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몰카 사건과 매개변수

2018.05.21 23:26

겨자 조회 수:3043

1. 저번에 이 게시판에서 nabull님이 홍대 몰카 사건은 “1.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고발에 임하고 2.촬영이 이뤄진 곳에서 용의자를 특정하기 매우 쉽고 3. 미대 수업중에, 남성이 입은 몰카 피해라는 특이성이 언론을 잘 탔기 때문"에 범인이 빨리 검거되었다고 하셨죠. 저는 설마 이런 생각이 진심은 아니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꽤 많은 남자분들이 이렇게 사건을 보시더군요. 그래서 약간 보론을 쓸 필요를 느꼈습니다. 제 생각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네요. 제가 예전에 이 게시판에서 여성할당제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까지 다르다면 여성할당제를 꼭 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2. 그런 남자분들이 "해당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독립변수) -> "경찰력이 집중되어 수사가 빨라졌다" (종속변수)라는 프레임워크를 제시하지요. 그런데 제가 이 사건을 인식하는 프레임워크는 이렇습니다. "피해자가 남자고 가해자가 여자일 확률이 높았다"* (독립변수) -> "해당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매개변수) -> "경찰력이 집중되어 수사가 빨라졌다" (종속변수). 제 눈에는 피해자가 남자고 가해자가 여자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해당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 프로세스가 보이는데, 다른 분들에게는 "해당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 "경찰력이 집중되어 수사가 빨라졌다"의 프로세스만이 보이는가봅니다. 해당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 사건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닌데 말입니다. 


3. 또한 저는 저번에 nabull님과의 댓글에서 피해자가 남자고 가해자가 여자일 때 젠더권력은 세가지 이상으로 나타난다고 했을 겁니다. 수사까지의 프로세스가 아니고 처벌까지의 프로세스를 고려해봅시다. 다음의 내용을 읽어봅시다. "상해의 결과가 발생한 강간의 경우 감경영역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이는 대다수의 사건에서 기본범죄가 미수에 그치거나, 상해의 정도가 경미하고 또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처벌불원'이 무엇인가 하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출처: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재봉의 '우리나라 양형기준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 온나라 정책연구 12쪽) 다시 말해 합의금을 지불하거나 하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의사를 밝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강자일 수록 합의금을 지불할 수 있고 또한 처벌불원을 강제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성폭행은 아니지만 2014년 6월 8일에 부산에서 36세 남성과 사귀던 30세 내연녀가 남자와 헤어지겠다고 하자, 남자가 여자의 머릿가죽을 벗기고 왼쪽 안구를 빼내고 이를 뽑아요. 이로 인해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뇌가 드러난 채로 살아야해요. 범인은 2심에서 피해자와 합의하여 20년형을 받아요. 합의금은 겨우 5천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치료비를 댈 것입니까. 또한 46세 남성 박모씨는 딸 친구 13세 미성년자를 강간해요. 그러나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납니다. 합의금 5천만원을 지불했기 때문이예요. 집안의 아들이 사고쳤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감옥 안가게 하려고 합의금 지불하는 게 한국사회예요. 집안의 금융자원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존재죠. 젠더권력은 처벌까지의 프로세스에도 작용해요.


4. 제가 이해가 안되는 건 이 부분이예요. 사람들이 " 해당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경찰력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단 말이예요. 다음은 조선일보에 나온 경찰의 코멘트예요. 


경찰은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건이 화제가 되면, 경찰도 사람인지라 압박감이 듭니다. 특히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계속해서 나오면 ‘윗분들’이 관심 갖습니다.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은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게 아니라, 언론에서 계속 써대니 빨리 잡힌 거로 봐야 합니다. 피해자가 만약 여성이었어도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건이라면 신속하게 검거됐을 겁니다.” 서울지역 일선 경찰관 얘기다.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경찰력이 집중되었다는 것은 사건의 경중이 외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예요. 언론의 입김에 따라 불공평하게 수사력을 편중시킬 수 있는 조직임을 인정하면서, 피해자/가해자 성별에 따라서 차별없이 공평한 수사를 할 거라고 믿는 근거가 뭐죠? 대한민국 경찰이 너무나 양성평등한 조직이라서인가요? 언론이 아니라 만일 사회 자체가 남녀차별적인 사회라면, 바로 다이렉트하게 사회의 여론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피해자/가해자 성별에 따라 불공평한 수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거잖아요? 


