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2016.03.16 02:08

여은성 조회 수:722


 1.친구가 없다는 건 나쁜거예요. 나쁜 점이 한 10가지쯤은 되죠. 하지만 딱 한가지는 좋아요. 누구에게도 잘보일 필요가 없다는 거죠. 어차피 친구가 없는 인생이라면 저 한가지의 장점만은 어떻게든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어요. 


 이러다가 아마 늙고 돈도 떨어지면 as good as It Gets의 잭니콜슨처럼 되겠죠. 아마 그보다 더 날카롭고 짜증나는 버전이 될 거예요. 영화처럼 유쾌할 순 없으니까요.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근처를 빙빙 맴돌며 그들을 도발해대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겠죠. 결국 못 참고 그들이 도끼질을 하거나 총질을 할 때까지 그걸 멈추지 않을거예요.


 뭐 이건 먼 미래의 최악의 버전이예요. 저런 미래를 피하려면 가난뱅이가 되지 않거나 겁쟁이가 되지 말아야겠죠. 가난뱅이가 아니라면 굳이 남을 도발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고 겁쟁이가 아니라면 애초에 늙은이가 될 때까지 살지를 않을테니까요.



 2.어렸을 때 스케이트보드를 탔었어요.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중에 가장 마이너한 레저였죠. 앞의 두 개는 대중적인데다 이동수단으로도 써먹을 수 있는데 굳이 스케이트보드를 고른 이유는 아무도 안 하기 때문이었어요. 


 어쨌든 스케이트보드를 하나 구했는데...아무도 안 하는 만큼 누구에게 배울 수도 없었죠. 인터넷이 있던 때도 아니고요. 그래서 스케이트보드를 연습하면서도 이게 제대로 타고 있는 건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요.


 다른 레저와 달리 스케이트보드는 '도로빨'을 엄청 많이 타요. 물론 그 당시엔 그것도 느끼지 못하며 연습했지만, 어쨌든 우둘투둘한 도로에서 주행 연습을 했죠. 스케이트보드는 매끄러운 바닥에서만 간신히 주행용으로 굴릴 수 있는 물건인데 당시의 동네는 우둘투둘한 돌바닥이거나 흙바닥이었어요. 흙바닥이 나타나면 툴툴거리며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걸어가야 했죠.


 그러던 어느날...kbs에서인가? 플라이라는 외화를 방영해 주던 날이었어요.


 당시에는 정말 유희거리가 없었어요. 기껏해야 몇 권 가지고 있던 동화책이나 소설책을 읽고 읽고 또 읽는 게 오락거리였죠. 그래서 공중파에서 더빙 외화를 방영해 주는 건 너무 귀중한 이벤트였죠. 그게 플라이1이었는지 2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플라이를 보는데 밖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풍겨왔어요. 대체 뭘까 하면서도 냄새가 너무 심해서 창문을 열어보진 못하고 그냥 잤어요.



 3.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 보니 동네에 아스팔트가 쫙 깔려있었어요. 거칠고 우둘투둘한 돌바닥 대신 매끄러운 아스팔트가요. 동네 사람들은 고작 이걸 하려고 어젯밤에 그 난리를 친건가 했겠지만 나는 너무 좋았어요. 매끄러운 바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었으니까요.


 일본 스포츠 만화를 보면 꼭 이런 장면이 나오잖아요. 일부러 싸구려 장비를 가지고 연습한다거나 한 손이나 한 발을 묶어놓고 수련을 한다거나 하는 짓거리요. 그러다가 봉인해제를 하고 제대로 플레이하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뭐 그런 거 말이죠.


 아스팔트에서 스케이트보드가 쭈욱 미끄러질 때 너무 좋았던 기분을 기억해요. 아마 처음부터 매끄러운 아스팔트 도로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탔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기분이었겠죠.



 4.휴.



 5.위에 쓴 이야기는 왜 썼는지 모르겠네요. 이제는 절대로 새로운 걸 배우거나 하지는 않을거예요. 게임도 안하고 소설책도 안 읽고 영화도 거의 안 봐요. 의욕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거든요.


 가끔, 어떤 영화를 마치 본 것 같이 얘기하거나 쓰거나 하는데...솔직이 말하면 사실 안 본 거예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 떠드는 걸 들으면 영화를 본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꼭 영화만이 아니라 모든 게 그래요. 진짜로 어딜 가거나 뭘 보거나 하지는 않고 다른 사람이 갔거나 봤거나 한 것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거죠.


 

 6.이렇게 파편화되어가는 것도 뭐 나쁘진 않아요. 캐릭터 이야기를 해 보죠. 예전에 그렸던 만화의 2종류의 캐릭터예요.


 한 녀석은 미래사회에서 살아가는 전업투자가예요. 파편화된 녀석이죠. 이 녀석은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보다 최대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살아가요. 제법 괜찮은 곳에서 제법 괜찮은 식사를 하고 제법 괜찮은 소일거리들을 누리지만 그게 다예요. 어쩌다 가끔 예상외의 수익이 나면 그 상승분을 잘라서 하룻밤만에 다 뿌려 버리는 게 인생의 유일한 의외성이예요. 그냥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완만히 죽어가는 거죠. 녀석도 가끔...잠이 안 오는 날 밤엔 이국의 거리, 이국의 풍경이 찍힌 사진을 바라보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엔 공항으로 떠나는 대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거죠.


 한 녀석은 예전에 언급한 재수없는 녀석이예요. 최종보스에게 따라잡혀서 살해당한다는 녀석이요. 어쨌든 이 녀석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걸 낙으로 삼아요. 늘 어딘가로 가고 있기 때문에 한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지만요. 이 재수없는 녀석은, 같은 사람을 두 번 만나면 자신이 재수없는 놈이라는 걸 들켜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거든요.


 흠.


 사실 위의 두 녀석의 성질은 똑같아요. 전업투자가 녀석은 한정된 자원을 굴리기 때문에 저렇게 사는 거고 재수없는 녀석은 자원이 무한하기 때문에 저러고 사는 거죠. 전업투자가 녀석의 주식이 어느날 폭등한다면...더이상 주식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폭등한다면, 전업투자가 녀석도 재수없는 녀석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며 돈과 친절을 뿌리고 다닐거예요.



 7.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엄청나게 잘 지낼 수 있을거예요. 예쁜 옷을 입혀서 좋은 곳에 데려가 맛있는 걸 먹여주는 날들을 보내겠죠. 그러나 본질은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와 똑같을 거예요. 자신의 바비인형에게 예쁜 드레스를 사서 입히는 것과 자신의 바비인형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는 것. 결국 내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인형 취급을 한다는 점에서 같은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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