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롱레그스 Longlegs (2024)

2024.10.11 16:12

Q 조회 수:138

미국, 캐나다. 2024. ☆☆☆★★


A C2Motion Pictures Group/Odd Fellows Entertainment/Range Media Partners/Saturn Films/Traffic. Company Co-Production, distributed by Neon. 1시간 41분, 화면비 2.39:1 

Director & Screenplay: Osgood Perkins. 

Producers: Nicolas Cage, Dave Caplan, Dan Kegan, Brian Kavanaugh-Jones, Chris Ferguson. 

Cinematography: Andres Arochi Tinajero. 

Production Design: Danny Vermette. 

Music: Zilgi [Elvis Perkins]. 

Costume Design: Mica Kayde. 

Special Makeup Effects: Sheila Erdmann, Werner Pretorius, Harlow MacFarlane. 

Sound Effects Design: Greg Pyne. 


CAST: Maika Monroe (리 하커 요원), Alicia Witt (루스 하커), Nicolas Cage (롱레그스/데일 코블), Blair Underwood (카터 요원), Michelle Choi-Lee (브라우닝 요원), Kiernan Shipka (캐리 앤 카메라), Lauren Acala (어린시절의 리 하커), Ava Kelders (루비 카터), Carmel Amit (안나 카터). 


LONGLEGS- PEEKABOO


[롱레그스] 는 [싸이코] 의 명배우 안소니 퍼킨스의 아들 오스굿 퍼킨스의 최신 감독작입니다. 오스굿 (“오지”) 퍼킨스는 내가 선호하는 감독중의 하나고, 데뷔한지 10년 동안 줄곧 자신의 시그니처가 확실한 스타일의 호러영화를 제작해 온 분이죠. [놉] 에서는 영화감독 역으로 출연도 했는데요, 원래 배우 지망생이어서 거의 2000년대 초반부터 TV-케이블 시리즈 등에 꾸준히 단역-조역으로 출연해왔었어요. 그런데 2015년에 [Blackcoat’s Daughter] 라는 극저예산 인디 호러영화로 감독 데뷔하고 나서부터는, 과작이긴 해도 (사실 최근 미국에서 평가를 받는 인디 장르 감독들 중에는 옛적 로저 코어먼 식으로 다작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브랜던 크로넨버그도 거의 3-4년에 하나씩 내놓는 페이스고요. 제작 환경의 변화가 아마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I Am the Pretty Thing That Lives in the House], 그리고 4년전에 나온 소피아 릴리스 주연의 [그레텔과 한젤] 등의 이색작들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이 [그레텔과 한젤] 은 문제점도 꽤 있지만 블루 레이로 사두고 여러 번 보고 싶은 매력적인 한편이고, 언제 리뷰도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오지 퍼킨스는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스타일과 방식으로 얘기를 풀어나갈 것인가가 아주 확실하게 보이는 감독이기 때문에, [롱레그스] 의 경우는 제가 잘 모르는 감독의 영화를 사전 정보 없이 보게 되는 경우나, 또는 선전용으로 작성된 시놉시스나 예고편 등을 보고 미루어 판단하는 케이스와는 달리, 나의 몸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지 추산이 어느 정도 가능한 케이스였어요. 그런데 [롱레그스]는,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요즘 A24 와 더불어 제일 잘 나가는 인디 배급회사 네온의 어마무시하게 효율적인 마케팅 ([양들의 침묵] 예고편을 적극 참조한 듯한, 내용을 거의 알려주지 않는 분위기 만땅인 예고편 등) 에 힘입어, 2024년 독립영화 중에서 최고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네온이 배급한 작품중에서도 역대 최고 성적이라고 하는데요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네온의 이제까지의 최고 북미 박스 오피스 성적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글로벌 박스 오피스가 대충 1억8백만 달러고, 국내 티켓매상액이 약 7천 4백만달러인데, 제작비는 1천만달러가 좀 안된다고 하니, 제작비 대비 매출액으로 따지면 2024년 최고 히트작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미 벌어진 다음에 감상하게 되었기 때문에, 솔직한 심정으로는 음~ 이거 뭔가 대중적인 타협이 이루어져서 오지 퍼킨스 나름의 괴팍하고 특이한 감성이 희석되버린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은근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불안한 심정과 함께 감상했는데, 브라이언 데 팔마가 히치코크 명작들을 벤치마킹 하는 것처럼 [양들의 침묵] 을 강력하게 전범으로 삼고 만들었다던지, 그런 “기획적” 인 부분이 평소의 그의 작품들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딱히 그의 독특한 터치가 희석되었다거나 그런 “타협적” 인 부분은 없었어요. 확실히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서 조금 덜 “난해” 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이런 전반적인 인상은 [롱레그스] 가 실질적으로 더 알기 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한편이FBI 요원이 수십년동안 동일한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속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대중적 미국 장르영화의 공식에 더 근접해 있고, 그에 따라서 미스테리장르에서 아주 익숙한 정보 전달과 플롯 전개의 방식을 따라가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물론 이 한편에서 주어지는 정보들이 일반적인 관객들이 납득하면서 평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롱레그스] 는 과거의 탑 레벨 J-호러영화를 연상시키는 (저질 비데오 게임의 꼬라지를 하고 있는 하찮은 삼류작들 말고) 방식으로 무척 분위기를 타는 한편이기 때문에, 비데오로 걸어놓고 화면 멈췄다가 화장실 갔다오고 그런 식으로 관람하면 극장에서 예고편 보고 잔뜩 쫄아서 보러 온 관객들과 같이 감상하는 것에 비해 훨씬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전개되는 방식도 여러분들의 [양들의 침묵] 등의 고전 연속살인범 영화 및 초자연적인 요소와 경찰 수사같은 “합리적” 인 요소의 배합의 정도 등의 이슈에 대한 관객분들의 태도에 따라서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일부의 북미 평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뭔 얘기야 이게?” 라면서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슈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삼가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FBI 요원이 연속살인범 잡는 스토리의 정합성이 강한 미스테리 스릴러” 를 기대하고 오시면 기대치를 한참 못 미치실 것이 능히 예상됩니다. 


