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 수필 중 '보스턴 심포니'

2010.10.04 20:37

브랫 조회 수:2935

회원리뷰 게시판에서 베베른님의 공연후기를 읽고 이 글이 너무 생각이 나서 찾아본 김에

멋진 글 함께 다시 읽고 싶어서 옮겨적습니다.

 

=========================================================================

 

                      보스턴 심포니

 

 

재즈라도 들으려고 AFKN에다 다이얼을 돌렸다.

시월 어떤 토요일 한 시경이었다.

뜻밖에도 그때 심포니 홀로부터 보스턴 심포니 75주년 기념 연주 중계 방송을 한다고 한다.

나의 마음은 약간 설레었다.

 

1954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에 걸친 연주 시즌에 나는 금요일마다 보스턴 심포니를 들으러 갔었다.

 

삼층 꼭대기 특별석에서 듣는 60센트짜리 입장권을 사느라고 장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때마다 만나게 되는 하버드 대학 현대시 세미나에 나오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교실에서 가끔 날카로운 비평을 발표하였다.

크고 맑은 눈, 끝이 약간 들린 듯한 엷은 입술, 굽이치는 갈색 머리, 그의 용모는 아름다왔다.

오케스트라가 음정을 고르고 샹들리에 불들이 흐려진다.

 

갑자기 고요해진다.

머리 하얀 콘덕터 찰즈 먼치가 소낙비 같은 박수 소리를 맞으며 나온다.

배턴이 들리자 하이든 심포니 B 플랫 메이저는 미국 동부 지방 불야성(不夜城)들을 지나

별 많은 프레리를 지나 해 지는 태평양을 건너 지금 내 방 라디오로부터 흘러 나오고 있다.

 

그는 이 가을도 와이드나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벌써 단풍이 들었을 야드에서 다람쥐와 장난을 하고,

이 순간은 심포니 홀 삼층 갤러리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꿈 같은 이태 전 어느 날 밤 도서관 층계에서 그와 내가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 미소는 나의 마음 고요한 호수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음향과 같이 사라졌다.

중계 방송이 끊어졌다.

7천 마일 거리가 우리를 다시 딴 세상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이든 심포니 제 1 악장은 무지개와도 같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013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915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9460
126700 [왓챠바낭] 혼돈과 혼란 그 자체, '음모론의 단서' 잡담입니다 new 로이배티 2024.07.14 33
126699 굿바이 바이든 (feat. $90m) new 사막여우 2024.07.13 92
126698 프레임드 #855 [2] new Lunagazer 2024.07.13 34
126697 에미넴 신곡 Habits/앨벙 공개 daviddain 2024.07.13 53
126696 어제 알카라스 경기 보러 온 휴 그랜트 daviddain 2024.07.13 79
126695 듀게엔 많이 계시죠? 이 노래 아시는 분 [5] update thoma 2024.07.13 160
126694 다시 성사된 알카라스 vs 조코비치 [12] update daviddain 2024.07.13 82
126693 새 마블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티저 예고편 [3] update 상수 2024.07.13 166
126692 끈임없이 위아래를 확인하는 사회 catgotmy 2024.07.13 105
126691 역사에 대해 catgotmy 2024.07.13 54
126690 관종, 어그로, 이빨쟁이의 끝은 결국 무플 ND 2024.07.13 190
126689 [웨이브바낭] 어떻게 생각하면(?) 기대 이상, '사다코 DX' 잡담입니다 [2] update 로이배티 2024.07.13 123
126688 (스포) 프렌치수프 [2] Sonny 2024.07.12 153
126687 28호 아니고, 그냥 '철인' [2] 돌도끼 2024.07.12 149
126686 [KBS1 독립영화관] 말 없는 소녀 [57] underground 2024.07.12 296
126685 [인형의 계곡을 지나]가 부천에서 상영되었으니... [1] 조성용 2024.07.12 127
126684 호아라는 밴드가 있습니다. [1] Lunagazer 2024.07.12 104
126683 프레임드 #854 [3] Lunagazer 2024.07.12 50
126682 캣츠 아이 실사판 예고편 [1] 돌도끼 2024.07.12 93
126681 대림동에 대해 catgotmy 2024.07.12 13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