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3 10:57
듀게에 사람이 없긴 없구나... 라고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케이블에서 3월 31일 밤 열 한시에 영웅본색2를 해 주길래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한참 후에야 깨달았네요. 아, 이 분 기일로 인한 편성이구나.
영화는 뭐.
홍콩 영화에 대한 80년대의 열광과 90년대 후반의 냉소를 거쳐 아무 생각도 없어진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보니 기억보다 더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요즘의 관점에서 볼 때 시작부터 끝까지 폭발하는 감정의 과잉이 부담스러울만도 하겠으나 '사실 이건 그 당시에도 그랬지ㅋㅋ' 라며 넘길만 했구요.
초반의 뉴욕 장면들은 사실 드라마가 참 황당하고 쓸 데 없이 요란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것도 정겹더라구요.
당시엔 우와 우와 하며 감탄했던 액션 씬들이 지금보면 그냥 익숙 무난하게 느껴지는 건 영화가 구린 탓이 아니라 오우삼이 이후 액션 영화들에 미친 영향 탓이 크겠구요.
예를 들어 여관에서의 레밍턴 산탄총 액션이라든가.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쌍권총을 난사하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죠.
지금 보니 정말 짧게 짧게 지나가는 연출 들인데 당시엔 그게 왜 그리 뇌리에 크게 박혔었는지. ㅋㅋㅋ
뭣보다도 지금 와서 보니 '아. 이거 그냥 권총 든 무협물이구나' 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위 짤의 선글라스 킬러와의 대결씬도 당시엔 멋지긴 한데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오히려 납득이 되더라구요.
저 킬러가 막판에 악당 보스가 던져주는 돈뭉치를 개똥 보듯이 쳐다 보고는 그냥 방에서 나와 주윤발을 찾아 대치하는 장면인데.
심지어 주윤발의 총알이 떨어지니까 자기 총을 던져 주기까지 하죠.
아무래도 지금 와선 개연성으로 작살나게 욕 먹기 딱 좋은 장면이지만 당시 정서와 무협지 정서를 생각하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ㅋㅋ
덧붙여서 이 3인조가 처음 저택에 침입했을 때 액션 역시...
그냥 총 들고 걸어다니며 두두두두 총 휘두르면 열 명 스무 명씩 죽어 나가는 게 딱 영웅본색 패러디 코미디 영화 삘이었습니다만.
역시 뭐 무협물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그럭저럭... ㅋㅋ
그리고 적룡 아재... 지금 보니 왜 이리 풋풋하고 사람 좋은 겁니까. ㅋㅋㅋ
당시엔 과묵하고 멋진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냥 귀여운 젊은이네요. 제가 늙은 탓이죠
그리고 마지막의 이 장면.
역시 논리적 개연성을 따지면 난감해지겠지만 역시 무협물의 정서로 생각하면 뭐.
그렇게 이 셋은 신화가 되는 거죠.
게다가 죽지도 않았잖아요. 나름 해피엔딩(...)
아 맞다.
장국영 기일 게시물이었죠.
사실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봤을 땐 여성 관객들의 격렬한 호응과는 별개로 그냥 내공 모자란 민폐 캐릭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이 캐릭터도 참 정이 갑니다.
애초에 액션 씬에서도 이 캐릭터는 늘 뭔가 조금씩 모자라고 어설픈데 잘 해보려고 억지로 용 쓰는 느낌을 넣어 뒀더라구요. 흠.
글을 다 적고 보니...
왠지 이런 느낌인데.
뭐 어떻습니까. 사람 없는 게시판에 월급 도둑질하며 적어 올리는 얼치기 소감문인데. ㅋㅋㅋ
끝입니다.
2017.04.03 10:59
2017.04.03 14:13
요즘 와서 장국영 얘기하면 꼭 그렇게 왕가위 영화 + 패왕별희더라구요.
