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81학번입니다. 90년대 말까지 몇몇 지인을 먼저 보냈고 이번 정권 때는 존경하던 선배들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젊은 시기에 나름 공헌했다고 생각하는 87체계는 드디어 무너지고 다시 파시즘의 도래를 목도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읍니다. 말 그대로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나의 젊은 시대는 이렇게 부정되었고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참담함 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 미안함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우리 세대의 어설픔이 이런 비극을 불러 들였습니다. 우리 세대는 결국 우리 보다 젊은 세대나 우리보다 늙은 세대 모두를 인질로 잡고 이런 아수라 지옥도를 만들었습니다.

 

2. 지난 가을에 처음으로 일본에 갔습니다. 돌아와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공각기동대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에반게리온과 함께 본 유일한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는 공각기동대에서 우려하던 미래의 일본 모습이 지금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바나 공각기동대들은 이제는 '운동'이 사라진 세상에서 퇴출된 운동권 선배들이 안간힘을 다해 세상과 미래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느껴졌었습니다.

 

   집에 있는 iptv로 본 공각 기동대 1편 '웃는 남자'의 도입부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 체제에 정의란게 남아 있는가?(범죄자)
   - 세상에 불만이 있다면 너 스스로를 바꾸라. 그것이 싫으면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닫고 고독하게 살아라. 그것도 싫으면..(여주인공)

 

   저기 생략된 말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답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3. 개인적으로는 다음 시대에 펼쳐질 파시즘에 대한 우려는 대략 3가지 정도입니다. 파쇼로 표현되는 공안통치식 파시즘,신자유주의의 외피를 쓴 파시즘,그리고 주주파시즘 혹은 ceo 파시즘. 저는 그런 이유로 이번에 5번 후보를 찍었습니다. 물론 제 주변에 있는 모든 분들에겐 2번을 권했지요(심지어 저 때문에 처음으로 2번을 찍은 7-80대 경상도 어르신도 세분입니다) 그분들에게 제가 5번을 찍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보험든다고요. 좀더 유식한 용어로는 hedge한다고 했지요.

 

   이번에 김순자 캠에서 이런 이야기 나왔던 걸 기억합니다.우리는 20대에서 0%를 받더라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라구요. 어떤 트위터에선 '파시즘에 끝까지 저항할 5%의 지지자만 있더라도' 라는 글도 보았구요. 저는 우리 사회에서 비록 보험일지라도 그런 상황이 오게 노력할 겁니다. 다시 시작하는 거죠 머. Show must go on and life goes on.

 

4. 분노와 증오를 구별하기

 

   혹시 "미제의 각을 뜨자" 라는 북한의 구호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분노의 언어와 증오의 언어는 다릅니다. 정치적 언어라는 측면에서 대개 분노는 개혁 혹은 혁명의 계기로 작동하였으나 증오는 반드시 좌우를 막론하고 독재(전체주의, 파시즘)로 귀결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수구'는 분노의 언어지만 '꼴통'은 증오의 언어입니다. '좌익'은 분노의 언어지만 '좀비'는 증오의 언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빠'나 '까' 또한 호명되는 집단이 그 표현들을 스스로 긍정하지 않는 한, 증오의 범주에 속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이런 표현을 즐겨 쓰는 사람은 적어도 인격적으로는 의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골이 깊어지면서 증오의 언어들이 정당한 분노를 넘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증오에 기반한 대중 독재)이 도래할 위험성을 요 몇년간 확연히 느끼고 있구요. 바라건대 이번 선거가 어떻게 끝나든 이런 증오의 언어가 횡횡하는 꼴을 적어도 듀게에서는 안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특히 듀게에 암약(?)하고 있는 진보 좌파 여러분!! 진보의 언어는 분노이지 증오가 아닙니다. 아니요, 분노를 넘어서 어떤 슬픔입니다. 행여 좋은 세상이 오더라도 즐기는 것이 아니고 기뻐할 따름인 것입니다. 김순자 선본의 위 말에 있는 어떤 정신을 잊으면 진보가 아닙니다. 진보의 언어는 '분노하고 저항하고 연대하라. 그리고 좀더 낮은 곳으로' 라고 생각합니다.

 

5. 우리 스스로를 위로합시다. 그리고 다시 이 시대의 증인이 됩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580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517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5609
127118 바낭 - 어느 망가진 현실의 복원 불가능성, 인친에게 하소연해도 무소용이란(우리 소통해요..?) new 상수 2024.08.31 30
127117 잡담 - 넷플 신작 한국영화 무도실무관, 르세라핌 신곡, 밈천재 또 오해원 new 상수 2024.08.31 50
127116 [디즈니플러스] 톰 크루즈와 엘리자베스 슈가 예쁩니다. '칵테일' 잡담 [2] update 로이배티 2024.08.30 152
127115 프레임드 #903 [4] Lunagazer 2024.08.30 41
127114 [KBS1 독립영화관] 두 사람을 위한 식탁 [OCN Movies] 거미집 underground 2024.08.30 74
127113 듀나님 신작 [2023년생] 출간 및 [1999년생] 관련 이벤트 [2] eltee 2024.08.30 145
127112 '악마의 씨' 프리퀄 '아파트먼트 7A' [4] LadyBird 2024.08.30 214
127111 (스포) [존 오브 인터레스트] 보고 왔습니다 [9] update Sonny 2024.08.30 259
127110 최소한의 인간관계에 대해 [4] catgotmy 2024.08.30 262
127109 투자 잡담...(워렌버핏) 여은성 2024.08.30 114
127108 [넷플릭스바낭] 비글로우는 요즘 뭐하나요. '허트 로커'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4.08.30 280
127107 롯데 한화는 지금도 경기 중 [3] daviddain 2024.08.29 98
127106 에밀과 탐정 읽는데 10분 [6] 김전일 2024.08.29 158
127105 프레임드 #902 [3] Lunagazer 2024.08.29 61
127104 오타니 강아지 시구 [2] daviddain 2024.08.29 243
127103 불교, 열반, 디아나에 대해 catgotmy 2024.08.29 91
127102 [디즈니플러스] 1993년작 원조 '호커스 포커스'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4.08.29 209
127101 (스포) [에일리언 로물루스] 보고 왔습니다 [9] Sonny 2024.08.28 388
127100 프레임드 #901 [4] Lunagazer 2024.08.28 73
127099 [OCN 영화] 파벨만스 [1] underground 2024.08.28 17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