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로버츠 Mister Roberts (1955)

2015.01.21 22:42

DJUNA 조회 수:3367


토머스 헤겐이란 청년이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일하던 그는,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그 나이 또래 많은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해군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업무에 종사하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스터 로버츠]라는 소설을 써서 1946년에 발표했는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1948년에 헤겐은 조슈아 로건과 함께 이 소설을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각색했어요. 헨리 폰다가 주연한 이 연극은 대 히트였고, 헤겐과 로건은 토니상을 받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헤겐은 다음 해에 욕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자살인 거 같답니다.

1955년에 존 포드가 이 연극을 영화화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너무 많다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주연배우로 친구이고 브로드웨이에서 주연을 했던 헨리 폰다를 끌어왔죠. 하지만 일은 최악으로 진행되었어요. 소위 '예술적 의견 불일치'. 어느 정도 심했냐면 포드가 폰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감독 자리를 떠날 정도였죠.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는 포드가 병 때문에 떠났다고 발표하고 머빈 르로이를 대타로 불러왔습니다. 나중엔 포드가 찍은 몇몇 장면들을 다시 찍기 위해 조슈아 로건을 또 불러왔고요. 폰다는 이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그 뒤로 포드와는 서먹서먹한 사이로 남았습니다. 군의관으로 출연했던 윌리엄 파웰도 하와이 촬영과 암 때문에 개고생, 결국 이 영화를 끝으로 은퇴하고 말았지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참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한 영화예요. 그래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이 영화에서 펄버 소위를 연기한 잭 레몬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미스터 로버츠]는 전쟁이 나오지 않는 전쟁 영화입니다. 영화 대부분은 '양동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수송선 안에서 벌어집니다. 주인공 더글러스 로버츠 중위는 입대한 뒤로 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오가며 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한 수많은 물건들을 실어날랐죠. 하지만 그가 이 수송선에서 지루해하는 동안 전쟁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저에겐 좋은 일인 거 같은데, 당시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저랑 달랐지요. 특히 역사에 참여하겠다며 의대를 관두고 입대한 로버츠 같은 청년은 더 그랬겠죠. 그는 어떻게든 진짜 전쟁에 나가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로버츠의 적은 일본군이나 나치가 아닙니다. 권태와 무력감 그리고 '양동이'의 독재자인 모튼 선장이죠. 편협한 원칙주의자이고 출세지상주의자인 모튼은 '양동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트러블의 원흉이기도 하지만 로버츠가 전쟁터로 나가는 걸 막는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갈등구조는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영화로 만들어진 [케인 호의 반란]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계급 문제를 건드릴 때는요. 로버츠는 척 봐도 좋은 집안에서 큰 고생 없이 교육받고 자란 인텔리죠. 하지만 모튼은 밑바닥 출신으로 그를 받아주고 자존심을 세워준 건 오직 군대뿐입니다. 당연히 그는 인정을 받고 싶고 승진하고 싶죠. 그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들이 괴로워지니 그게 문제지. 영화는 모튼의 리더쉽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모튼을 단순한 악역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을 무대로 하고 있고 쓸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깔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코미디죠. 화면 안에서 실제로 죽어나가는 사람은 없으니 그 정도는 허용이 됩니다. 관객들이 보는 것은 괴팍한 독재자와 군대라는 시스템의 부조리이니, 코미디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죠. 그리고 그 코미디의 절정에는 펄버 소위가 있습니다. 14개월 동안 근무했지만 선장은 존재 자체를 모르고 늘 침대에 누워 허송세월 하면서 본 적도 없는 선장을 골려줄 음모를 꾸미고 있는 그는 '양동이'의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환상적인 예입니다.

비교적 통풍이 잘 된 영화입니다. 해군 협조를 받아 실제 배를 촬영에 사용할 수 있었고 하와이 로케이션을 해서 야외 장면의 어색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연극이 영화로 잘 옮겨졌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와이드스크린 컬러로 호사스럽게 찍어도 [미스터 로버츠]는 여전히 소수의 배우들이 중심인 대화 위주의 영화지요. 영화의 통풍은 오히려 드라마의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세 사람의 감독을 거치면서 영화가 완전히 무개성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 통풍과정이 특별한 매력을 더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영화이긴 합니다. 헨리 폰다, 잭 레몬, 윌리엄 파웰, 제임스 캐그니라는 네 명의 배우가 여전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감독이 바뀌고 배우 건강이 나빠지고 기타 등등의 문제가 생겨도 연기할 거리가 있는 좋은 배우들이 꿋꿋하게 자기 역할을 하고 있으면 늘 기본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15/01/21)

★★★

기타등등
펄버 소위가 나오는 속편이 있습니다. 제목은 말 그대로 [펄버 소위]. 하지만 잭 레몬은 안 나온다고 합니다. 하긴 11년 뒤 영화니까요. [미스터 로버츠]는 나중에 텔레비전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84년에 생방송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감독: John Ford, Mervyn LeRoy, Joshua Logan, 배우: Henry Fonda, James Cagney, William Powell, Jack Lemmon, Betsy Palmer, Ward Bond, Philip Carey, Nick Adams, Perry Lopez, Ken Curtis, Robert Roark

IMDb http://www.imdb.com/title/tt004838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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