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 Huang jin shi dai (2014)

2014.10.30 21:43

DJUNA 조회 수:5384


샤오홍은 1911년에 태어나 1942년에 사망한 작가입니다. 중국 현대 문학을 소개할 때는 꼭 언급되는 중요한 사람이라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는데, 중국 현대 문학의 인기가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은 터라 계속 같은 책들이 출판되고 절판되길 반복하고 있죠. 대표작인 [호란하 이야기]와 [생사의 마당]은 얼마 전에 다시 나왔는데, 이게 언제까지 버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허안화의 [황금시대]는 샤오홍의 전기영화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거의 전인생을 커버하고 있지만 주로 작가로 활동했던 후반 10여년에 집중하고 있지요. 친척 오빠랑 달아났다가 들켜 집에서 쫓겨나고, 작가 겸 편집자인 샤오진과 사랑에 빠지고, 그의 권유로 글쓰기를 시작해 작가로 인정받지만 그 재능에 대한 질투로 관계에 금이 가고...

겸손한 영화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실제 인물의 이야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독립된 인격체로 만들려는 유혹에 빠지죠. 하지만 허안화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영화에 담긴 이야기 대부분은 원래 소스가 있어요. 작가 자신의 글, 지인이나 친구들의 기록과 같은 것이죠. 기록을 남긴 사람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탕웨이가 연기하는 샤오홍 자신도 도입부에서 "나는 1911년에 태어나 1942년에 죽었다"며 자기자신을 소개합니다. 종종 한 사건에 대한 두 가지 기록의 내용이 다를 때가 있는데, 영화는 취사선택하는 대신 두 버전을 모두 소개합니다.

영화가 그리는 샤오홍의 초상은 친숙하기 그지없습니다. 20세기 초반 동북아시아 인텔리 여성 이야기는 대부분 하나의 틀에 묶이죠. 인습을 극복하고 자유롭게 삶과 예술을 즐기고 싶은데 낡아빠진 사회가 이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극복하기엔 경제적 능력이 심하게 딸리고요. 살아남으려다보니 결국 주변 남자들에 의지하게 되고 사람들은 작품 대신 그 스캔들에 더 신경을 쓰고... 그리고 이런 부류 이야기의 주인공이 대부분 그렇듯 이 분은 많이 프리마돈나더군요. 다행히도 주변에 그 민폐질을 다 받아주고 예뻐해주는 사람들이 널려 있는, 그 민폐질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재능과 실력이 있는 프리마돈나죠.

이 예의바르지만 다소 흐릿한 초상에 힘을 실어주려면 주연배우의 캐스팅이 중요한데, 탕웨이는 여기에 맞는 무게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배우가 보여주고 있는 건 고전적인 의미의 '여배우' 연기예요. 그레타 가르보나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보여주었던 그런 종류의. 캐릭터와의 채널링을 통한 일종의 영화적 자아도취 있지 않습니까.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고 예뻐서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이 그렇게 버겁지 않습니다.

[황금시대]를 '완벽한' 영화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엔 빈틈이 많고 이야기들이 좀 가볍게 엮여 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살짝 부족한 정도로만 이야기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어차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샤오홍이라는 인물에 완벽하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그를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오히려 올바른 방향일 수 있지요. (14/10/30)

★★★

기타등등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때문에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샤오홍의 주변 사람들' 이상은 아니니까요. 중국 현대 문학에 익숙한 관객들은 이들의 등장이 더 재미있긴 하겠군요.


감독: Ann Hui, 배우: Wei Tang, Shaofeng Feng, Zhiwen Wang, Yawen Zhu, Xuan Huang, Lei Hao, Quan Yuan, 다른 제목: The Golden Era

IMDb http://www.imdb.com/title/tt369608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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