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8 12:46
http://comic.naver.com/challenge/detail.nhn?titleId=688644&no=9
이번에는 소크라테스 이야기입니다. 저중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 다시 짚어 보셔도 좋을 듯.
아래는 일종의 각주?로 부수적인 설명입니다.
----------
1. 델포이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 외에도) ‘도를 넘지 말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2. 파르테논 신전은 원래 총천연색으로 알록달록했다고 하지요.
3.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라고 실제로 말한 사람은 로마 법학자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라고 합니다.
2002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의 구절을 수정 권고한 후 삭제되었고,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준법의 사례로 인용되다가 2004년 헌재의 수정요청에 따라 삭제되었다고 하네요.
(-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교과서에까지 등장한 것은 당시 군부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 소크라테스는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니라) 실질적 법치주의의 옹호자였다며 권창은, 강정인 교수가 저 말을 반박한 논문도 있습니다.
4. 아고라 광장에는 책상을 놓고 앉아서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짧은 연설 써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한시간 동안 발언해야 했기 때문에 미리 외워서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5. 소피스트는 너무나 다양했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로 묶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유물론적 관점을 가졌고 소크라테스와도 친했던 아낙사고라스(나중에 불경죄로 추방됨) 등도 있었으니까요.
다만 절대론적 관점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소크라테스와 비교해 볼 때 대체적으로 저런 성향이었다는 겁니다.
6. 당시 그리스의 연극은 효과적인 사회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신화와 전설,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에다 오락까지 곁들인 전방위적인 미디어였죠.
7. 30인의 위원(‘참주’로 번역된 곳도 있음) 중 우두머리 격이었던 크리티아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지만
다른 제자에게 찝적거리다가 소크라테스로부터 “돼지 발정난 거 같다”는 말을 듣고 사이가 나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과두정이 더 계속되었다면 소크라테스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거란 얘기도 있어요.
8. 다른 사람이 남긴 기록이나 책들을 보고 있으면, 플라톤이 향연에서 묘사했던 알키비아데스의 모습은
역시나 글쓴이의 질투가 어느 정도 섞여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9. 자료책 중에 델로스 동맹기금이 ‘조공’으로 번역되어 괴롭더군요. 제 머릿속의 조공은 조선이 중국에 보내던 그 동양식 조공...orz
(그런데 친구는 연예인에게 바치는 조공이 먼저 떠오른다고...;) 동양식 조공은 실질적으론 ‘무역’의 개념에 더 가까웠죠.
중국에서 체면치레하느라 하사품을 더 비싼 걸로 줘야 했기 때문에 그만 좀 보내라고 짜증냈던. (조선이 유용하게 써 먹음.)
2017.02.28 20:28
2017.03.01 11:45
저도 사상사나 철학사는 젬병...이라서 남들이 쉽게 정리해 놓은 책을 보며 이해하는 편이랍니다:) (남이 풀어서 써 준 책 몹시 좋아함) 그리고 2부는 바로 뒤에...;ㅅ; (연결되어 있어도 바로 표시를 해 두지 않으면 못 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고 갑니다.)
2017.03.01 23:12
방금 보고 왔습니다. 사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들 삼인방이 실은 유럽 파시즘의 사상적 원조라고 지적하는 독일 학자들의 책을 소싯적에 읽고 충격을 좀 받았던 터라(그 만큼 나치즘이 현대 유럽인들에게 남긴 상처가 크다는 얘기겠죠.) 이 사람들에 대한 글을 접할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심난하기 짝이없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또 사상사에는 젬병이라 이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 엄두도 안나고...여튼 좀 떨떠름한 기분입니다.
