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나 토레스 Fina Torres

주연
페넬로페 크루스....이사벨라 올리베이라
Penélope Cruz....Isabella Oliveira
해롤드 페리노 주니어....모니카 존스
Harold Perrineau Jr.....Monica Jones
뮤리요 베니시오....토니뇨 올리베이라
Murilo Benício....Toninho Oliveira
마크 퓨터스틴....클리프 로이드
Mark Feuerstein....Cliff Lloyd
존 드 랜시....알렉스 리브
John de Lancie....Alex Reeves
앤 램지....TV 연출자
Anne Ramsay....TV Director
애나 가스타이어....클로디아 헌터
Ana Gasteyer....Claudia Hunter

이사벨라

피나 토레스는 남자들한테서 달아나는 여자들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결혼식 직전에 신랑을 버리고 베네주엘라에서 파리로 달아난 [천상의 시계장치]의 주인공 아나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이사벨라도 바람 피우는 남편을 버리고 브라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달아납니다. 제2의 마리아 칼라스를 꿈꾸는 훌륭한 메조 소프라노인 아나처럼 이사벨라에게도 재능이 있습니다. 엄청난 멀미쟁이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바다의 여신이 내려준 요리의 재능 말이에요.

네, 이사벨라는 엄청난 멀미쟁이입니다. 너무 멀미가 심해서 택시도, 엘리베이터도, 유모차도, 전차도 타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한다면 차선책을 씁니다. 자기가 직접 운전하는 것이죠. 그녀가 멀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움직임 속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입니다. 춤출 때는 언제나 리드를 하고, 운전은 어떤 경우에도 직접 하고, 물론 침대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위에 있어야 합니다. 이사벨라의 남편 토니뇨가 바람을 피운 것도 그런 습관 때문에 남자다운 주도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사벨라의 멀미를 이용하면 흥미로운 페미니스트 우화가 나올 것도 같죠? 하지만 영화는 비교적 평탄한 로맨스로 흘러갑니다. 반쯤은 환상적인 요리 재능 때문에, 반쯤은 운좋은 유전자 결합으로 얻은 엄청난 미모 덕택에, 이사벨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저녁 요리쇼의 진행자가 되어 스타가 됩니다. 이사벨라를 발탁한 PD 클리프는 이사벨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내가 떠난 뒤로 식당이 거의 망하게 된 토니뇨가 배경음악을 연주해줄 악단을 끌고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오면서 이들 사이에서는 복잡한 삼각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사벨라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

전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지만 이 줄거리에 아주 만족하지는 않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원래 아이디어가 가지고 있던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죠. 남미풍의 환상적 리얼리즘이 섞인 로맨틱 코미디를 그대로 즐기는 것도 나쁠 건 없지만 아무래도 아이디어가 너무 낭비된 듯 합니다. 특히 이사벨라와 토니뇨의 관계는 그냥 로맨티시즘으로 해결할 수 있을만큼 개인적인 문제도 아니고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그냥 달콤한 우화로 넘어가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남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는 페미니즘 말고도 다른 것들의 가능성도 가로막습니다. 특히 [천상의 시계장치]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금방 드러납니다. 영화는 [천상의 시계장치]처럼 여러 나라 문화를 뒤섞고 다양한 성적 취향의 등장인물들을 소개하지만, 전작에서와는 달리 어딘지 얌전하고 규격화된 느낌입니다. 마치 '미국화시킨' 이사벨라의 첫번째 전국 방송처럼요.

피나 토레스가 조금 기가 꺾여보인다면, 페넬로페 크루스는 언제나처럼 화사하고 신선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외국어로 연기한다는 것 때문에 이국적인 매력이 더해진 것 같기도 해요. 이 영화는 토레스의 영화라기보다는 크루스의 영화이며, 이 사람을 그냥 지켜보는 것만해도 한시간 반이 훌쩍 지나갑니다.

크루스만큼 흥미로운 배우는 이사벨라의 트렌스 친구로 나오는 해롤드 페리노 주니어입니다. 우린 이 배우가 성적 경계를 오가는 인물을 얼마나 잘 연기하는지 [로미오 + 줄리엣]을 통해 이미 알고 있지만, 그때보다 이번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배우나 캐릭터나 모두 이번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요. 이사벨라와 모니카는 너무나도 죽이 잘 맞는 콤비라, 차라리 삼각 관계보다는 이들 이인조의 모험담으로 흘러갔다면 더 재미있었을 걸 그랬어요. (01/06/22)

DJUNA

기타등등

크루스는 이후에도 미국에서 영화를 엄청 많이 찍기는 했는데, 아직까지 눈에 확 뜨일만한 성과는 없군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합니다.