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달러짜리 두뇌]는 [입크리스 파일], [베를린의 장례식]에 이은 세 번째 해리 파머 영화입니다. 원래는 다섯 편까지 나올 계획이었는데 이 영화를 끝내고 마이클 케인이 더 이상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도 그는 90년대에 해리 파머가 나오는 텔레비전 영화 두 편에 출연하긴 했습니다. 합치면 결국 다섯 편이죠.

영화가 시작되면 해리 파머는 MI5를 그만두고 삼류 사립탐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정보국으로 복귀하라는 로스 대령의 요구를 무시한 그는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고 역시 정체불명의 소포를 핀란드로 배달하는데, 알고 봤더니 그 고용주는 그의 미국인 친구인 레오 뉴비겐이었고 소포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계란들이었죠. 여기서부터 해리 파머는 바이러스를 되찾으려는 영국 정보국, 반공산봉기를 일으키려는 라트비아 왕당파, 전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죽여없애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는 텍사스 출신 광신도 장군, 봉기를 막으려는 소련 정보국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 지독하게 복잡한 음모에 말려듭니다.

[입크리스 파일]이 정통 스릴러였고, [베를린의 장례식]이 멜랑콜리한 냉전 첩보물이었다면 [10억 달러짜리 두뇌]는 대놓고 코미디입니다. 거의 멜 브룩스러워요. 이 영화의 악당인 미드윈터 대령은 패러디화된 패튼 장군과 같은 인물로 미국 기독교 극우파의 우스꽝스럽고 위험한 점들을 몽땅 뭉쳐놓은 것 같은 괴물입니다. 그 때문에 지금 와서 보면 더 현실감이 넘치기도 해요. 냉전시대는 오래 전에 갔지만 이런 인물들은 여전히 남아있으니까요.

영화의 감독은 켄 러셀입니다. 원래 앙드레 드 토트가 감독하려 했다가 부상 때문에 그에게 넘어갔다고 하는데 러셀도 이 영화를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 좀 성의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도입부 절반은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원작에서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 해리 파머 역시 동기나 목적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미드윈터 장군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생기를 얻게 되고 우리가 켄 러셀의 다른 영화에서 보면서 익숙해졌던 정신나간 터치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옵니다. 후반의 클라이맥스는 에이젠슈체인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와 [전함 포촘킨]에서 멋대로 카피 앤 페이스트한 것이지만 그래도 어이없고 웃깁니다. 아마 이 장면은 60년대 관객들보다 요새 관객들에게 더 먹히지 않을까요. (15/08/24)

★★☆

기타등등
1. 프랑스와즈 도를레악의 유작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되기 4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지요.

2. 최고의 해리 파머 영화는 아니지만 전 리처드 로드니 베넷이 작곡한 이 영화의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음악은 최고인 거 같습니다.


감독: Ken Russell, 배우: Michael Caine, Karl Malden, Ed Begley, Oskar Homolka, Françoise Dorléac, Guy Dolema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140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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