도대체 자기들이 하는 말이 뭔지는 알고들 있는 거예요? 잘 생각해보세요. 홍대 몰카 사건이 난 다음에 일부 남성 네티즌들은 SNS등에서 그 사건에 대해서 의미부여를 해요. 이거 봐라 여자도 저렇게 몰카를 찍지 않느냐. -> 웹상에서 이슈가 된 걸 기자들이 받아 씁니다. -> 경찰조직 안에서 윗분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 일선 경찰들이 압박을 받고 신속하게 처리합니다. 각각의 사슬에서 전부 남들 탓을 하죠. 일선 경찰은 윗분이 관심을 가져서. 윗분은 언론이 이슈를 만들어서. 언론은 일부 남성 네티즌들이 의미부여를 해서.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요? 총체적으로 남성의 의견이 반영되는 사회란 뜻이예요. 


2009년에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34살 여성이 자살을 합니다. 2004년에 보조출연자로 일하면서 4명에게 강간당하고 8명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이유예요. 동생도 따라서 자살을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한 건 피해자 어머니가 노컷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예요. 다음의 내용을 보시죠. 


어머니> 고소를 했기 때문에 다 죽었습니다. 성폭행 가해자들이 12명이지만 죽게 만든 거는 경찰입니다.  

◇ 김현정> 왜요?  

◆ 어머니> 조사 과정에서 칸막이가 첫째로 없었어요. 그다음에 (한 경찰이) 가해자 성기를 색깔, 둘레, 사이즈까지 정확하게 그려오라고 A4 용지하고 자를 줬어요. 

◇ 김현정> 그걸 그림으로 그려라? 거기 앉아서.  

◆ 어머니> 네.  

◇ 김현정> 그게 무슨, 왜 필요하다고 합니까, 그게?  

◆ 어머니> 저는 지금 훗날 생각해 보니 처음에 맡은 형사가 "이건 사건이 안 되는데 어머니가 너무 여러 번 진정서를 넣어서 하니 기계적으로라도 하겠다." 라고 말했어요. 진상을 파헤치려고 단 한마디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 김현정> 딸이 경찰 조사 받던 기간 너무 힘든 나머지 아예 경찰 수사 차도로 뛰어들고 이런 행동도 했었다고요?  

◆ 어머니> 그날이 강간범 보고 (성폭행 당하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라고 하면서 둘이 서로 웃는 나머지 제가 중단을 하고 데리고 나왔는데 그날 8차선 도로로 뛰어들어서. 


이러한 것은 다만 예외적인 일이고 경찰은 피해자의 성별에 상관없이 공명정대하고 꼭같은 속도로 수사할까요? 언론이 주목하고 아니고에 따라 수사 속도가 달라진다고 믿으면서, 또한 가해자의 권력에 따라 수사 속도가 달라진다고 믿으면서 (nabull님이 판사 몰카 사건에 대해서 쓰신 코멘트), 유독 피해자/가해자 성별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 속도를 달리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단 말이죠. 


5. 이번 홍대 몰카 사건과 관련해서 '워터파크 몰카사건'에 비견하며 워터파크 몰카사건은 여성이 피해자인데 빨리 잡지 않았냐 하는 조선일보 기사도 올라오더군요. 이 조선일보 기사가 이른바 '언론 관심 -> 공평하고 빠른 검거'설에 큰 힘을 보태주는 듯 하더군요. 그리고 워터파크 몰카사건에서도 가해자가 포토라인에서 섰다는 지적도 트위터에서 눈에 띄더군요. 


그럼 도대체 워터파크 몰카사건이란 무엇이었나? 주범인 서른네살 남자 강모씨가 종범인 스물일곱살 여자 최모씨에게 200만원을 주고 몰래카메라를 이용, "2014년 7월부터 11월까지 수도권과 강원도의 국내 워터파크와 야외수영장, 스파 등 6곳의 여자 샤워실 내부를 촬영"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여성 피해자는 200명이 넘었고 그 중에선 아동도 있었어요. 신속하게 검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종범인 최모씨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찍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아동 누드가 해외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시나요? 이게 해외 사이트에 올라왔단 말이예요. 이 사건은 한 사람만이 피해자도 아니었고 다만 여성만이 피해자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2인이지만 금전을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몰카를 찍은 사례란 말입니다. 


또한 한겨레는 2018년 5월 15일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씁니다. "전략...오히려 미적댔다면 경찰이 욕먹었을 사안이다. 유사 사건 전례에 비춰 구속이 과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피의자가 휴대폰을 버리는 등 증거인멸 시도가 있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지금 홍대몰카 사건을 미적대면서 수사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예요. 핀트가 완전히 틀려요. 여성들이 피해자일 때 몰카 사건들을 빠르게 적극적으로 수사하라는 것입니다. 하향평준화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상향평준화를 요구하는 것이예요. 


