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30 12:33
#.시작하기에 앞서, 일단 김의겸은 짜증나는 놈이예요. 그가 속한 조직에 최악의 모양새로 엿을 먹였죠.
하지만 뭐...인간따위에게 뭘 기대하겠어요? 전에 썼듯이, 인간들은 나이가 들면 같잖은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되죠. 자신이 온갖 발버둥을 쳐봐야 이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는 없다는 거...최선을 다해봐야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신세뿐이라는 깨달음 말이죠.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버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인간은 그 깨달음을 실천으로까지 옮기게 돼요. 그러지 않은 사람은 어느쪽일까? 차마 그러질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그럴 기회가 없어서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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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데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겐 김의겸의 행동이 잘 이해가 안 가요. 그야 김의겸이 쓴 글들을 보면 좀 이상한 글도 쓰면서 살아왔지만, 그 정도쯤은 신념이었던 거라고 둘러칠 수도 있고 그럭저럭 가오는 지키며 살았잖아요?
사실 뭔가를 한탕 해먹을 거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기자 생활중에도 해먹을 수 있었을거예요. 하지만 글쎄요?
2.확실하진 않지만 드러난 정보들을 보면, 김의겸은 투자라던가 투기 같은 것과는 별 인연이 없는 삶을 산 것 같아요. 도덕적이어서 라기보단...투자나 투기를 저지르는 역치 자체가 엄청 높은 사람이라서, 김의겸에게 투자에 대한 확신이나 설득력을 가지게 할 만한 기회가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는 돈이 모이면 그냥 저금하고 해서, 맞벌이 부부생활로 9억 가량의 총알을 모아둔 상태였던 것 같아요.
한데 여기서부터가 좀 이상해요. 투자나 투기 같은 것과 무관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 그 나이에 갑자기 풀레버리지를 땡겨서 단 하나의 매물에 올인을 한다? 이런 짓은...이게 옳은 투자든 아니든간에 아무나 저지를 수 있는 짓이 아니잖아요. 안 그러던 인간이 이 정도의 호기를 발휘하는 건 둘 중 하나예요. 미쳤거나, 정말 절대적인 확신이 있거나죠.
9억원에 플러스 알파의 대출...이건 말 그대로 그 부부가 살아오며 하루하루 아껴왔을, 모아왔을 인생 전체를 농축한 정수란 말이예요. 평생 열심히 살아온 한 남자가, 그간 누적해온 결과물을 몽땅 걸고 환갑 가까이의 나이에 처음으로 풀스윙을 감행해본 거란 말이죠. 김의겸이 나쁜 놈이든 아니면 존나 나쁜 놈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어쩌면 그는 그 순간...환갑 가까이의 나이가 될 때까지 평생 구경해본 적 없는, 최고로 만만한 직구가 스트라이크존의 정중앙을 향해 들어오는 걸 봐버린 걸지도요. 남자라면 온 힘을 다해서 혼신의 스윙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직구를...
3.한데 이 정도로 확신에 찬 풀스윙을 해봤자...사실 그가 산 건 25억짜리 병신같은 흑석동 건물일 뿐이란 말이예요. 솔직이 말하면 이 정도 사이즈의 축재는 어지간한 놈이라면 다 저질렀을걸요. 야금야금 저질렀던 몇 번에 걸쳐 저질렀던간에. 그리고 딱히 문제삼아지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위에 김의겸이 존나 나쁜 놈이라고 쓴 건...결국 김의겸이 한 짓거리와 타이밍이 최악이기 때문이예요. 좀 수상한 돈이긴 하지만 훔친 돈은 아닌 돈으로 고작 부동산 하나 사는 행동...이 정도 스케일의 축재는 타이밍에 따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죠. 한데 하필 그가 몸담은 조직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타이밍에 저지른 거예요. 가장 그러면 안되는 타이밍...하이에나들이 가장 좋아할 타이밍에.
4.휴.
5.어쨌든간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정말 이해가 안된다는 거예요. 김의겸 건에 대해 기사에서 자극적으로 쓴 문구들을 보면 '35억' '40억'같은 표현들이 나와요. 그런데 내가 확인한 기사들 중에 40억을 넘는 숫자가 쓰여진 기사는 없어요. 40억이 제일 큰 숫자였어요.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저 투자가 정말 스위트스폿에 작렬하고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골든크로스가 이뤄져도, 저 투자의 한계점...맥시멈은 40억으로 끝난다는 뜻이예요. 아니...기사들이 자극적으로 쓰여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개발이 끝난 뒤에도 절대 40억까지는 안 갈걸요.
저 40억에서 조미료를 좀 빼고 최대한 부풀려서 생각해 봐봤자 결국 김의겸의 손에 떨어지는 건 35억쯤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거저거 뗄거 다 떼고 최상의 조건을 생각해 봐도요.
6.문제는 이거예요. 350억이 아니라고요. 35억이란 말이예요. 현금조차도 아닌 35억 말이죠. 위에는 '인간이 발버둥쳐봐야 바꿀 수 있는 건 제 신세뿐.'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정말 김의겸이 평생 쌓아온 체면과 가오가 그에게 35억밖에 안 된단 말인가? 350억이면 그냥 들켜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질러도 이해하겠는데 35억을 얻기 위해 그걸 다 내던졌어야 했나라는 의문이 들어요. 정말 김의겸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김의겸 자신이었을까?
