러나며 부모님 병중에 웬수가 되는 형제가 부지기수라고;;)


가끔 내 인생에 동생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내가 혼자 자랐다면,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됐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뭐 특별히 다른 인간이 되었을것 같지는 않네요.


...여러분은 형제끼리, 관계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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