또한 연합뉴스는 '몰카 처벌, 남여 구분 없다'란 기사를 내보냈더군요. 다음 부분을 읽어보시죠. 


"몰카 범죄 사건의 피의자 대부분은 남성이며, 사안이 중대한 경우 구속 수사를 받는 것은 일관적인 추세다. 


2016년에는 전체 몰카 피의자 4천491명 중 남성이 4천374명이었으며 135명이 구속됐다. 지난해에도 몰카 피의자 5천437명 중 남성이 5천271명이었고 119명이 구속됐다. 이 기간 몰카 혐의로 입건된 여성 283명 중 구속된 사람은 없다."


이 두가지 단락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2016년 몰카찍다가 잡힌 사람 중에서 97.39%가 남자였고 그 중에서 사안이 중대한 경우가 135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7년 몰카찍다가 잡힌 사람 중에서 96.9%가 남자였고 그 중에 사안이 중대한 경우가 119명이었다는 것이예요. 이 연합뉴스 기사 전 단락을 믿고 뒷 단락을 뒤집어 읽으면, 2017년 입건된 여성 피의자 283명 중에서 사안이 중대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예요. 


오마이뉴스에서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 이사 서혜진 변호사를 인터뷰했습니다. 다음을 일견해보시죠. 일문일답입니다. 


- 이번 홍대 누드 크로키 건의 수사가 이례적으로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다.

"현행범으로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가 아니면 이런 식으로 빨리 수사를 진행하진 않는다. 홍대 누드 크로키 불법촬영 수사에 경찰이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일회성에 초범이고, 피해자가 다수가 아닌 다른 사건에 대해선 특별히 수사에 매진하거나 빨리 수사를 진행하는 걸 목격한 적이 없다. 대다수 (디지털 성폭력) 사건 지원하는 변호사들이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 그간 비슷한 범죄 건에 대해서 구속 수사를 해왔나? 

"일단 '몰카' 범죄로 구속되는 일이 많이 없다. 물론 전과가 있거나 피해자가 다수일 때는 구속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기 회사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놨다든지 한두 명 정도가 문제를 삼아 경찰이 핸드폰을 봤더니 수많은 여성들의 피해 사진이 나왔다든지, 이런 경우다. (홍대 불법촬영)과 비슷한 사건에서 전과가 없다면 구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몇가지 더 쓸 게 있었는데 제가 지금 바빠서 시간을 더이상 낼 수가 없네요. 이번 일을 계기로 몰카나 성범죄 사건이 전반적으로 더 빨리 처리되기를 기원합니다. 


* (가해자가 여자일 확률이 높았던 근거: 사진이 워마드에 올라왔기 때문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1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7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32
126059 요즘 듣는 걸그룹 노래 둘 new 상수 2024.04.24 3
126058 범도4 불호 후기 유스포 new 라인하르트012 2024.04.24 18
126057 오펜하이머 (2023) new catgotmy 2024.04.24 29
126056 프레임드 #775 [2] new Lunagazer 2024.04.24 15
126055 커피를 열흘 정도 먹어본 결과 new catgotmy 2024.04.24 70
126054 [넷플릭스바낭] 몸이 배배 꼬이는 3시간 30분. '베이비 레인디어' 잡담입니다 [3] new 로이배티 2024.04.24 151
126053 프렝키 더 용 오퍼를 받을 바르셀로나 new daviddain 2024.04.24 27
126052 넷플릭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감상 [6] new 영화처럼 2024.04.24 127
126051 "韓, 성인 문화에 보수적"…외신도 주목한 성인페스티벌 사태 new ND 2024.04.24 171
126050 오펜하이머를 보다가 new catgotmy 2024.04.24 98
126049 프레임드 #774 [4] update Lunagazer 2024.04.23 74
12604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5] 조성용 2024.04.23 392
126047 잡담) 특별한 날이었는데 어느 사이 흐릿해져 버린 날 김전일 2024.04.23 155
126046 구로사와 기요시 신작 클라우드, 김태용 원더랜드 예고편 [2] 상수 2024.04.23 269
126045 혜리 kFC 광고 catgotmy 2024.04.23 227
126044 부끄러운 이야기 [2] DAIN 2024.04.23 361
126043 [티빙바낭] 뻔한데 의외로 알차고 괜찮습니다. '신체모음.zip' 잡담 [2] 로이배티 2024.04.23 287
126042 원래 안 보려다가 급속도로.. 라인하르트012 2024.04.22 228
126041 프레임드 #773 [4] Lunagazer 2024.04.22 59
126040 민희진 대표님... 왜그랬어요 ㅠㅠ [8] update Sonny 2024.04.22 122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