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퍼펙트 데이 A Perfect Day (2015)

2017.10.17 20:30

DJUNA 조회 수:4776


[어 퍼펙트 데이]. 제목은 영어이고 대사도 주로 영어지만 스페인 영화입니다. 파울라 파리아스라는 스페인 작가가 쓴 소설이 원작이라는군요.

때는 1995년. 보스니아 전쟁의 막판입니다. 하지만 영화에는 배경이 되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인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아직 내전이 진행 중인 위험한 나라이고 국제구호요원들이 이들을 위해서 목숨 걸고 일을 하는 중이라는 게 더 중요하죠. 보스니아 전쟁보다는 구호요원들에 방점이 찍힌 영화입니다. 보스니아가 아닌 다른 어디라도 먹힐 수 있는 이야기예요. 하긴 이런 영화는 충분히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국제구호요원들이 주인공인 영화나 소설을 얼마나 접하셨나요? 전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퀴즈처럼 명쾌한 도입부로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마을 우물에 시체를 버리고 갔어요. 끌어올리려고 했는데, 밧줄이 낡아서 끊어져버렸습니다. 빨리 시체를 꺼내지 않으면 우물은 오염됩니다. 다시 밧줄을 구해 시체를 꺼내면 될 것 같은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일단 밧줄을 어디서 구하나요. 그리고 구한다고 해도 꺼내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게 아니라 이 간단한 일을 막는 수많은 관료적, 정치적 거미줄이 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선의로 뭉친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을 하려 하는데, 그게 안 되니 갑갑하기 짝이 없는 거죠. 이건 분명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단지 캐릭터나 인물 관계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네 명의 국제구호요원이 나오는데, 이들은 좀 기성품입니다. 남자 둘은 늙었고 모두 아메리카 대륙에서 왔습니다. (팀 로빈스와 베니시오 델 토로가 연기합니다) 여자 둘은 젊고 예쁘며 유럽 출신입니다. (멜라니 티에리와 올가 쿠릴렌코가 나옵니다) 베니시오 델 토로의 캐릭터와 올가 쿠릴렌코의 캐릭터는 과거가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영화는 일단 정지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중간에 수상쩍을 정도로 영어를 잘 하는 동네 아이를 만납니다. 모든 게 영어가 유창한 제1세계 지식인(러시아와 푸에르토리코가 여기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에게 맞추어져 있는 거죠. 당연히 영화는 보스니아 전쟁과 이곳 주민들에 대해 조금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문제는 재미있고 24시간의 데드라인은 이 이야기에 적절한 긴박감을 불어넣습니다. 문제풀이라는 이성적인 행동이 전쟁의 비논리와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드라마도 한번쯤 씹어볼만 해요. 비극적인 상황을 다루는 영화지만 코미디 효과가 좋습니다. 너무 무례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이 설정을 조금 더 신선한 인물 관계 속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 같다는 거죠. (17/10/17)

★★★

기타등등
넷플릭스엔 [완벽한 하루]라는 제목으로 있다더군요. 상영관에 도착했을 때에야 알았어요.


IMDb http://www.imdb.com/title/tt357762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7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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