아니 왜냐면 35억은 어떤 사람의 신세를 좋게 바꿔주는 돈이 아니란 말이예요. 어떤 사람의 신세를 좀 덜 좆같이 바꿔줄 수는 있어도 좋게 바꿔줄 만한 사이즈의 돈이 아니란 말이죠. 특히 그 사람이 무슨 가난뱅이도 아니고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이라면, 본인도 본인의 삶의 질이 그렇게 나아지는 걸 못 느낄걸요. 이미 그럭저럭 괜찮은 삶의 수준을 누릴 거 아니예요? 거기서 '압도적으로 나아진' 수준의 삶을 체험하려면 그보다는 많아야 해요.
하다못해 그가 살 부동산 하나 깔고 캐쉬로 35억을 땡겨주는 조건이면 또 몰라요. 하지만 글쎄요. 저건 절대로 캐쉬 35억이 되기 힘든 사이즈란 말이예요. 전해듣기로는 중대형 아파트 한채(또는 중소형 두채)에 상가 한 칸 받는 조건인 것 같은데, 아파트 한 채는 본인이 깔고 살아야 하고...상가는 그냥 월세 받아먹기 용으로 쓴다고 하면 글쎄요. 그게 평생 쌓아온 나름대로의 가오와 체면과 바꿀 만한 돈이란 말인가? 싶어요.
게다가 김의겸 정도면 나중에 괜찮은 회사의 고위직에도 충분히 갈 수 있을 사람인데...그러면 어찌저찌해서 아파트 한채에 적당한 노후 생활비도 챙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예요.
7.아니 그야 이럴 수도 있겠죠. 저렇게...모든 것을 한 번의 스윙에 담은 풀스윙을 휘두르는 걸 안 들키고 넘어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못된 짓을 저지른 거라면 김의겸은 나와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일 거예요.
왜냐면 나는 그렇거든요. 나쁜 짓을 감행할 때 한번 생각해 봐요. '이 일을 저지르면 들킨다. 모두에게 알려지게 된다. 저지르더라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저지르자.'라고요.
그렇기 때문에...들켰다간 너무나 쪽팔릴 것 같은 나쁜 짓은 절대 안 저질러요. 왜냐면 멀리...아주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오는 하이에나들의 발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결국은 언젠가는 내 앞에 도달해서 나를 물어뜯을 하이에나들...그 하이에나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나는 나쁜 짓은 그만두는 거예요.
하지만 김의겸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걸까요? 아주 멀리서부터...냄새맡고 김의겸을 향해 미친듯이 신나게 뛰어오는 하이에나들의 발자국 소리가 말이예요. 정말 들키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너무나 궁금해요. 정말 김의겸은 그 결정을 내리던 그 순간 김의겸이었을지. 대체 어떤 무언가가, 환갑에 가까운 남자에게 평생동안 안 하던 짓거리를 갑자기 저지르도록 만든 걸까...분노였을까?
8.그러네요. 어쩌면 분노였을지도 모르죠. 그가 쓴...
“이때의 곤궁이란 상대적 박탈감에 가까울 것이다. 난 전셋값 대느라 헉헉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고, 난 애들 학원 하나 보내기도 벅찬데 누구는 자식들을 외국어고니 미국 대학으로 보내고, 똑같이 일하는데도 내 봉급은 누구의 반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삶 등등. 가진 자와 힘있는 자들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낳게 한다”
이 문장만은 독자를 선동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진짜 본인의 생각을 담았던 것 같았거든요. 아니...'생각'이 아니라 '감정'을 담았다고 해야할까요.
2019.03.30 13:38
2019.03.30 14:42
2019.03.30 16:48
"너무 구차한 변명이어서 하지 않으려 했지만 떠나는 마당이니 털어놓고 가겠다"며
"(건물 매입은)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했다.
살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모든 언론에서 크게 다룰만한 사항도 아니고, 그렇게 매도당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기득권들은 견고하고, 내로남불(?)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스스로를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쯤 되지않나 생각하고 하는데,
저에게도 이런일이 생길수 있다고 생각해요...이럴때 누가 나를 공격한다면 끔찍할 것 같아요...다행이 공인은 아니군요.....
2019.03.31 01:09
2019.03.31 01:17
2019.03.31 01:28
35억이라고 쓴 건 허수예요. 기자들이 자극적으로 올려치기한 액수일 뿐이고, 애초에 저 최종 금액 안에는 본인의 자본도 몇억 들어있으니까 그것도 계산에서 제해야죠. 빚도 어마어마하게 땡겼으니 향후 몇년동안 매월 400만원씩을 힘들게 갚아나가야만 하는 상황이고요.
저 공사가 가정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진행되더라도 모든 게 마무리되고 대출금 다 갚고 얼마간의 차액을 건졌을 때는 정말로 환갑이거나 그 이상의 나이일텐데...이런 모든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쌓아온 나름대로의 체면과 명성을 담보로 저지르기엔 너무나 몰지각한 일이 아닐까 해서 써봤어요. 그냥 아저씨도 아니고 큰 잡음 없이 청와대 대변인의 자리까지 올라간 인간인 점을 감안해서요.
본인 입장에서만 봐도, 어쩌면 국회의원도 욕심은 내볼 만한 테크트리였는데 모든게 아작났잖아요. 저 나이면 정치판에서는 나름 팔팔한 나이로 살 수 있지만 부동산 하나 달랑 가지고 산다면 그저 동네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나이니까요. 이해가 되는 결정이 아니라 명성과 체면, 향후의 잠재력을 얼마안되는 돈과 맞바꾼 멍청한 결정이예요.
글 잘 읽었어요. 고견 입니다. 경험 없는 자의 커다란 실수 입니다. 작은 걸 얻고, 나머지 인생의 모든 좋은 기회들을 날려 버렸는데...
또, 세상은 모르는 거니까 나머지도 그냥 저냥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