일례를 들자면 리 하커 요원이 롱레그스가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교사살인사건의 현장에 (본인은 현장에 있을 수가 없으므로) 남긴, 암호로 작성된 노트를 해독하는 시퀜스를 보면, 스토리상의 전개나 추리물장르로서의 재미에 아무런 공헌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뭔가 찝찝하고 상궤를 벗어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 장르영화는 미국 사회와 권력구조가 원래 그렇다 보니까 어떤 사실이나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 추론을 보여주는 과정 (반드시 범죄 수사가 아니더라도) 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롱레그스] 는 이런 법리적이고 과학적인 과정을 겉으로만 보여주고 그 내실에는 관심이 없어요. 롱레그스가 어떤 방식으로 일가족 몰살이라는 범죄를 수십번에 걸쳐 실행해왔는지에 대한 “설명” 은 일단 주어지긴 하는데, 그 설명 자체도 훌륭한 미스테리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아귀가 맞아 떨어지면서 캐릭터들의 동기가 납득이 가게 표상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에요. 희생자 집안의 딸을 본따 만든 인형의 뇌에 금속구를 심어놓는 등의 설정도 그 금속구가 뭔지, 뭐가 거기 들어있다는 것인지, 이 인형이 있어야지만 그 집안 일가족의 살인이 가능한 것인지, 관객들의 추론은 가능하긴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헷갈려도 미적이나 감정적으로 어필을 할 수 있는 구석이 있으면 되는데, 그 부분은 관객분들이 기본적으로는 수동적인 캐릭터인 리 하커와 그의 어머니 루스에 공감할 수 있는가에 따라 많이 좌우될 것 같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합리적인 장르영화에 합당한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에 넣고 관람하자면, 이 한편의 주요 캐스팅과 연기자들은 좋습니다. 마이카 몬로는 [It Follows] 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후 팬이 되었는데, 이 분의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애달퍼 보이는 모습을 잘 살린 캐스팅입니다. 단지 그가 연기하는 리 하커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강한 캐릭터는 아니에요. FBI 요원인 만큼 액션이라는 측면에서 주도권을 잡기는 하지만, 서사에 동력을 부여해서 끌고 나가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 역할은 실제 등장하는 분량은 얼마 안되지만 하커의 어머니 역의 알리시아 위트와 롱레그스 역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고 있다고 봐야 되겠죠. 두 연기자 다 일반적인 “보통 사람” 역할에는 현격하게 어울리지 않는 분들이죠. 


