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날 설레게 해줘서 고마워

2011.09.26 00:35

유키에 조회 수:2029

가을밤, 일요일 저녁에 문득, 가장 최근에 날 설레이게 해준 남자사람이 생각나서

이 시간은 그런 시간이니까, 그냥 바낭.

정말 두서없는 연애사바낭. 아주 유치한 바낭.

 

인생 처음으로 나보다 어린 남자에게 설레어봤어요.

지독한 아저씨취향의 나이기에

처음엔 내가 요즘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봤나 했죠. ㅎㅎ

 

정말 말도안되는 어둡고 지리한 연애에 종지부를 찍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인지라,

처음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매일같이 점심을 같이 먹고,

누군가의 뒷담화를 나누고, 취향을 이야기하고, 시시한 잡담을 나누면서

주변세파에 시달리며 얼굴에는 표정이, 심장에는 마음이 사라진 나였는데,

어느새 그런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 이 아이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빨리 눈치챘어야 했어요.

 

아니, 어쩌면 서로 눈치 챘지만, 그 아이에게는 오래된 여친과

저에게는 현실도피를 위해 노력하여 만든 남친이 있었지요.

 

그래도 그 아이가 있으면 기분이 좋고,

하루종일 그 아이 이야기를 하는걸 멈출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 덕분에 웃으면서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어요.

웃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고, 결단을 내릴수가 있었어요.

 

마지막날이 정해지고, 더이상은 마음에 거짓말을 할수 없어진 저는

약속을 잡았어요.

 

오늘 보자는 말을 하기 위해 건 전화를 하면서 두근거려서,

그 아이를 기다리는 것이 즐겁고,

만나서 주고받는 시덥잖은 대화가 즐거워서

같이 있는게 긴장되서 길을 헤맬정도로 빠져 있었던 거죠.

그날저녁, 지금하고있는 바보짓을 깨달았어요. 남자친구에겐 이렇게 두근거리고 설레여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아주 티가 났나봐요. 동시에 그 아이 마음속엔 내가 아닌 딴 여자가 들어있다는 것 역시 확인받았어요.

 

그날이후 회사를 그만둔 날까지, 한번도 만나지 않았고 대화도 나누지 않았어요.

남자친구와는 헤어졌어요. 제가 갖출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서....

사랑은 노력으로 갖추어질 수 없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구요.

 

그 아이와 마지막으로 만난지 한달이상이 지났고,

매일매일 생각이 나던 시간들이 지나고, 지금은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로맨스가 필요해>를 보게 된거죠. 아아, 15회 엔딩이 갑자기 지난 달의 저를 생각나게 하네요.  

 

"불안하고 힘들때, 날 설레게해줘서 고마워"

 

그건 정중한 거절이었고,  그렇더라도 다음 스텝을 옮길 용기가 없었던 나자신에 대한 바보같은 원망을 뒤로하고라도

그 아이가 없었더라면 아마 견뎌낼 수 없었을 거예요. 지난 1년간의 그 어두웠던 시간을...

그리고 지난 사랑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가슴이 뛰는, 설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가슴이 다시 뛸 수 있다는 걸 알게해줘서 그냥 고마운 사람이예요.

그 이상을 내딛는건 지금은 무서워서 하지 못하겠어요.

그 아이에게도 저는 딱 그정도까지의 사람인거죠. 

 

아주 많이 갑자기 보고싶어지네요.

이제 정말 가을인가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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