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앞서, 개봉한지 약 2주 내인데도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영화가 외곽으로 밀려난 신세가 되어 시간과 장소를 맞춰 보기 힘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유명한 작품인데 이렇게 순식간에 한국 영화들에게 밀려 푸대접(?)을 받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대부분 6시 아니면 23시에만 걸려있거나, 멀티 플렉스 중 가장 작은 관에 하루 종일 걸려있거나 하기 태반이었네요. 오늘 뒤늦게 보긴 했습니다만 관의 화면이 너무 작아 안타까움을 이를 방도가 없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다른 많은 명작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제게 잘 익숙치 않은 공간입니다. 흐릿하게 어렸을 때 스타워즈 1의 우주선 경주에 푹 빠졌던 기억이 최초이며, 좀 더 인식이 깨어 있을 때 스타워즈 3를 영화관에서 보며 이런 거대 전투 3개를 교차화면으로 편집하는건 조금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죠. 물렁한 탄환을 발사하여 안드로이드들이 파괴되는 이미지로 상징되는 스타워즈 3는 어릴적 마음에 얄팍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맘 때부터 SF라면 덮어놓고 보는 SF 꿈나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알 수 없는 기계들을 조작하여 거대한 물체를 운용하는 걸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인데 스타워즈 세계의 계기판들은 UI가 고정되어 예전에는 신식으로 보였다 요즘에는 구식으로 보이는건가? 싶더군요) 


어찌 되었든 제 세계에 스타워즈 456은 자리가 따로 없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의 변주로 스타워즈가 출처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당하는 '그' 스포일러(등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채 78을 보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시간의 간격과 간극을 느끼며 같이 늙어가면서 얻어내야 하는 향수와 촌스러움의 범벅이 없는 상태로 과거로부터 왔다는 사전지식만을 가지고 압축적으로 현재에서 쫓아가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근의 리메이크 홍수 속에 과거의 레퍼렌스에 익숙하지 않은 저는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고스트 바스터즈의 논쟁도 그다지 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가며, 과거와 관계없는 오리지널 영화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쪽의 생각을 합니다. 마치 과거로부터 습격을 받는 느낌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두 가지 지점에서 감정이 흔들리더군요. 제 느낌에 이번 스타워즈는 과거의 기억과 비교하면 정말 '전쟁'을 치르는 느낌을 받게 했습니다. 얼굴을 가린 클론이나, 기계 생명체인 드로이드를 부수고 죽이는 것과 인간을 죽이는 것은 느낌이 다릅니다. 12세 이하 관람가에서 어디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초반을 잡는 전투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쟁 참여자의 죽음을 그리더군요. 피아를 가리지 않고 실제의 인간이 폭사한다는 상황(적의 우주선이 폭파할 때도 굳이 폭발하는 상황실의 사람들을 비춥니다)이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더군요. 그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피해왔(다고 생각되)던 그 지점 말이죠. 영화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반란군은 갈수록 그 수가 줄고 줄고 또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팔콘에 전부 실을 수 있는 만큼만 살아남습니다. 꽤나 어두운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대중 영화 속 여성 주연 서사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실세계와 관련없는 우주선과 타행성, 포스와 광선검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작용되는지 언제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SF나 판타지나 호러나 무엇이든.) 이질적인 소품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바로 이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보아지는 영화는 동시대를 투영하는 알레고리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게 됩니다. 과거의 시대를 관통하는 텍스트는 서적에 있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이제는 영화에 있지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간에..


.. 레이가 일종의 여성 서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고전적 영웅 서사에서 여성을 주연으로 삼을 경우 비척이다가 실패하거나, 한국에서 성반전으로 도전했다가 그 나머지 것들이 도저히 그대로 가져다 붙일 수 없는 것들이라 여러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가운데, 스타워즈도 그 고난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없었던 이질적 존재의 영웅 서사를 집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이질적인 존재를 과거와 동일한 서사 속에서 진행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질성을 특성으로 살려서 (모성애만은 제발!) 다른 기승전결로 나아갈 것인가? 의 기로에서 머리를 쥐어뜯게 될 것입니다.


레이가 숨겨진 섬에 도착하고, 루크가 레이에게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껴 물어보는 그 장면, '너는 누구고 여기에 왜 왔지?' '저는 각본가가 시켜서 왔습니다.' '아니, 다시 물어보네, 너는 누구고 여기에 왜 왔지?'가 아무리 들어도 여성 주연 서사 그 자체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성 서사처럼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계보도 없으며, 부모를 알 수 없고, 남성 서사의 전범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할 수 조차 없는 그런 답답함. 여성 영웅 서사로서 존재를 하기 위한 자체로서의 몸부림이 뭔가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알레고리를 생각하는건 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흑인과 동양인은 어떻습니까. 백인 여성에서 백인 여성으로 넘어가는 지휘권 아래에 협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합니다. 순환되는 생태계 바깥에서 자신의 일을 진행하려 노력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괜찮고 어떤 부분에서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선상반란이 이끌어낸 결과는 은폐된 탈출선의 정보를 적에게 제공함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사망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임시 지휘자의 계획대로였다면 순항함은 폭파되고 사람들은 빠져나갔으며 적들은 돌아갔겠죠.)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충실히 서사를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캐릭터의 인종이나 성별에 아예 관계 없이 서사를 볼 수 있다면 좋겠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만. (임시 지휘자가 여성이었던건 의외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 의외라는 느낌 자체가 없어지는 시기가 도래하는걸 기대해봅니다.)


9편에서 패퇴한 반란군의 반격이 있을 것이며, 레이의 성장에 대한 마침표를 찍을 게 기대가 됩니다. 그 서사는 결정된 결말에 도달해야 할 터인데 그 끝을 어떤 식으로 할 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가 궁금해지더군요. 최근의 한국 여성 서사들을 같이 떠올려 보죠. [아가씨], [옥자], [비밀은 없다], [우리들]... 그 서사에서 악은 누구이며 갈등의 개선은 어떻게 되었으며 결말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그리고 잠깐... [족구왕]도.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이 시커먼 세상에 대한 문제의 해소와 갈등의 해결까지 가기 위한 미로 혹은 춤의 경로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를 싹 밀어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할까요? (사실 이 질문은 너무 진부하고 지겹습니다. 특히 일본 서사에 질리도록 반복되거든요. 그런 제안을 하는 존재가 "찌찔이"로 불리는건 좋은 징후가 아닐까요?) 아니면 새로 시작하되 잘 열어보지 않는 서랍에 과거를 은근슬쩍 집어넣고 다녀야 될까요?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의 다양한 변주 중에 무엇이 최선일까요? (아, 9편의 결말이 떠오르는데 레이가 스승이 되는 것도 있겠군요.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다시 중앙화와 교조주의로 돌아가게 되는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 몇몇 시퀸스들을 떠올려 봅니다. 튕겨져나간 레아가 부드럽게 우주에서 우주선으로 복귀하는 장면, 루크를 베며 빨간 색 발자욱을 길게 남기는 렌, 갈등하는 레이, 렌과 레이 사이의 광선검. 새로운 세대가 온다는 건 오래된 세대가 떠난다는 거겠지요.


P.S. 휴, 이제서야 마음 놓고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을 수 있게 되었군요. SNS도 편하게 활보하고. 속이 시원하네요.

P.S.2 당연히 안 될 이야기겠지만, 왜 초광속 중량 탄환을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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