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기스 Laggies (2014)

2018.03.18 23:58

DJUNA 조회 수:3517


린 셸턴의 [래기스]를 왓챠에서 봤어요. 이 제목이 무슨 뜻이냐. 각본가인 안드레아 사이겔에 따르면 나이 든 게으름뱅이(slacker)를 의미하는 속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전에 이 말을 들어본 사람이 사이겔 뿐이라는 거죠. 아마 착각이었나봐요. 그래도 셀턴은 이 제목을 버리지 않고 그냥 썼다고 합니다. 이걸 계기로 새 단어가 만들어져도 재미있겠지만, 이 영화는 저예산 인디라서요. 아마 그 정도 파급력은 없을 거 같아요.

주인공 메건은 시애틀에 사는 28살의 백수입니다. 어떻게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일이 적성에 안 맞았고 그냥 아빠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놀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와 지금까지 사귀는 중이고, 친구들도 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입니다. 인생이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더 나아가질 않은 거죠. 그러던 어느 날, 메건은 자기에게 맥주를 사달라고 다가온 애니카라는 십대소녀와 친구가 됩니다. 애니카는 학교에 메건을 엄마 대신 데려가고, 얼떨결에 메건은 애니카의 집에 얹혀지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애니카의 아버지 크레이그와 가까워지고요.

그러니까 논리적이지만 조금 희귀한 종류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캐릭터 설정만 본다면, 메건과 애니카는 첫눈에 반해 친구가 되기 어려운 사이죠. 아이유인나도 있으니까 나이차는 그렇게 큰 문제는 안 되겠지만 그냥 길거리에서 만난 십대소녀와 20대후반 여성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죠. 하지만 정신연령과 사회적 위치를 따진다면 둘은 생각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무리하지 않으면서 꽤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어요. 전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나오고 크레이그의 이야기가 조금 덜 나왔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크레이그의 캐릭터도 꽤 좋고 이야기를 맺는 도구로서도 괜찮은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 키라 나이틀리,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 샘 록웰의 화학반응이 좋아요. 무리하게 연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들 은근하게 잘 어울리죠. 야심은 없지만 기분 좋은 영화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성장물이니까 메건과 애니카의 관계는 메건을 어른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문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성장을 위해 메건은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버려야 하지요. 이 영화에서는 그게 꽤 길게 지속되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고등학교의 인간 관계입니다만. 하긴 학교 때까지의 친구들은 우리가 선택해서 만난 사람들이 아니고 어른이 되려면 스스로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지요. 메건에게 그 시작점이 맥주를 사달라고 아무나 잡고 조르는 십대여자아이였다는 건 아이러니지만. (18/03/18)

★★★

기타등등
[키미 슈미츠]인 엘리 켐퍼가 메건의 친구로 나옵니다.


감독: Lynn Shelton, 배우: Keira Knightley, Chloë Grace Moretz, Sam Rockwell, Kaitlyn Dever, Jeff Garlin, Ellie Kemper, Mark Webber

IMDb http://www.imdb.com/title/tt2034031/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9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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