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감상평을 잘 못 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끔 전에 봤던 영화들을 떠올리려고 썼던 글들을 읽게 되는데,  마음 깊은 곳의 감상에다 두 세 번 물을 탔다는 심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쩔 때는 내용이나 인물 이야기가 아예 빠져있는 경우도 있어서 대체 제 자신이 영상 앞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추측하기 힘들때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감상평을 언젠가 한 번쯤 쓰게 되는걸 기대해봅니다.


저도 드라마에 익숙해지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에서는 다른 짓을 하거나 합니다. 영상을 틀어놓고 책을 펼쳐본다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거나, 딴 생각을 한다거나 하죠. 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영화와 드라마를 꽤 봐온 친구가 영상들을 중간 스킵하고 띄엄띄엄 보거나 배속을 높여서 볼 때 '그렇게 보는건 작품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소리를 하기도 했죠. 적어도 영화에게 정중하려면 정속과 정방향으로 봐야된다는 보수적인 예의관이 제겐 있었어요. 요즘에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아니라면 집중하기 힘든 부분에서는 집중하질 않습니다. 그런 물 같은 부분이 있더군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을 때, 신선함에 높은 평가를 내릴 때가 많더군요. 아마 제가 [라라랜드]에 호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뮤지컬 영화를 처음 봤기 때문일 겁니다. 뮤지컬 영화를 여섯편 이상 보고 [라라랜드]를 봤다면?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죠. '그건 서로 다른 작품이 된다.'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샜군요.


장기 드라마를 볼 때, 얼토당토 않게 이야기를 늘리면 관심이 툭 떨어집니다. 어떤 순간에 억지로 이야기를 늘리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요? 전에는 이럴 때 그런 기분을 느꼈습니다. 드라마에서 사건 여럿을 마구 집어 던지는데, 그저 오직 이야기를 더 길게 하고 싶기 때문에 사건을 마구 던진다고 느껴져서 관심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잠시동안 사실에 기반한 드라마만 봤습니다. 적어도 사실기반 드라마는 거짓으로 사건을 만들어서 집어넣을 수는 없잖아요. 허구이기 때문에 아무거나 만들어서 넣어도 된다는 그런 사고관념이 (드라마 내에 엄격한 내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싫군요.


오렌지 이스 더 뉴 블랙을 [오뉴블]이라고 부르더군요. 시즌 2는 그럭저럭 괜찮았고 시즌 3는 지겨웠습니다. 시즌 4부터 다시 좋아져서 마지막에는 볼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각각의 내용들이 자세히 생각나진 않아요. 시즌 2에서는 비와 레드의 대결이, 시즌 3에서는 시카고 여행과 팬티 판매가, 시즌 4에서는 교도관과 재소자들의 갈등이 기억에 남는군요. (시즌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뭉뚱그려서 생각한다고 봐 주세요) [오뉴블]이 좋은 점 중 하나는 시각효과가 거의 쓰이지 않고 모두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긴 해도) 꿈이나 환상, 비현실적 특수효과 없이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채프먼 - 갈등을 위해 자기 반성을 희생하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불굴의 의지를 지니고 칠전팔기 할 수 있을까요?

도깃 -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이에요. 부가 말했듯 유일하게 발전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후드를 덮은 후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깨진 시계를 찬 엄마 -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데, 사람 참 좋아보여서 좋아합니다. 시즌 4를 마감하는 사건을 위한 희생양이 됩니다.


하하, 저 같은 사람이 혼자 드라마를 본다는건 참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죠. 같이 보는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던가 해야 기억에 남는 사람인데 그렇게 많은 대사 속에 기억에 남는게 거의 없군요. 뭐 이런 대사? '부는 부의 것이야' 같은 것만 남아 있군요. 남자 상담사가 전화를 하는 동안 온갖 망가진 인물군상들이 지나가는 컷이 떠오르긴 합니다만 그건 시즌 4의 마지막 쯔음에 있었던 일이잖아요. 예의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죽게 된 비의 상황도 좋아하긴 합니다. 어떻게 한 인물을 끝장낼 것인가에 대한 교과서적인 짜맞춤 같았어요.


시즌 5가 나오면 보긴 하겠지만 그렇게 기다려지진 않아요. 이미 충분히 끝맺음한 느낌이니까요. 짠한 친구들 같으니. (범죄자들이 주인공인 이상, 선한 자로서 감정이입에 거리를 두게 되는데 그게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관객들이 인물 편을 들도록 하고 싶을 때 흠없는 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유혹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대부분의 재소자들이 불가피하게 갖히게 된 것처럼 그려지는건 좀 아쉽죠. 미화 말이에요.) 역시 감상으로서 아쉬운 글이 되고 말았지만 이쯤 써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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