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2 21:27
현재 읽고 있어서 오역이 있을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약간 혼란스럽고.. 머리 아파서요.
회사에서 일을 적당히 하고 적당히 놀아야 일자리 고용창출이 된다고 하시더군요(다상담에서요)
.
내가 자본주의의 노예였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현실이 녹록하지 않거든요
돈을 벌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데요.
저는 경제적으로,,, 하층민에 해당되거든요
독서 광이 되려고 노력중이에요 하층민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에요
실적제 금융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서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도태가 되서 살아남지를 못해요.
늘 관리자에게 쪼여대거든요 그래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요.
자본주의의 노예..그것도 남들보다 일을 열심히 하면 ..미친 노예라고 하더라구요(다상담이라는 책에서요).
그럼 나는 인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미친 노예소리를 들어가며 살아야 하는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니 오늘 일이 너무 하기 싫었어요.(저도 인문학이나 철학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오늘 회사에서 이 자본주의의 노예라는 단어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어요
혼란스러워서 일이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원래 다른 일이 하고 싶은데 이 직장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싫어졌어요 /
하지만 다시 돈을 벌어서 부모님과 어려운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거든요.....
어찌해야 맘을 다잡을 수 있을까요?
심적으로 조금은 혼란스럽고요,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 스트레스를 참아내며 버티어 내고 있는데요
경제적으로 하층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꿈으로 살아가는데 아무리 돈을 위해 살아도
자본주의의 노예소리라는 말은 듣기 싫으네요.
어떻게 맘을 다잡아서 다시 열심히 일을 해서 살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심적으로 어떤 장애물이 생겨난 느낌이에요 약간 답답하고 먹먹하네요.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어떤 것으로, 어떤 마음으로 붙잡을 수 있을지 약간 고민되네요
정말 노예로 사는데 숨막혀요…도망가고 싶어요..
조금만 덧붙일게요)
다상담이라는 책은 세 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사람들의 사랑 직장문제 정치 자본주의 죽음 인간관계 등 다양한 실제적인 고민에 대해서, 털어놓고
강신주님께서 답을 한 내용을 녹취록으로 만들어진 책이에요.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서 수정을 하신 부분도 있다고 알고있구요.
지금도 읽고 있어요 제가 읽는 중에 혼란스럽고 정리가 되질 않아서 고민을 토로한 글이니 만큼
단 하나의 게시글로 인해서 강신주님에 대해서 오해가 생기기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무리수가 염려되는 글이라면 죄송하네요 .저는 다상담이라는 책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도움도 받고 있습니다.
저보다 좀 더 똑똑하시고 현명하신 분들께 조금 충고를 듣고 싶다는 마음에,
생각이 멈춰진 시점에 올린 게시글입니다.
2014.03.12 21:29
2014.03.12 21:43
2014.03.12 21:50
세이노로 검색해서 칼럼 몇 개 읽어보시면 위로가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014.03.12 22:04
어떤 분인지 잘 모르지만, 잘나가서 남보다 더 열심히 강연 다니고 책쓰고 하실텐데
다상담을 쓴 글쓴이도 자본주의의 미친 노예일까요.
2014.03.12 22:06
2014.03.12 22:11
2014.03.12 22:16
맥락이 돈에 미쳐서 노예라는 내용인지요. 강신주라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돈에 미쳐서 노예가 아니라 남의 주머니 채워주느라 노력해서 노예라는 맥락인 듯한데요.
2014.03.12 22:28
아마그럴지도요.제가 저책을 읽고 도움을 받는 부분도 많이 있거든요.사람들이 고민을 토로하면 그것에 대해 답변을 하시는식으로 책이 꾸며져 있어요. 그런데 노예라는 말,고민스럽고 의미가 궁금해서 올린글인데요 저는 강신주씨를 싫어하지는 않아요..근데 약간 강한톤의 리플이 달려서 글을 지우기도 그렇고 그냥 고민이 되어서 답을 찾기위해 올린글이었어요.저로인해 강신주님의 대해서 괜한 오해가 생길까봐 걱정입니다 제가 오역을 했을수도 있어요..여러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도움되는 좋은책이에요..
2014.03.12 23:34
2014.03.13 00:02
2014.03.13 00:26
철학적 담론에서 노예라는 개념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더니... 큰고양이님이 이미 쓰셨군요.
강신주교수 강의의 어법이 좀 모진 경향이 있어서 처음 접할 때 저도 거부감이 들긴했습니다만...
찾아보니 인문학적 베이스에서 심도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강의가 훨씬 더 많더군요.
하지만 위에 몇몇분의 의견은 불필요하게 문제점 만을 도드라지게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어보이네요.