LONGLEGS- RUTH 


케서방의 경우는 특별하게 과장된 것은 없지만, 정말로 섬뜩하게 기분나쁜 [주온] 풍의 허연 밀가루 반죽 메이크업을 하고 등장하는데, 케서방의 연기라는 광대한 스펙트럼에서 놓고 보자면 의외로 절제와 정교함의 축에 가까운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연기하는 중년 (50대 후반 정도 나이의? 보다 젊은 시절의 모습도 나오긴 합니다만) 의 연속살인마 롱레그스는 토마스 해리스 소설의 모델들과 비교하자면 한니발 렉터와는 완연히 다른 양상의 사이코에 속하는 캐릭터로, [붉은 용] 의 메인 빌런인 프란시스 돌라하이드에다가 쿠로사와 키요시 감독의 [큐어] 의 전염병처럼 옮겨다니는 살의의 인격이 혼합된 것 같은 존재입니다. 케서방은 “심리적인 내면” 의 묘사는 거의 방기하고, 마치 카부키 역자(役者)가 미에 (見栄) 를 보여주는 것 같은 일면 우아한 방식으로 외면적인 괴기스러움과 위협성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 캐릭터는 A-리스트 미국 장르영화에 등장하기 십상인 지적이고 철학적인 연속살인범과는 달리, 아무 맥락없이 연관이 없는 사람들도 잔인하게 괴롭히고 죽이는 J-호러의 “토오리마” 악귀/원혼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흥미있는 것은, 롱레그스가 자칫 잘못하면 마치 얼굴에 하얗게 분칠하고 몸에 딱 달라붙는 꼬마용 신사복을 입은 채 싸돌아다니면서, 초등학교 1-2학년생을 방불시키는 대사를 치는 피위 허먼의 “히피 버전” 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퍼킨스 감독이 대놓고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건데요. 그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소녀에 기괴한 퍼포먼스를 해보이지만, 그 소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그가 큰 소리로 “이 변태 아저씨가 또 왔어요!” 라고 가게 뒤에 있는 아빠에게 일러바치는 일막의 유머 따위에서 그런 태도의 일단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알리시아 위트는 마이카 몬로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모녀관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는 좋은 편입니다. 말을 잘 못하면 화를 불러일으킬까봐 조심하는 버릇이 몸에 밴 것처럼 보이는 몬로에 대해, 평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 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어딘가 상궤를 벗어났다는 인상을 진득하게 전달해주는 위트의 대응이 이 한편에서는 지극히 효과적입니다. 그 덕택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하자가 많이 보이는 클라이맥스의 반전— 어떻게 보자면 히치코크의 [싸이코] 를 두 번 정도 뒤집은 트릭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합니다만— 도 살아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롱레그스] 는 [양들의 침묵] 처럼 모든 방면에서 최고급 수준의 통제가 이루어진 걸작은 아닙니다. 관객 분들의 장르적인 기대치에 따라서, 또는 위에서 말했듯이 이 한편을 관람하게 된 맥락에 따라서 반응도의 높낮이가 좀 심할 수 있는 한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나는 재미있게 보았고, 준수한 호러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케이지와 위트, 몬로 세 연기자들의 팬들께는 강력 추천드리고 싶네요. 


사족 1: 역시 세련된 J-호러 스코어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맡은 것은 “질기” 라는 예명의 작곡가인데 그 정체는 오지 퍼킨스의 동생인 엘비스 퍼킨스라고 합니다. 음악은 호러 스코어 치고는 좀 평범하긴 한데, 음악적으로는 70년대에 유명했던 글램 록 밴드 T-Rex 의 노래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족 2: 이 영화가 벌어지는 시대 배경은 1990년대 중-후반인데, FBI 부서에 빌 클린턴 대통령 사진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죠. 원래 아이디어는 1990년대 초반으로 설정될 예정이었다는 군요. 참조삼아 [양들의 침묵] 이 공개된 것은 1991년입니다 (토마스 해리스의 원작은 88년도 출판. 이 분도 과작입니다. 렉터 시리즈의 후속작을 한편씩 내놓는데 거의 7년에서 10년이 걸렸죠). 오지 퍼킨스에 의하면 시대배경을 몇 년 더 현대에 가깝게 상정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임기1989-1993) 사진을 보기 싫어서 (!) 그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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