2017.03.02 12:29
제가 알기론 소크라테스가 절대론을 주장하면서 이후 학파에서 대세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중세의 절대신 개념도 따지고 보면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절대론의 부작용으로 상대적인 다른 가치들을 모두 말살해 버리고 하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나오는데,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나치즘으로도 연결이 될 수 있겠죠ㅇㅇ 소크라테스와 엮여서 한동안 욕만 디립다 먹었던 상대론자인 소피스트들이 현대에 들어와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제 경우엔 소크라테스 자신이 주장했던 가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서 소크라테스를 접할 때 별 생각이 없긴 합니다. 일단 소크라테스 자신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회의하던 사람이라 이후 번져나간 절대론은 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었다는 느낌도 있거든요. (실제로 무신론에 가까운 발언도 하면서도 이 신 저 신 다 제사 지내고 돌아다니던 양반임)
2017.02.28 20:54
2017.03.01 11:48
부지런한 개미를 뽑아놔도 모아놓으면 그 안에서 또 게으른 개미가 생기고 그 안에서 또 부지런한 놈만 골라놨더니 또 노는 개미가 생기더라는 연구결과를 보면, 사실 어떻게 뽑든 결과는 마찬가지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죠. 박근혜도 트럼프도 모두 선거로 당선된 사람이고.
2017.03.01 22:49
Socrates Tears Alcibiades from the Embrace of Sensual Pleasure, Jean Baptist Regnault, Oil on canvas, 1791, H. 46 cm, W. 68 cm, Louvre Museum
소크라테스가 그의 제자 알키비아데스를 교육하는라 고생을 많이 했는지 관련 그림들이 많네요. 알키비아데스는 무슨 옴므파탈같은 이미지라...이 양반 행적은 진짜 무슨 남자들 망치는 요부같음(이런 표현 써도 되나 싶지만...-_-;;) 물론 본인도 남자이지만요. 왜 이리 인생 자체가 분란이 많은지 잘 이해가 안갈 정도군요. 애초에 근본이 민주주의나 안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던지도.
2017.03.02 12:38
아니 어디서 또 이런 그림을...(눈물) 알키비아데스는 옴므파탈이 맞습니다. 아테네 최고의 꽃미남이자 방탕아...ㅇㅇ 스파르타로 도망가서 왕비도 꼬셔서 임신시키고 바로 날랐던 남자... 적국 페르시아에서도 자기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길 정도로 매력을 마구 흩뿌리고 다녔죠. 그와 조금만 이야기해 보면 누구나 반했다고 합니다. 말발도 대단했고요. 어릴 때는 남자를 후리고 나이들어서는 여자를 후리고 다녔다고 하네요. 그의 일대기를 늘어놓고 보면 참 그렇지만...; 그는 소크라테스와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성격이자 외모이며 당시 아테네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었던 대세남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의 연인관계로 사실 더 유명하지만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보면 알키비아데스 찾냐고 먼저 물어봤다고 해요.)
2017.03.01 22:50
The Education Of Alciabides By Socrates
문득 공자가 제자들이 학문을 게을리한다면서 한탄했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논어에 나오는 얘깁니다.) 너희들이 여인들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학문에 힘을 쓴다면....원래 그 나이 때 남자들은 여자에 관심 많은게 당연한 건데...(물론 여자도 그렇구요^^)
2017.03.02 12:45
당시 아테네는 남-남 관계를 지향했고 일반적으로 남자 나이 40세 즈음에 20세가 안 되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해요ㅇㅇ (당시 기준으로 20-30대가 청년, 40대는 중년)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40대 접어들어 20대인 크산티페와 결혼한 건 늦장가가 아니고 사실은 일반적인 경우였다는 얘기.
2017.03.01 22:53
Jean-Léon Gérôme: Socrates seeking Alcibiades in the House of Aspasia (1861)
반가운 이름 하나 나오네요. 아스파시아! 신일숙의 만화 <아르미안의 네딸들>의 주인공들 중의 하나죠. 그녀의 운명의 상대는 바로 페리클레스! (파르테논 신전 건립의 그 양반 맞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어렸을 적에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전사하는 바람에 외가 친척 어른이었던 페리클레스에게 맡겨져 자랐었는데 그때 인연으로 아스파시아를 만나기도 했었을 겁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아스파시아는 숙모님뻘인데...) 아스파시아는 소크라테스와도 친하게 지냈고 페리클레스의 연인이기도 했고...