아차피 강신주의 주장도 결국은 자신이 떠드는 얘기도 모두 무시하라는 거니까
님도 강신주를 뛰어넘어서 자기 걸 찾으세요^^
2014.03.13 00:38
강신주의 책에 대한 평가나 언급은 굳이 그만두고요. 하층민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독서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가 궁금하네요. 경제적 하층민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면 그것은 결코 독서로는 해결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고, 정서적 충족을 위한 독서라면 강신주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책을 읽으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아무튼 여러모로 안타깝네요.
2014.03.13 01:30
저도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어떻게 독서가 하층민을 벗어나는 방법이 되는건지 모르겠네요. ^^;; 하층민의 의미가 서로 다른가요? 많은 소설가들이 하층민인 시대에...
2014.03.13 01:32
"그럼 나는 인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미친 노예소리를 들어가며 살아야 하는것인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가끔 저렇게 탁상공론만 하면서 세상사에 대해, 인생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하는 종자들을 배출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고요.
인문학 종사자들에게 강신주가 요즘 생산하는 담론이 학자의 담론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아니라고 할 겁니다.
학위가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다 유의미하고 권위가 있는 건 아니죠. (철학 박사가 박정희를 찬양하기도 하고 물리학 박사가 지적설계론을 설파하기도 하며 성희롱을 저질러서 해임되는 데는 전공이 따로 없잖아요.)
박사논문을 쓸때는 똑바로 썼겠지만 지금 저 작자가 하고 다니는 것은 학자/연구자의 직업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학자는 지식을 다루는 사람이지 남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하고 남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현자가 아닙니다.
현자를 자처하는 순간 학자가 아닌 것이고요.
한 마디로 쓰레기가 하는 말이니 신경쓰지 마세요.
2014.03.13 05:42
글쎄요. 졸지에 글쓴 분은 쓰레기를 읽고 감동을 받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도 학생이지만, 사람들과 괴리된 채 미시적인 것에만 몰두하는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계속 질문하게 됩니다. 학교에 틀어박혀 동료들만 읽을 글만 쓰는 사람과 강신주를 비교해서, 후자가 쓰레기라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입시를 막 끝낸 어린 나이에 사회의 속물성에 질렸을 때, 도덕이나 삶의 원칙 등에 혼란을 느꼈을 때, 제게 나름 생각의 길잡이가 되어준 것은 DBpia에서 돈 내고 읽을 수 있는 학술 논문들이 아니라 젊은 인문학자들이 쉽게 쓴 접근성 높은 대중서였습니다. 깊이를 따진다면야 얕기 짝이 없지만 나름의 길잡이가 되어주었고, 더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물론 저야 4년제 대학을 다녔고 인문학부를 다녔으니 그 외에도 다른 다양한 계기들이 있었지만, 그럴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니체는커녕 입문서 저자인 힐쉬베르거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강신주의 책이 나름 사유와 공부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위 글에서도 그런 흔적들이 보이는데요.
최근에 공부하는 다른 친구가, 주변의 직장인 친구들이 삶에 대해 회의를 많이 느끼고 방황하는 것, 그리고 없는 시간을 쪼개 강신주나 기타 인문학 강연들에 찾아갈 정도로 큰 관심을 가지는 걸 보면서, 대체 그 친구들이 갈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궁금해 하더군요. 단순히 교양에 대한 속물적 갈망 이상의 것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도 궁금하고, 어쨌든 나라에서 연구비네 뭐네 같은 학교 공간에 있는 청소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인문학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뭔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런 욕구들과 갈급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말 그냥 자기 연구만 하면 그만인 걸까요? 물론 베버가 말하는 학자처럼 조용히 자기 할 일에 성심을 다 하는 학자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 가운데 대중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을 사람도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널리 읽히지 않는 지식이, 깊이만 더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글 쓴 분로 하여금 이렇게 자기 삶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의 세계에 나름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강신주 책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저는 강신주를 제대로 본 적도 없고 그이의 거친 레토릭을 아마 싫어할 것이 빤하지만, 제 호오랑 무관하게 그 사람이 최소한 우리 사회의 긴급하고 중요한 요구들에 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최소한, 학계에서 정말 전문적인 것만 파는 사람들, 그러면서 실상 자기 몫 찾기에 바쁜 교수/교수워너비들이 딱히 더 대단히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무튼 소통을 시도하는 학자들이 소수이니, 대중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강신주에게 몰리는 것일지도요.
물론 글 쓴 분 같은 사람들, 그리고 저 같은 사람들이 동굴 속 수인처럼 괜한 정신적 괴로움과 죄책감만 겪고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건, 나라에서 푼돈이나마 연구비 받는 인문학자들을 포함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고민할 일이겠죠. 문제는 이 대목인 것 같습니다. 깨달음이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죠. 그러니 좌절감만 증폭이 되는 것이고.
2014.03.13 05:49
2014.03.13 08:25
2014.03.13 09:08
2014.03.13 20:14
강신주가 인세 얼마나 받느냐로 출판사와 툭탁거렸을거라는데 550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