뭐 배우로서 진지하게 평가하자면 그 작품들이 맞겠지만 반짝반짝 아시아의 아이돌 시절이 너무 묻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특히나 한국에선 당연히 장국영하면 영웅본색2 아니겠습니까! ㅋㅋ
2017.04.03 14:19
당연히 영웅본색2+천녀유혼 아니겠습니까! ㅋㅋ
2017.04.03 21:16
2017.04.03 12:51
2017.04.03 14:14
석천 아저씨하면 뭐니뭐니해도 오렌지죠. 눈물의 오렌지 먹방. ㅠㅜ
근데 말씀대로 담 넘기 장면에서 유난히 힘겨워 보이셔서 보다가 웃었습니다. ㅋㅋ
2017.04.03 14:51
어디선가 (아마도 유튜브) 이 영화에서 무한탄창으로 마구 갈기는 것 같지만 세어보면 해당 총기의 장탄수 만큼 총을 쏘고 나면 총을 버리고 바꿔들거나 탄창을 바꾼다고 하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2017.04.04 13:53
1편은 그랬던 것 같은데 2편은 대놓고 무한이었던 것 같아요. 권총 한자루로 22발을 연속으로 쏘는 장면이 있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은 그리 믿을만 한게 못되어서...ㅎㅎㅎ
2017.04.03 14:55
2017.04.03 16:39
2017.04.04 13:55
취권이나 최가박당같은 영화에서 바보로 나온 모습하고 너무 달라서 누가 저사람이 그사람이냐고 물어봤을때 아니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진짜로 같은 사람인줄 몰랐어요ㅎㅎㅎ
2017.04.03 16:42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도 저 시절 홍콩영화들을 보면 있지도 않은 추억이 떠오른단 말이죠. ㅎㅎ
당시 한국에선 드물던 미소년형 외모에다가 영웅본색에서 맡은 역까지 좀 그러;해서 다른 형들과는 인기 차원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때의 홍콩산 장국영 역할을 지금은 한국산 아이돌들이 맡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러고 보니 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이 하얀 스키니 입고 나왔던 것 같네요. ( ")
그런데 저한테 이 분의 매력은 정작 어딘가 음..욕이라 못 쓰겠는데, 많이 순화하자면 찌질미라고 할까 그런 것에 있어요. 맡은 역할들 중에 은근히 찌질미 넘치는 게 많았거든요.
거짓말도 하필 그런 걸 가지고 하느냐고 잠깐 소동도 있었건만 그게 벌써 십 년이 넘었네요.
그때 홍콩에서 친구가 왔길래 '장국영 때문에 거기 난리지?' 했더니 사스 때문에 관심이 별로 없다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 씁쓸했죠.
2017.04.03 18:53
2017.04.04 13:57
전 고딩때 그장면 보고 병원 안가고 뭐하느나고 욕했는데 ㅎㅎㅎ
2017.04.03 21:03
2017.04.04 14:01
장철과 이소룡이 닦아놓은 길이 있으니까 영웅본색 영화들이 성공할 수 있었을 거예요. 무협이라는 세계에서 암묵적으로 약속된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생코미디죠. 요근래에 몇번 재개봉하면서 처음 본 관객들 중에 극장에서 큭큭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던데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해요.
2017.04.04 22:37
오직 80년대에만 가능했던 쌈마이 정서죠. 영화 뿐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뭔가 무거움과 비장한 정서가 바닥에 흐르던 시절이었고 그런 정서에서 저 장면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웠어요. 현실세계에선 터무니없어보이는 자신들만의 윤리와 원칙을 지키며 사는 모습은 존 윅 세계관의 킬러들과 비슷하지만, 지금 관객들이 그 세계관을 킬킬대며 즐기는데 비해 저를 포함해 그 때의 관객들은 정말로 그 세계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달까요? 홍콩 누아르는 시대가 장르 형성에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8~90년대 그 세기말적 퇴폐미 없이는 공감할 수 없는 사이버 펑크도 마찬가지고요.
잘 봤습니다~ㅎ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은 장국영 특집으로 꾸며졌더군요.
소개된 영화는 아비정전,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아비정전은 소규모로 재개봉도 했던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봤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