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와의 인연

어린 시절 오락실은 자주 다녔지만 집에는 게임기가 없었습니다.

당시 제 주변 친구들도 비슷했고 그나마 몇몇의 집에 대우 재믹스, 삼성 겜보이, 현대 컴보이같이 부모님이 백화점이나 가전판매점에서 사준 것들이었죠.

그외에 그나마 TV나 신문, 잡지 광고를 통해 인지도가 있었던 해태전자의 슈퍼콤, 영실업의 파스칼124, 삼근물산이 죠이콤같은 게임기들이 있었네요.

얘들은 전부 저작권 상콤하게 무시한 그냥 패미컴 호환기들이었지만.

그때는 가정용 게임기라는 물건 자체가 사치품 취급을 받았고 아이들 장난감중에서도 최고가를 자랑했었습니다.

대형 변신로봇이나 작동완구, RC카도 10만원을 넘어가는 물건은 드물었기때문이죠.

당시 국내에서 정식으로 판매되는 모든 게임기들은 대부분 10만원에서 그 이상의 가격이 매겨져있었습니다.

일부 패미컴 호환기중 중소기업 제품이 10만원에 약간 못미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요.

그러니 게임기라는 물건은 차마 집에 사달라는 엄두도 못내고 게임기있는 친구집에 우르르 몰려가서 한판씩했지만 그나마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았었습니다.

오락실은 당시 용돈 몇백원으로는 뭐 몇판 땡겨보지도 못했고 또 그 시절 오락실은 무서운 형님?들이 드글거리는 일종의 마굴이었기에 함부로 잘 모르는 오락실에 갔다가는 매맞고 돈뺏기기 일수였지요.

그렇게 게임기는 꿈같은 물건이구나하고 오락실이나 들락거리던 중 게임잡지라는 물건이 창간됩니다.

이전에는 콤퓨타잡지에서 게임은 서브로 다루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만 전문적으로 다루게 되었지요.

다행히 집안 어른중에 서점을 하시는 분이 계서서 책은 남들보다 비교적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당시엔 대부분 만화책이나 만화잡지였지만.

무튼 저는 창간호부터 그 게임잡지를 모았고 그간 제 주변에서 보던 8비트 게임기가 아닌 16비트 게임기가 해외에서는 대세하는 것도 알게 되었네요.

국내에는 메가드라이브가 삼성겜보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지만 이게 기존 8비트 게임기보다 훨씬 비싼 물건이라 전교에 이거 가지고 있는 애가 손에 꼽을 정도였을겁니다.

어떤 잡지든 첫장 넘기면 나오는 올컬러의 광고를 무척이나 좋아했던지라 게임잡이 역시 광고부터 꼼곰히 봤더랬죠.

그간 게임기의 소프트, 즉 게임팩 롬카트리지는 기존의 백화점, 전자제품 판매점이나 문구완구점, 비디오가게나 레코드방등 음반점에서만 판매를 하는줄알았거든요.

근데 게임잡의 광고를 보고 게임샵이라는 게임전문가게라는것이 존재한다는걸 알았습니다.

또한 도매상도 존재해서 백화점이나 여타 판매점보다는 저렴하다는것도 알게되었구요.

가장 큰 충격은 대만에서 수입해서 들어오던 패미컴 호환기 일명 훼밀리게임기의 존재였어요.

분명 가정용게임기인데 가격이 4만원대 심지어는 3만원대의 물건도 보이더라는겁니다.

물론 그걸 한국업체에서 수입하거나 국내조립을 하는 제품은 8만원대 혹은 10만원 넘어가는 제품도 간혹있었지만 직수입된 물건들은 대부분 저가였죠.

그리고 이 게임기들이 모든 패미컴팩이 호환된다는것까지 간파했습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게 MSX 기반인 재믹스는 대부분 저용량의 MSX1 게임들이라 당시에는 무척 시시한 게임들이었고 MSX2 기반 게임이나 메가롬팩은 구할데도 없었죠.

해서 재믹스있는 집들 대부분이 어느순간부터 시시해서 게임을 안하거나 마성전설같은 일부 명작들만 주구장창 반복해서 플레이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았던 세가마스터시스템의 겜보이의 경우는 삼성에서 많은 소프트를 수입해서 괜찮은 편이었지만 세가마크 자체가 세가의 삽질로 소프트도 변변찬고

당시로서는 끝물의 하드여서 이또한 사정이 여의치않았죠. 

즉, 재믹스와 겜보이는 게이머로서의 게임기라기 보다는 부모님이 사다준 비싼 장난감이라는 용도로 밖에는 쓸수없었습니다.

다만 패미컴 기반인 현대 컴보이는 그나마 보조팩이라는 컨버터를 이용해서 북미NES팩이 아닌 일본판 패미컴 팩도 사용이 가능했기에 몇 종류 안되는 NES팩을 대신해 이 보조팩이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만산 훼밀리와 복사팩들이 엄청나게 수입이 되었고 가격까지 저렴하니 결국 집에서도 이런 저의 설득해 저렴한 훼밀리게임기를 사다줬습니다.

아쉬운건 집에서 팩값이 비싸다고 패미컴 초창기 저용량 게임들이 수록된 42합팩을 사준거죠.

덕분에 신작같은건 꿈도 못꾸고 한 6개월간은 슈퍼마리오, 마리오브로스, 마피, 로드런너, 뽀빠이, 1942, 갤러그같은 게임만 주구장창했습니다.

그래도 내집에서 TV에 게임기를 연결해서 플레이한다는 건 정말 꿈같은 일이라 그 경험 자체가 환상이었죠.

그러다 결국 용돈을 모으고 모아 위치를 수소문해 게임샵이라는 곳에서 드디어 게임팩을 구입하게됩니다.

친구들이 당시 난리가 났습니다.

재믹스, 겜보이로는 구경도 못하던 드래곤볼, 닌자거북이, 록맨, 열혈시리즈, 배트맨, 와이와이월드, 혼두라, 더블드래곤2 등등......

거기에 저렴한 게임기 가격과 팩값에 또 한번 충격을 받더군요.

이때부터 패미컴 호환기를 구입하는 집들이 늘어났고 서로 팩도 교환해서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게임샵에서 팩을 구입하거나 교환하는등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플레이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습니다.

게임잡지의 공략을 통해 파이날판타지3나 드래곤퀘스트4, 천지를먹다2, 최강의7인, 라그랑주포인트등 롤플레잉 게임도 도전하기 시작했고 드래곤볼Z 시리즈중 2편인 격신프리더는 그야말로 전설이 됐습니다.

일본은 이미 슈퍼패미컴의 시대였지만 국내에는 이때가 8비트 시대의 최전성기였네요.

거기에 패미컴 말기의 명작들도 쏟아져나왔기에.....그렇게 많은 집의 아이들이 팩에 바람을 후후~ 불어가면 즐겁게 게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