2017.03.01 23:39
2017.03.02 12:49
저도 아스파시아를 통해 페리클레스를 처음 알았더랬죠;ㅅ; 실상은 아스파시아가 페리클레스가 했던 정책들을 제안한 막후실세였다는 의견도 있어요.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문을 직접 써주었다거나 (아스파시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플라톤조차) 소크라테스가 그녀에게 수사학을 배웠다는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 기억력 대결에서 그녀가 이겼다는 얘기도? -, 그녀는 정말 대단한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인이라 더 천대받았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행동에 좀 더 자유로웠을 거라고도 하지요:)
2017.03.01 22:54
2017.03.02 12:56
당시 아테네에서 미모는 절대적인 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말할 땐 안 듣다가 그의 잘생긴 제자가 아고라에서 소크라테스 잘났다!라고 외쳐주니 그제서야 주목해 주었다는 뒷얘기도...(눈물) 온갖 방탕아같은 짓은 다 저지르고 다녔는데도 - 심지어 스파르타로 망명하기까지! - 알키비아데스가 아테네에서 인기있었던 이유는 역시 그의 미모가 일등공신이었죠.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그렇게 노력했다고 하는데... 잔소리 귀찮다고 휙 날아가 버린 너란 남자...ㄱ-;; 여튼 그는 죽음까지 참 드라마틱했어요. (그림처럼 그때도 새 애인을 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2017.03.02 16:47
덕분에 구글 신께 검색을 요청하여 알키비아데스 관련 작품들 섭렵 좀 했습니다. 예상대로 19세기 아카데미 회화들 쏟아지더군요. 이 시절 신고전주의 미술들은 진짜 화려하고 인간의 성적 매력에 진짜 탐닉한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고전과 역사를 핑게 삼아 진짜 방탕한 미술 작품들 쏟아냈다는 생각이...뭐 저야 개인적으로 좋긴 합니다만....(이슬람 하렘을 다룬 작품들은 진짜 짜증만 나고....왠 여자들이 그렇게 벌거벗고 뒹구는지...-_-;; 고대 그리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멋진 남자들이 다 벗고 나와서 보는 즐거움이 있긴 한데 참 누가 볼까 민망...)
19세기에 왜 이렇게 퇴폐적인 미술들이 '도덕'과 '역사'와 '덕성'이라는 이름하에 유행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제국주의와 뭔가 통하는게 있나...이러다가 인상주의의 등장으로 신고전주의는 한 때 위기를 맞지만 나치가 전유럽을 휩쓸던 시절에 또 한번 흥행하죠. 제국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나치즘까지...진짜 병적인데가 있어요. 신고전주의 사조 말입니다.
2017.03.02 18:00
뭐, 신고전주의 자체가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거니까요ㅇㅇ; 제국주의나 덕성 그런 거 사실 다 관계없다고 생각해요. 퇴폐적인 작품이 유행한 이유는 그냥 그게 아름답고 꼴리니까, 였을 것 같습니다. 당시 화가 대부분이 남자였는데, 남자가 느끼는 절대미학이 (시각적으로) 성과 육체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랄까. (좀 안 좋은 쪽으로 나가자면 이번에 물의를 빚었던 그 '더러운 잠'도 떠오르고...ㄱ-;;;)
그냥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은 성에 탐닉했고 그걸 예술이란 이름 하에 승화시켰는데, 차이라면 당시 그런 것이 밖으로 공인되는 분위기인가 아닌가 정도였을 것 같아요. 역사나 도덕이나 덕성은 그냥 나중에 학술적으로 붙여진 명분인 것 같습니다.
2017.03.02 19:14
2017.03.02 20:28
저도 대화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저도 평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요. 평소 올리시는 글들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잘 아는 쪽이 아니어서 끼어들진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