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그리즐리 곰과 싸워서 살아남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요. 휴 글래스는 그들 중 스타입니다. 그는 1822년에 윌리엄 헨리 애슐리의 탐험대에 참가했다가 다음 해에 곰과 싸워서 간신히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같이 남아있기로 했던 두 동료들은 그를 버리고 떠났고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제대로 된 무기도, 식량도 없이 혼자 200마일을 걸어서 백인들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 차례 이야기되고 각색되었는데, 그 중엔 영화도 한 편 있죠. [Man in the Wilderness]라고. 여기선 리처드 해리스가 휴 글래스 역을 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휴 글래스의 이야기를 다룬 마이클 푼크의 소설의 일부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물론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니 허구가 많이 섞여 있죠. 예를 들어 글래스에게 아메리카 원주민 아내가 있었다는 것,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 때문에 [레버넌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죽은 아내의 환영에 시달린다는 내용을 담은 세 번째 영화가 되었죠. 어쩌다가 이런 캐릭터에 계속 엮이는지 모르겠어요.

영화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개고생'이 되겠습니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휴 글래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말도 안 되는 고생을 겪어요. 그 고통의 묘사가 집요하고 영화가 꽤 긴 편이기 때문에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오는 동안에는 정말 아프고 춥고 지치고 그렇습니다. 관객들이 배우와 함께 고통을 공유하는 그런 종류의 영화입니다. 어떤 때는 묘사가 너무 적나라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죠.

영화는 휴 글래스와 동료들의 개고생을 통해 1820년대 미국의 보다 큰 그림을 보여줍니다. 백인들이 동쪽에서 점점 서쪽으로 가면서 미국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하고 있고 글래스는 두 세계의 충돌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애슐리 탐험대가 겪는 고난은 그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온 침입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인 원주민들 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가 그들에게 맹렬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죠. 결국 지는 싸움이었지만요. 그 때문인지 전 영화를 보면서 휴 글래스에 감정이입해야 할 시간에 고아가 되어 버려졌던 두 새끼 곰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이고 어디까지가 촬영감독인 엠마뉴엘 루베츠키의 영화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루베츠키가 찍은 영화들은 촬영감독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감독만큼이나 촬영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종종 있는데, [레버넌트]도 그렇습니다. 오로지 자연광으로만 영화를 찍겠다는 고집도 고집이지만 그의 꾸준한 스타일이 이들 영화에 일관된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한없이 아트영화스럽고 장중한 그 느낌 있지 않습니까.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은 건 사실이에요. 단지 이 영화에서는 스크린과 관객을 잇는 고통의 중간 통로와 같은 휴 글래스보다 톰 하디가 연기하는 악당 피츠제럴드가 캐릭터 면에서 더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로 그는 첫 번째로 아카데미 연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죠. (16/01/17)

★★★☆

기타등등
잠시 박찬욱이 이 프로젝트에 얽힌 적 있었는데요. 그 때는 휴 글래스 역으로 사무엘 L. 잭슨을 캐스팅하고 싶어했다고요.


감독: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배우: Leonardo DiCaprio, Tom Hardy, Domhnall Gleeson, Will Poulter, Forrest Goodluck, Paul Anderson, Kristoffer Joner

IMDb http://www.imdb.com/title/tt166320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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