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9 (어쩌면 스포?)

2017.10.20 09:59

Journey 조회 수:1084

이번 블레이드러너는 2019의 후속편이지만 필립 K. 딕의 원작의 후속편이기는 힘든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애초에 2019가 '안드로이드는...'과 별개의 작품 취급을 받는 주제에 그 2019뽕에 잔뜩 취한 감독(들)이 만든 것이니 오히려 원작의 원작(...)의 느낌을 지우려고 했다면 모를까요. 대신 들어간 건 2019이후 그 작품에 영향을 받았던 수많은 작품들에서 비롯되었을 분위기 - 가장 쉽게 보이는 건 아무래도 오시이 마모루를 위시한 저패니메이션들의 향이겠죠만 아무튼, 거기에 현대적인 터치, 특히 기술적으로 발전된 아트 쪽이겠습니다. 어쨌거나 2049역시 필립 K. 딕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 '무엇이 인간이냐'를 깊게 사유하는 것처럼은 보입니다. 영혼에 대해 성찰하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느냐는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거대한 갈등이 첨예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에 주인공(들)의 자아에 대한 혼란과... AI문제까지. 왠지 덤으로 얹은 것 같은 '아시아인 없는 아시아 문화권의 여러 언어들이 패치워크처럼 여기저기 뿌려진' 뭐 이런 분위기의 조금 작위적인 느낌의 근미래 디스토피아 SF의 낡은 도시 정경까지하면 제법 모양이 납니다. 요즘 영화음악의 대세, 한스 짐머까지 투입하면 뭐 정말 뭔가 굉장한 섞어찌개가 되는 거죠.

잘 섞었습니까 근데? 글쎄요.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이야기고 이미 아래 다른 분들의 글과 댓글에서 각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뭐. 제 생각도 거기 있지만 이 글에서 다시 밝히자면: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감독'들'은 2049를 현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좀 더 노력했어야 했습니다. 세상이 흘러온 시간만큼 블레이드러너의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은, 세기말 배경에는 일견 어울리는 것 같지만 이미 우리는 세기말을 살아왔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2019뽕에서 비롯된 일종의 안이한 태도(블레이드러너는 원래 이런 느낌적 느낌이거든! 거기에 이거 섞고 저거 섞었거든!처럼 보이는)가 블레이드러너 월드의 완성도를 해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을 절반쯤 떼어 만든 2019의 후속작이므로 어찌 보면 이게 당연한 태도고, 그래서 괜찮게 본다는 시각도 있겠죠. 뭐,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것들'을 투입해서 양적으로는 어떻게든 이 세계를 넓게 보여주려고 하곤 있지만 말입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이미 제게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섞이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여성혐오적인 요소를 생각하면...... 여성혐오적인 요소가 전작에도 물론 있었지요. 하지만 1982년에 만들어진 2019의 여성혐오와 2017년에 만들어진 2049의 여성혐오를 그냥 그게 그거지라고 퉁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블레이드러너의 세계에서는 이런 성상품화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요소들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묘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데, 2019에서는 1982년의(1993년의) 감성으로 충분히 먹힌 반면...... 2049의 경우는 최대한 선해를 해본다고 해도 불쾌함이 불쾌함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뀔 정도로 새롭거나 의미 있어보이는 그런 장면은 찾아볼 수 없더군요. 굳이 예를 들자면, 킹스맨/TED/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영화들에서 아슬아슬하게 불쾌함과 재미를 넘나들던 섹드립들이 속편에서 불쾌함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아무튼 긴 3시간이었습니다. 왠지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PS)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불쾌해하는 것에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이번에도 제법 많이 나오는군요. 언제나 그렇듯이 '뭣도 모르면서', '영화는 제대로 봤냐', 혹은 '그냥 원작이 명작이라니까 괜히 반감갖고 빼애액'류로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못해 발광하는 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아무튼 그런 분들을 위해서 최대한 덜 자극적으로 조곤조곤하게 착한 언어만 이용해서 감상평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PS2) 그래도 소용없을지도 모르지만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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